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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정치적 올바름’ 이 불편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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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퀴즈 하나. “그는 수직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어(vertically challenged)”란 무슨 뜻일까. 의역해서 “그 애는 수직적으로 문제가 있어”라거나 “세로로 힘이 들어”라고 해도 당최 아리송하다. 답은 이렇다. “그 애는 키가 작아.”

반대로 “그는 수평적으로 문제가 있어(horizontally challenged)”라는 말은? “그는 비만이야”라는 뜻이라고 한다. 모두 소위 ‘평균’이라는 기준에 맞지 않는 신장과 체중을 가진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콤플렉스를 배려한 에두른,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 표현이다. ‘PC’라는 줄임말로도 불리는 이 ‘정치적 올바름’을 메리엄 웹스터 사전은 이렇게 정의한다. “성별·인종 등 특정 집단에 불리하지 않도록 하는 말이나 정책.”

키가 작은 걸 작다고 못하고, 뚱뚱한 걸 뚱뚱하다고 말하지 못한다니 답답할 수도 있겠다. 실제로 영미권에선 “정치적 올바름이란 위선이자 판타지일 뿐”이라는 목소리도 득세하고 있다. 그중 가장 ‘대세’인 이는 미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다. 막말이 트레이드마크인 그는 “나는 정치적으로 올바를 필요가 없다. 난 (항상) 올바르니까”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을 보며 적어도 한국에선 PC의 불편함이 절실해지는 요즘이다. 영미권에서의 논란은 PC에 대한 과용의 결과다. 유색 인종에 대한 배려를 하기 위해 일각에서 백인을 ‘멜라닌 색소가 부족한(melanin challenged) 인종’이라고 칭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정치적 올바름의 과잉에 따른 피로감에 대한 반응인 셈이다.

우리는 어떤가. 정치적 올바름의 과잉은커녕 만성 부족 현상에 시달린다. 여성 코미디언의 ‘플러스 사이즈(또 다른 PC 용어다)’를 비하하는 게 단골 개그 소재가 되고, 이번 사건의 피해자에 대해서도 일부 인터넷 사용자들은 “못생겼으니 죽였겠지”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배설한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다고 지적하려는 목소리는 ‘프로 불편러(불편을 일삼는 사람)’로 매도된다.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의 여파가 큰 건 지금껏 여성들이 체감해 온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대한민국’에 대한 분노가 표출됐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안방의 세월호’가 됐다면 이번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은 여성들의 세월호가 돼 가고 있다. 이 사건을 남녀 모두를 위해 정치적으로 올바른 대한민국을 만들 계기로 만들 수 있을지는 우리 손에 달렸다.

전수진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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