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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홍석재의 심야덕질] 응답하라, 패미컴 세대들이여

|NES 밴드와 추억의 게임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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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를 헤매다 ‘NES 밴드(NES BAND)’라는 팀을 발견했다. 1980년대 닌텐도에서 나온 가정용 게임기 ‘패미컴(Fami-com)’ 시절의 게임음악을 오리지널 그대로 구현하는 밴드였다.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드래곤 퀘스트’ ‘록맨’ 등 그 시절에 어린 시절을 보낸 남자라면 추억 돋는 게임음악이다.

사실 요즘은 예전의 8비트 전자음 곡조를 제대로 오케스트레이션해 새롭게 녹음한 곡들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이 밴드가 고수하는 건 어릴 적 TV에 연결한 게임기로 듣던 그 음색이다. 이 점이 퍽 흥미로웠다. 공연 영상을 보면 세 대의 신시사이저와 한 대의 드럼 패드 사이에 패미컴이 보인다. 디스플레이용이 아니라 실제 패미컴에서 음원을 추출해 연주한다. 덕분에 게임하며 들었던 그 음색을 똑같이 재현한다.

달리 말하면 게임기가 연주의 핵심인 셈이다. 8비트 컴퓨터의 내장 음원 칩은 용량과 기술적 한계로 인해 미리 지정된 소리의 기본 파형 몇 가지를 합성하여 원하는 음색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뿅뿅 소리가 나는 8비트 특유의 음색이 나왔다. 기존 악기나 자연 소리의 파형을 재현할 수 없는 한계의 결과이나, 오히려 이것이 고유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날 밤 유튜브를 떠돈 결과, 나 같은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예 이런 음악을 ‘칩튠(Chiptune)’이라 부르고 있었다.

주로 80~90년대에 게임하며 자라난 이들에게 8비트 전자음은 곧 그 세대를 묶는 음색이다. NES 밴드의 라이브 영상을 보면, 단지 게임의 배경 음악을 100%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중간중간 커맨드(Command·컴퓨터의 동작을 지시하는 명령)를 입력할 때 효과음도 집어넣는다.

이를테면 계단 오르내릴 때 효과음이 들리고, 문을 연 뒤 다른 방으로 건너갈 때 장면 전환 소리가 툭 들어온다. 마치 재즈에서 애드리브하듯 말이다. 이때 무대 앞의 청중은 깔깔거리며 웃는다. 음악뿐 아니라 ‘커서 키’ 움직일 때의 효과음까지 재현되니, 그 순간 게임 화면에 어떤 영상이 진행 중인지 훤히 그려지는 것이다. 그 자리의 청중이 (그리고 유튜브로 보는 우리도) 똑같은 화면을 떠올리고 있다는 사실이 기묘했다. 일종의 텔레파시처럼 모두 하나가 된다.

물론 화면이 똑같아도 TV 밖의 풍경은 제각각일 것이다. 동생과 게임 패드 쟁탈전을 벌였다거나, 부모님 일 가시면 텅 빈 집에서 홀로 게임에 열중했다거나, 친구에게 조심스레 게임 팩을 빌렸다거나. 이처럼 게임과 관련된 풍경을 떠올리는 것은 누군가에게 유년기를 소환하는 행위다. 도트 그래픽과 8비트 사운드는 기술의 한계로 인해 추상적이고 기호화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실제 음을 엉성히 흉내 내던 ‘8비트 전자음의 흥취’란 것이 있는 법이다. 도트로 찍어 낸 게임 캐릭터에서 감정을 읽던 우리의 10대 시절은 또 어떤가. 그 시절의 게임은 명백히 현실보다 불완전한 ‘조악한’ 것이었다. 게임이 구현하지 못한 세부적인 부분은 나의 몫이다. 게임 캐릭터의 표정과 얼굴을 머릿속에 그려 감정까지 유추한다. 심지어 목소리마저 상상해 낸다. 삑삑거리는 전자음을 오케스트레이션으로 바꿔 기분도 내본다. 이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래서 마음에 더 오래 자리 잡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최근 내년에 발매할 게임 트레일러 톱 10 영상을 봤다. 이것을 보고 나면 솔직히 ‘영화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만큼 환상적이다. 현대 게임의 경향은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극사실주의)이다. 그래픽·사운드 양쪽으로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감각을 전달한다. 그럼에도 나는 그런 게임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완벽하게 재현된 겉면을 통해 서사적으로 체험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는 게임 또한 허구적 유희다.

그런 허구가 인간의 마음에 작동하는 방식과 관련해, 기술과 산업의 발전이 오판 중인 것은 아닌가 싶다. 허구가 인간의 마음에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는, 일단 그 마음 안에서 개별적 경험과 관점에 따라 재배열돼야 한다. 컴퓨터로 치면 코덱(Codec·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변환해 저장 및 재생하는 규칙)을 거쳐 확장자가 바뀐 파일명이 되는 것이다. 현대 게임은 상상력의 코덱을 거칠 필요 없이 이미 그 자체로 재생되는 파일과 닮았다.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이 완성돼 있다. 거기에는 해석과 개입의 과정이 증발된다. 놀랍게도 실제에 한없이 가까운 감각보다 기호와 추상이 사람들을 더 흥분시킨다. 점 두 개와 선 한 개로도 우리는 표정을 읽어 낸다. 게임의 숱한 오차와 결여에도 망설임, 애절함 혹은 두근거림을 상상한다. 우리의 정신은 어디서든 어떻게든 인간다움을 발견해 낸다. 참 신기하다. 어쨌건 결론은 게임에 한해서 나는 보수주의자다. 아니, 그보다 지독한 수구주의자라 불러도 좋다.

 홍석재 영화감독, '소셜포비아'(2015) 연출, 타고나길 심심한 인생인지라 덕질로 한풀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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