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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의 시시각각] 한 병사의 죽음, 그 아버지의 슬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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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논설실장

2013년 11월 25일 아산병원에서 한 젊은 병사가 숨졌다. 전역 6개월을 앞둔 상병이었다. 대학교수인 아버지의 미국 유학시절 태어난 그는 자동으로 미 시민권을 받았다. 아버지의 기러기 생활 덕분에 고교와 대학(일리노이대)도 미국에서 다녔다. 그는 귀국해 연세대 대학원을 다니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한국이 좋아 여기서 살겠다. 군대도 갔다 오겠다”고 선언했다. 해병대 병장 출신의 아버지는 만류했다. “나이도 4~5살 많고 미국에 너무 오래 살았지 않느냐”며 말렸다. 당장 시민권 포기도 쉽지 않았다. 미 정부로부터 “자의가 아니라 가족이나 외부 압력 때문이 아니냐?”며 두 번이나 재고를 요청받은 끝에 어렵사리 미 시민권을 버렸다.

감기약 부작용인 독성 간염에 희생?
동생까지 현역 입대, 잔인하지 않나


예상외로 아들은 군 생활을 잘했다. 능숙한 영어로 한·미 연합훈련에 참여하는 등 모범적인 군 생활로 육군협회 최우수사병으로 선정됐다. 딱 여기까지는 ‘미 시민권 포기-자원입대-모범 병사’라는 훈훈한 미담 스토리다. 비극은 2013년 10월 국군수도병원에서 “아들의 간 수치가 높다”는 전화가 오면서 시작됐다. 담당 군의관은 “급성 A형 간염 같은데 곧 나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A형 항체는 검출되지 않았고 간 수치는 나빠졌다. 3주 뒤 깜짝 놀란 병원 측은 “독성 간염과 비슷한 증상이니 큰 민간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부랴부랴 옮긴 아산병원에서는 “독성 감염에 의한 아급성 간부전”이라며 “혹 감기약을 먹은 적 있는가”라고 집요하게 캐물었다. 병원 측은 2주 만에 “간 이식을 해야 할 만큼 완전히 망가졌다”며 중환자실로 올려 보냈다. 둘째 아들이 대입 수시논술시험을 마친 날 병원으로 달려와 “형에게 간을 떼주겠다”고 했으나 소용 없었다. 혈액형이 달랐다. 큰아들은 질병관리본부에 간 이식 대기자로 등록한 뒤 열흘을 넘기지 못하고 숨졌으며 재해사망군인 판정을 받고 국립현충원에 묻혔다.

아버지는 안타깝고 허무해 뒤늦게 하나하나 따져보기 시작했다. 잘 아는 군 관계자를 통해 어렵게 아들의 진단서와 병력카드를 손에 넣었다. 미국에서 생화학 박사를 받은 엄마가 그 내용을 하나씩 검증했다. “아들이 군에서 감기약으로 T약 2번, A약을 1번 처방받았다. 모두 정상적이다. 하지만 아내가 미국 학회지를 뒤져보면서 놀라운 비밀을 발견했다. 이부프로펜계 소염진통제인 A약은 정상 분량을 먹어도 10만 명당 1.5명에게 급성 간부전을 일으킬 수 있다고 미 학회에 보고된 것이다.”

큰아들이 A약 부작용으로 희생됐다는 명백한 증거는 없다. 서둘러 장례를 마쳤기 때문이다. 여전히 군 측은 “깨끗한 미국에서 오래 살다 한국 군대 환경에 면역력이 떨어져 A형 간염으로 숨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A형 항체가 검출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반면 가족들은 A약 부작용을 의심한다. 중앙일보를 찾아온 아버지는 “60만 장병이 매년 감기로 A약을 한 번씩 먹는다면 9명이 자기도 모른 채 치명적인 독성 간염에 걸린다는 계산이다. 미국 환자들이야 긴급 간 이식을 통해 생명을 구할 수 있었다지만 한국은 어떠한가?”라고 반문했다.

그 아버지는 “보훈처의 국가유공자 판정도 못내 섭섭하다”고 했다. 큰아들이 유공자 판정을 받으면 동생은 6개월 공익요원으로 대체된다. 하지만 보훈처는 “국가 수호·생명 보호를 위한 직무수행 또는 교육훈련이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라는 것을 피해자 측이 객관적인 자료로 입증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안타깝지만 급성 간염 희생자가 국가유공자로 선정된 선례는 없다”고 덧붙인다. 그래서 형이 숨지는 끔찍한 과정을 생생히 목격한 둘째 아들도 하는 수 없이 군대에 갔다. 다행히 군 생활은 잘하는 모양이다. 둘째 아들은 무사히 군 복무 기간의 절반을 넘겼다고 한다.

슬픔에 잠긴 그 아버지는 물었다. “우리 가족에겐 이미 다 지나간 이야기여서 덮어둘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진상을 밝히고 명예는 회복시켜 주었으면 한다. 혹시 A약 부작용으로 더 이상 안타깝게 희생되는 장병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 전시도 아닌데 군에서 숨진 형을 두고 동생까지 입대시키는 사회는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이철호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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