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뉴스클립] 이승만 “대한민주국 재탄생”…강창희 “우리정치 정말 위기”

기사 이미지

박유미 기자

뉴스 인 뉴스 <297> 의장 개원사로 본 국회 이달 30일 20대 국회가 시작됩니다. 이후 열리는 첫 임시국회를 개원(開院)국회라 합니다. 이때 선출된 국회의장이 개원사를 발표합니다. 개원사에는 당시 국회가 직면한 시대상황과 나아갈 방향, 과제 등을 담게 됩니다. 국회는 지금까지 열아홉 번의 개원식을 열었습니다. 국회의장은 양원제였던 5대 국회를 포함해 23명이지만 개원사는 전반기 국회의장만 할 수 있어 16명이 발표했습니다.
 
“헌법 제정하고 민주정부 재건설…국회가 유일한 민족대표 기관”

제헌국회(1948년 5월 31일)-이승만 초대 의장
 
기사 이미지

1948년 5월31일 오후 2시 조선총독부 건물로 쓰였던 서울 세종로 중앙청 회의실에서 열린 제헌국회 개원식에서 이승만 의장(가운데)이 개원사를 하고 있다. 제헌국회는 모두 198명의 의원으로 구성됐다. [중앙포토]


“우리가 오늘 있게 된 데 대하여 첫째로는 하나님의 은혜와 둘째로는 우리 애국선열의 희생적 혈전한 공적과 셋째로는 우리 우방들 특히 미국과 유엔의 공의상 원조를 깊이 감사치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민족의 공선에 의하여 신성한 사명을 띄고 국회의원 자격으로 이에 모여 우리의 직무와 권위를 행할 것이니 먼저 헌법을 제정하고 대한독립 민주정부를 재건설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이 대회를 대표하여 오늘에 대한민주국이 다시 탄생된 것과 따라서 이 국회가 우리나라에 유일한 민족대표 기관임을 세계만방에 공포합니다. 이 민국은 기미년 3월1일에 우리 13도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서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독립민주국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임시정부를 건설하여 민주주의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1948년 5월31일 오전 10시 조선총독부 건물로 쓰였던 서울 세종로 중앙청 회의실에서 대한민국 국회의 제1차 본회의가 열렸다. 최고령 당선자였던 이승만 의원이 198표 중 188표를 얻어 국회의장에 당선됐다. 이날 오후 2시에는 제헌국회 개원식이 열렸다. 이 의장은 그 해 7월에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에 취임한다.
 
기사 이미지
▷여기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입법·행정·사법 3권 협동해야…분초라도 결함 일으켜서는 안 돼”

3대 국회(1954년6월9일)-이기붕 의장
 
기사 이미지
“여야 일치의 이념은 삼권의 화충 협조에 직결되는 것입니다. 분립된 3권이 협동의실(식)을 발휘해야 함은 분초라도 결함을 일으켜서는 안 될 줄로 압니다. 여기에 우리나라 정치 안정 세력의 필요성이 드러나는 것이며 정당정치 구현에 시급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책임 있는 행정, 책임 있는 입법활동에서 침전되는 민주정치의 전진은 허다한 사례의 입증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몸소 궁행하면서 민의원은 언제나 민국발전을 지향하는 거룩한 민주주의의 의표이며 방향임을 유의하고 면려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언제나 민의의 소재 여하에 입각될 것입니다. 민의를 받아들임에 충실하고, 민의를 펴기에 과감하며, 민의를 결실시킴에 대담하여야 합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인 이기붕 의장은 3·4대 국회의장을 연임했다. 3대 의장에 취임한 해인 1954년 11월엔 이 전 대통령이 종신집권을 위해 초대 대통령에 한해 3선 제한의 폐지를 내용으로 하는 헌법 개정안을 억지로 통과시켰다. 이른바 ‘사사오입(개헌 의결정족수 3분의 2에서 소수점 이하를 버림)’ 개헌이다. 1960년 이 전 대통령과 함께 부통령에 당선되었지만 ‘3·15부정선거’에 항거하는 4·19혁명으로 한 달 여 만에 사임하고 가족과 자살했다.
 
“유신헌법 따라 구성, 평화통일 지향…능률 극대화로 국력 조직화 구현”

9대 국회(1973년 3월 12일)-정일권 의장
 
기사 이미지
“본인은 이날이야말로 지난날의 부조리를 청산하고 국회의 권위와 신뢰를 회복하여 국민을 위해 일하는 국회로 새 출발하는 자성과 분발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9대 국회는 국민의 절대적인 지지에 의한 유신헌법에 따라 구성된 국회로서 이는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지향하는 유신질서 하에서의 능률의 극대화와 국력조직화라는 대명제를 스스로 긍정하고 이를 구현해야할 사명을 지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선량으로서의 본분에 충직해야할 의무와 아울러 조국의 평화적 통일이라는 대명제 앞에 대국적 입장에 서서 정파를 초월하여 제반과업에 적극 기여해야할 책무가 부여된 것이라고 보겠습니다”

▶9대 국회는 유시헌법 하에 구성된 국회다. 1973년 2월 27일 실시된 9대 총선에서는 중선거구제(1개 선거구에서 2명의 의원 선출)로 146명을 뽑았고, 대통령 제청에 의해 통일주체국민회의가 간접 선출하는 유신정우회(유정회)는 73명이었다. 임기도 지역구 의원은 6년, 유정회는 3년이었다. 국정감사와 국정조사가 실시되지 못했고, 국가모독죄 조항이 신설됐다. 1975년 10월에는 신민당 김옥선 의원이 본회의에서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 발언으로 의원직에서 물러났다.
 
“다수당 없는 4당병립 새 정치판…대화·타협으로 민주화 금자탑을”

13대 국회(1988년 5월 30일)-김재순 의장
 
기사 이미지
“국민들의 민의가 보다 선명하게 표출된 소선거구제 투표에서 결과된 제13대 국회의 정당별 의석분포는 두려움을 느낄 만큼 신비스럽습니다. 과반수를 차지하는 다수당이 없는 가운데 4당 병립의 새로운 정치판도를 등장시킨 것입니다. 이 의사당 안에 4300만 국민 전체가, 그 각계각층이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모두 들어와 앉아 있음을 절감케 하는 판국이올시다. 정치권력의 독선과 아집을 버리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고, 민주주의의 정도인 대화와 타협을 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판국이올시다. 이것이 어찌 우연일 수만 있겠습니까? 21세기를 향한 국가의 진운을 가름하게 될 우리 13대 국회가 자손만대에 물려줄 민주화의 금자탑을 쌓으라는 하늘의 명령이 아니라고 어찌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13대 국회는 소선거구제가 도입되면서 헌정사상 첫 여소야대 국회로 출범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민정당은 125석을 얻어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반면 ‘3김(김영삼·김대중·김종필)’이 주도하는 야당인 평화민주당 70석, 통일민주당 49석, 신민주공화당 35석 이었다. 청문회 도입, 지방자치법과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 제정, 의료보험 확대 등 많은 성과를 낸 국회로 평가받는다. 13대 국회의 법안 처리율은 81.1%에 달했다.
 
“제2 제헌국회 각오로 국민통합…여야 상생하는 선진국회 만들자”

17대 국회(2004년 6월 7일)-김원기 의장
 
기사 이미지
“17대 국회는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국회가 보여 주었던 과오를 극복하고 민의의 전당이자 국정논의의 중심 무대로, 국민통합의 산실로 거듭 태어나야 합니다.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의원님들은 감히 제2의 제헌국회 의원이라는 각오로 17대 국회를 성공시킬 역사적 소명을 갖고 있습니다. 17대 국회는 ‘여야가 상생하는 선진국회’가 되어야 합니다. 정쟁과 당략이 아니라 국민의 뜻이 지배하는 국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공정한 규칙에 따라 경쟁하고, 승복하고, 협력하는 상생의 정치를 펴야 합니다. 의정 단상이 정파의 이해관계나 정략적 목적에 따른 대리전으로 훼손되는 일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맙시다.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3월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친정인 새천년민주당과 한나라당에 의해 탄핵됐다. 제17대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시점이었다. 그러나 총선 결과는 그 역풍으로 열린우리당이 압승(299석 중 152석, 한나라당 121석, 새천년민주당 9석)했다. 대통령 탄핵도 그해 5월 헌법재판소에서 기각됐다. 김 전 의장이 개원사에서 강조한 것은 ‘제2의 제헌국회의원이라는 각오’와 ‘상생의 정치’였다.
 
“국민 기대와 달리 한 달 늦게 개원…모든 정치인 통렬하게 반성해야”

19대 국회(2012년 7월 2일)-강창희 의장
 
기사 이미지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는 각오로 18대 국회는 그 마지막 결실로 국회선진화법을 제정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기대와는 달리 19대 국회를 개원하는 데 무려 한 달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고 의장으로서 참으로 면목이 없습니다.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사과를 드리고 용서를 구합니다. 우리 정치가 정말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정치인들이 통렬하게 반성해야 합니다. 국가발전과 민생안정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다수당은 대승적으로 양보하고 소수당은 비판적으로 협력하는 지혜를 발휘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정치가 이번에는 변하고 있고, 또 반드시 변할 것이라는 희망을 국민 여러분께 드릴 것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2012년 5월 2일 18대 국회의 마지막 본회의에서는 국회선진화법(일명 ‘몸싸움 방지법’)이 통과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을 놓고 ‘해머·전기톱 국회’, ‘최루탄 국회’를 보여준 것에 대한 반성 차원이었다. 그러나 19대 국회는 선거구 없는 위헌 상태를 방치하는 등 ‘식물 국회’라 불리며 국회선진화법 통과 당시의 우려 가 현실화되었다.

※참조·도움말=국회 회의록, 국회 김종해 자료조사관

박유미 기자 yumip@joongang.co.kr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