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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학 사랑하는 외국인들 ‘제2의 창작자’로 키워야

20일 오전 서울 삼성동 한국문학번역원 1층 도서관에서 신혜린 미국 밴더빌트대 교수(왼쪽)와 김성곤 원장이 K리터러처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서울대 영문과 사제지간인 두 사람의 토론은 2시간이 넘도록 계속됐다. 강정현 기자

1 출간 9년 만에 다시 베스트셀러에 오른 연작 소설 『채식주의자』. 2 이 작품으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은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왼쪽)와 한강 작가. [중앙포토]


‘한강의 기적’이 시작됐다. 지난 1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에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The 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받은 소설가 한강(46)의 연작소설 『채식주의자(The Vegetarian)』가 세계 최대 온라인서점인 아마존닷컴 베스트셀러 순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21일 오후 현재 영국 아마존 100위권에 올라있고 정치 소설 부문에서는 1위다. 독자 평점(5점 만점)도 영국이 4.3점, 미국이 3.7점이다.


이 상을 지금 받은 것은 각별하다. 올해부터 인디펜던트 외국소설상과 통합, 영어로 번역돼 영국에서 출간된 외국 작품에 주는 상으로 바뀌면서 원작자만큼이나 번역자의 역량도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영국인 번역자 데버러 스미스(Deborah Smith·28)가 공동 수상자로 무대에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해당 작가의 영어 번역 작품 전체를 대상으로 하다가 한 작품으로 바뀐 것도 지난해와 다른 점이다. 그러니 작가와 번역자와 작품의 골든 트라이앵글 구도가 형성되지 않았더라면 불가능했을 거란 얘기다.


이 기적은 앞으로 한류와 한국 문학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20일 오전 서울 삼성동에 있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학번역원에서 김성곤(67·서울대 명예교수) 원장과 세계한류학회 ‘K리터러처(K-Literature)’ 분과위원장이자 미국 지부장인 신혜린(38·영문학) 밴더빌트대 교수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신 교수가 먼저 묻고, 김 원장이 답했다.


 


-이번 수상이 어떤 의미를 지니나. “쉽게 이야기하면 제2의 노벨 문학상을 받은 셈이다. 영국에서 제정된 상이기 때문에 영미권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지대한 영향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당장 한국 주문량이 25만 권에 달하고 해외에서도 추가 주문이 쇄도하고 있다. 프랑스·스페인을 시작으로 아랍어권까지 27개국에서 판권이 팔렸다. 한강 작가 개인한테도, 출판사에도 좋은 일이지만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벌써 해외 에이전트로부터 연락이 쏟아지고 있다. 또 어떤 작가들이 있느냐, 어떤 작품들을 보면 되느냐고 묻는데 굉장히 고무적이다. 전에는 이런 적이 없었다. 늘 저자세로 부탁해야 했다.”


-올가을 옥스퍼드대에서 ‘세계 문학으로서의 한국 문학’ 학회를 준비 중인데 낭보가 전해져 매우 기뻤다. 그간 학계에서는 한류가 지나치게 대중문화에 편중돼 있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문학, 그것도 현대문학이 주목받게 된 것은 매우 반가운 현상이다. “K팝과 K드라마가 한국 문학에 실크로드가 돼 줬다고 생각한다. 노래를 부르고 드라마를 보다 보면 거기서 사용되는 언어나 텍스트에 대한 궁금증이 자연히 생겨나기 때문이다. 대중문화에 이어 고급문화도 해외에 진출해야 균형을 이룰 수 있는데 문학에서도 큰 상을 받았다는 게 터닝 포인트가 될 것 같다. 해외 출판계에서는 일본이나 중국은 이미 포화상태에 달했기 때문에 막 뜨고 있는 한국이 시장성이 있다고 보는 듯하다. 노벨 문학상에도 한 걸음 더 다가간 셈인데 번역원이 다른 작가들이 해외로 나갈 수 있는 제2한강교, 제3한강교가 되고 싶다.”


-사실 『채식주의자』가 쉬운 작품은 아니다. 채식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정치적인 축과 윤리적인 축이 있는데 여기에 삶과 죽음, 인간과 동물, 진보 대 보수로 확장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어떤 점이 수상작 선정에 작용했다고 보나. “일단 재미있다. 한 번 펼치면 술술 읽히지 않나. 예전에는 유익함을 따졌지만 요즘은 재미가 더해지지 않으면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다른 엔터테인먼트가 얼마나 많은가. 물론 이 책은 장르문학은 아니고 순수문학이다. 하지만 형식적으로 판타지적이고 몽환적 요소를 차용하고 있어 더욱 쉽게 다가갈 수 있었다. 내용 또한 세계적인 주제를 한국적 소재로 풀어냈기 때문에 문화적 장벽도 높지 않다. 폭력은 어느 사회에서나 존재하는 문제다. 1부 ‘채식주의자’가 가부장 사회에서 아버지로 상징되는 폭력을 이야기했다면, 2부 ‘몽고반점’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교묘한 폭력이 존재한다. 그런가 하면 3부 ‘나무 불꽃’은 정신병원으로 상징되는 제도적 폭력을 보여 준다.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이해 부족에서 일어나는 폭력성을 ‘육식에의 거부’라는 설정을 통해 잘 그려 낸 점이 주효했다고 본다.”


-작가 특유의 여성성과 시인으로 등단한 이력 등이 잘 녹아난 결과라는 분석도 있다. “훌륭한 남성 작가도 많이 있지만 최근 들어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것도 사실이다. 1980년대 이데올로기 문학의 반대급부로 역사적 배경보다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탐구하는 여성 작가가 많이 등장했고 주목받았다. 시적 표현들도 작품성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10년 전 한국에서 발간됐을 때보다 지금 영미권에서 더 뜨거운 반응을 일으키는 이유는 뭘까. “타이밍이 시의적절했던 것 같다. 예전보다 채식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제목이 주는 집중도도 무시할 수 없다. 단순히 이국적이다, 그 문화를 잘 대변했다 수준이 아니라 보편성을 획득했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사실 우리가 얼마나 동물적인(육식하는!) 삶을 살고 있나. 극단적인 흑백논리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때로 식물적인 사고도 필요한데 말이다. 기회가 된다면 정치가들도 좀 읽고 깨쳤으면 좋겠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만이 절대적 진리라 생각하면 오산이요, 세상이 폭력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신 교수의 체감온도는 훨씬 더 뜨거웠다. 평소 한국 문학은커녕 아시아 문학에 대한 관심도 없던 동료들이 먼저 작품을 읽고 수업시간에 이 작품을 다루기 위해 수업계획서를 수정하고 독서토론 그룹이 결성되는 등 여느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김 원장이 물었다.


-우리 문학을 널리 알리는 데 번역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번 사례가 잘 보여 준 것 같다. 현지인들에게도 잘 와 닿았던 것 같은데. “2014년 열린 ‘한국 문학은 왜 노벨상을 받지 못할까’란 주제의 학회에서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된 게 번역이었다. 일부 학자는 ‘번역본이 문법적으로 맞지 않거나 의미가 통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며 직접 고쳐서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좋은 작품이 대거 소개되면서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는 모양새다.”


-번역이 특히 잘된 부분을 꼽자면. “전반적으로 뉘앙스를 잘 살렸다. 한강 작가의 문체 자체가 문장 안의 문장이나 표현 안의 표현이 켜켜이 쌓여 나가는 식인데 그 느낌을 교묘하게 살렸다. 영어의 특성상 주어가 꼭 필요하고 문장부호 사용이 잦은데, 이를 과감히 생략하고 문장을 잘 나눴다. 그래서 영어가 모국어인 독자들에게도 몽환적인 느낌이 살아 있으면서 징그럽지 않고 아름답게 다가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번역자의 역량으로 이어졌다. 데버러 스미스라는 스타 번역자의 탄생은 우리의 현주소를 보여줌과 동시에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얼마나 많이 남아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신 교수가 질문을 이어 갔다.


-스미스는 21세가 돼서야 한국어를 배웠다. 결코 빠른 시작이 아닌데 어떻게 훌륭한 번역자가 될 수 있었을까. “좋은 번역가는 세 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로 문학적 감수성이 있어야 하고, 둘째로 문장력이 뛰어나야 한다. 마지막으로 언어는 물론 문화에 통달해야 한다고 하는데 그는 그 세 가지를 모두 갖췄다. 케임브리지대 영문과를 졸업했고, 런던대 동양·아프리카대학(SOAS) 한국 문학 박사 과정을 마쳤다. 게다가 작가를 꿈꾸며 창작을 했던 경험도 있다. 학습기간은 짧지만 한국의 역사와 사회 문화를 공부해 번역에도 반영했다.”


-번역원과도 끈끈한 인연을 자랑한다고 들었다. “번역원 프로세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번역자가 원하는 작품을 지원 신청하면 이를 돕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해외에서 관심이 많은 작가나 시리즈를 기획 출간하는 형태다. 사실 일부에서는 번역하기 쉬운 작품만 골라 지원 신청을 하는 바람에 꼭 알려져야 하는 작품이 잘 안 알려진다는 문제점도 있었다. 스미스의 경우 처음엔 배수아 작품에 반해 번역 지원 신청을 했다. 『에세이스트의 책상』 『서울의 낮은 언덕들』을 번역해 발간할 예정이다. 한강의 후속작인 『소년이 온다』도 지난 1월 영국에서 출간돼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번역원 자문위원으로 워크숍에도 참여하고 있고 다음달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도 방문할 예정이다. 스미스가 차린 출판사 틸티드 엑시스 프레스와도 양해각서(MOU)를 맺어 지속적으로 김연수·황정은·한유주 등 한국 작가와 작품들을 알릴 계획이다.”


-번역자를 잘 만나는 것도 복인 것 같다. 해외 유명 작가들은 전담 번역자가 있지 않나. “그렇다. 68년 『설국』으로 노벨상을 탄 일본 작가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대표적이다. 콜로라도대 졸업 후 외교관으로 근무했던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는 의역도 서슴지 않았다. 원작을 훼손시키는 게 아닌 원작에 플러스 알파를 더하는 번역을 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번역의 의미를 지나치게 축소시키는데 나는 ‘집을 허물어 배에 자재를 싣고 다른 해안에 가서 다시 짓는 작업’이라는 작가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의 표현에 동의한다. 원작과 똑같을 수도 없고, 똑같을 필요도 없다. 그 풍토에 맞는 작품이 새로 생겨났다고 보면 되지 않을까. 늘 사이덴스티커의 존재가 부러웠는데 이제 스미스가 그 역할을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크다.”


-그동안 스미스 같은 번역자를 발굴하지 못한 이유는 뭔가. 사실 1세대 번역이 시작된 지는 오래됐는데. “1세대 번역가들은 주로 포교활동이나 평화봉사단으로 한국을 찾은 분이다. 그분들의 공헌이 굉장히 크지만 아무래도 학자이기 때문에 미학적이라기보다는 딱딱한 측면이 있다. 한국어가 약하기도 했고. 반면 그다음 세대는 양쪽 언어를 둘 다 자유롭게 구사한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를 번역한 김지영 변호사나 배수아의 『철수』로 미국 펜 번역상 최종 후보에 올랐던 소라 킴 러셀 등 번역자층도 서서히 두터워지고 있다. 지금 나오는 3세대 번역자들은 한국이 좋아 번역을 시작한 사람이다. 애정이 없으면 절대 좋은 번역이 안 나온다. 이들은 자신이 제2의 창작을 한다는 생각으로 접근하기 때문에 앞으로 더 좋은 성과가 있으리라고 본다.”


-지금의 당면과제는 뭔가. “이번 수상이 번역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데 좋은 모멘텀이 될 것이라 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인적 자원을 유치하는 것이다. 한류 붐을 타고 번역원 내 번역아카데미에 지원자가 늘고 있긴 하지만 학위가 없는 현행 2년제로는 한계가 있다. 번역대학원대학교로 전환해 석사 학위를 수여한다면 더 훌륭한 인재가 많이 모여들 것이다. 둘째는 번역가의 집 만들기다. 번역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독자적인 작업 공간이 필요한 일인데 호텔에서 머물기엔 비용도 많이 들고 여건이 좋지 않다. 전용 레지던스를 만들면 작가들과 교류도 훨씬 용이해질 것으로 본다. 그리고 현재 34개 언어로 번역 지원을 하고 있는데 영어권의 파급력을 확인한 만큼 선택과 집중을 하고자 한다.”


-앞으로 계획이나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인적 네트워크를 꾸준히 형성해 나가는 게 중요한 것 같다. 김혜순 시인은 격년제로 진행되는 세계작가대회에서 만난 요하네스 고란슨 시인과 연이 돼 미국 출판사 액션북스에서 시집을 내게 됐다. 이렇듯 크고 작은 교류들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더 많은 만남을 주선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또 미국 달키 아카이브 출판사에서 ‘한국문학 총서’, 영국 펭귄클래식에서 ‘한국 고전문학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는 만큼 고전문학에 대한 관심도 커질 수 있길 희망한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저 역시 USC 박선영 교수 주도로 소라 킴 러셀 등과 함께 한국 SF 단편선집 번역에 참여하는 만큼 더욱 다양한 분야의 작품들이 세계 무대에 많이 소개되길 희망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에 한강 작가가 영어로 수상소감을 말한 것도 잘한 일이라고 본다. 일단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으면 해외에서 강연을 하거나 독자 초청행사를 할 때도 훨씬 더 깊이 있는 교류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매년 노벨상 후보 0순위로 꼽히는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 역시 직접 소통이 가능하기에 더욱 인기가 많은 것 같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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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