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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재단’ 대선 출마 기지 되나 방한 행보에 쏠린 눈


나무는 가만히 있고자 하는데 바람이 그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나무 역시 바람에 올라탈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인지. 25~30일 한국·일본 방문을 앞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에 대한 정치권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나무를 향한 바람의 구애는 점점 거세진다. 지난 16일 새누리당 친박계 핵심인 홍문종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반 총장을 (정치권에) 모셔 오는 게 새누리당이나 대한민국을 위해 좋은 선택 아니냐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다”며 “반 총장은 새누리당에 변수가 아닌 상수”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무는 여전히 말이 없다. 18일(현지시간) 뉴욕의 코리아소사이어티 연례 만찬에서 반 총장은 내년 대선 출마 가능성을 묻는 특파원들의 질문에 “사무총장으로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안동 하회마을 방문 등 한국 내 일정을 대선 행보로 해석하는 시각이 있다’는 물음엔 “큰일입니다. 한국 가기가 겁나요”라며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대선 출마를 분명하게 부인하는 발언은 이번에도 없었다. 여태껏 그가 2016년 12월 31일 임기 만료 이후의 계획을 언급한 것은 단 두 번이다. 2013년 미국의 저널리스트 토머스 플레이트와의 인터뷰에서 “사무총장을 그만두면 회고록을 쓰고 싶다”고 했고, 2015년 4월 한 만찬 연설에선 “부인과 근사한 식당에 가서 맛있는 요리를 먹거나 손자와 손녀들을 돌보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딱 잘라 ‘퇴임 후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없으니 자꾸 정치 얘기가 나온다”는 정치컨설팅 ‘민’ 박성민 대표의 말은 ‘나무도 바람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다’는 견해다.


이렇다 할 대선 후보가 없는 새누리당 친박계는 ‘반기문 영입’에 올인할 채비다. 중앙SUNDAY는 친박계 초·재선들에게 ‘반기문의 대선 출마’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비박계 위주 비대위 인선에 항의 성명을 발표했던 친박계 열성파 20명이 대상이었다. 연락이 닿은 17명 중 10명이 “반 총장이 정계에 입문할 것”(이헌승·이채익·박맹우·함진규·이우현·박덕흠·윤영석 의원, 김선동·이만희·박완수 당선자)이라고 예상했다. “여권의 잠재적 후보군에서 반 총장을 능가할 사람이 과연 있겠나”(박맹우)는 주장이 주를 이뤘다. 나머지 7명 중 6명(윤재옥·김진태·김기선·김태흠·이완영·박대출 의원)은 “본인 의지의 문제라 잘 모르겠다”고 했고 “정계에 입문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한 이는 홍철호 의원뿐이었다. 홍 의원은 “정치판은 야생인데 반 총장도 정운찬 전 총리처럼 결국은 정치를 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반 총장에 대한 관심은 이번주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갈 그의 일정에 쏠렸다. 공개된 일정은 제주도(25~26일·제주포럼)→일본 이세시마(27일·주요 7개국 정상회의)→경기도 고양(29일·국제로터리 세계대회)→경북 안동·경주(29~30일·하회마을 방문과 유엔 NGO 콘퍼런스)다. ‘개인 일정’으로 비어있는 28일 그는 서울에서 가족들과 점심을 먹고, 평생의 멘토인 노신영 전 국무총리가 고건·이현재 전 총리 등과 함께 마련한 만찬에 참석할 예정이다. 고향(충북 음성군 상당리) 방문이 빠진 데 대해 반 총장의 동생 반기상 전 경남기업 고문은 중앙SUNDAY와의 통화에서 “상황이 좀 그래서… 형님과 상의한 뒤 가족 오찬만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왜 고향을 찾지 않나.“공무상의 출장 아니냐. 상황도 좀 그렇고….”


-어떤 상황 때문이냐.“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정치 얘기가 나오지 않느냐.”


-형님께서 퇴임 후 정계에 입문할 것 같나. “민주주의 국가인데 생각이 있으면 (대선에) 나가는 거 아닌가. 형님에게 그럴 생각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상당리 주민이자 광주 반씨 장절공파 문중의 총무인 반선환씨는 “반 총장의 정계 입문에 대해 문중에서도 의견이 갈린다”고 했다. “한쪽은 ‘기회인데 나가야 한다’, 다른 편은 ‘경력에 누가 되니 안 나가야 한다’는 쪽”이라고 했다.


새누리당 친박계 일각에선 ‘충청+대구·경북(TK) 연합’이란 그림을 그린다. ‘반 총장을 후보로 내세워 충청권을 석권하고 친박계 세가 강한 TK 지역을 합하면 이긴다’는 접근법이다. 20대 총선 비례대표 득표율에서 새누리당은 대전과 충남, 충북에서 모두 선두를 지켰다. 여기에 반기문 브랜드를 믹스하면 야권 후보가 분열되는 3자 구도 또는 여권 내 비박계 이탈로 형성될 수 있는 4자 구도에서 모두 우세를 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충청권의 새누리당 친박계 의원·당선자들은 “능력과 자질을 모두 갖췄으니 반 총장이 비전과 플랜을 내놓고 국민적 공감을 얻으면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서산-태안 성일종 당선자), “영남·호남의 들러리만 섰던 충청의 대망론이 현실화될 수 있다”(대전 대덕 정용기 의원)고 기대감을 표출했다. 하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대중→노무현, 이명박→박근혜 등 여당의 재집권 사례에서도 현직 대통령의 계파가 미는 후보가 꼭 당선되진 않았다”(민간 정치연구소 ‘더모아’ 윤태곤 정치분석실장), “친박이 생명력 유지를 위해 군불을 때지만 반 총장은 고건 전 총리처럼 결국 정치를 포기할 것”(박성민 대표)이라는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후배 외교관들이 설립을 추진 중인 ‘반기문재단’은 반 총장의 향후 행보를 가늠할 리트머스시험지가 될 수 있다. 재단의 운영 방향이나 참여 인사들의 면면이 구체화되면 반 총장이 그리는 퇴임 후의 그림이 명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계 입문이 현실화될 경우 재단은 대권 도전을 위한 싱크탱크 또는 전초기지 역할을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


대선 출마를 위한 객관적 지표는 여전히 그에게 우호적이다. CBS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16~17일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52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반 총장(38.0%)은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34.4%),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21.4%)와의 3자 대결에서 1위를 차지했다. 데일리한국이 리서치앤리서치와 함께한 여론조사 중 ‘현시점에서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인물은 누구냐’는 항목에서 그는 25.4%로 문 전 대표(16.6%)와 안 대표(14.0%)에게 앞섰다. 반 총장의 동생 반기호씨가 부회장으로 있는 보성파워텍의 주가는 8000원 선을 유지하다 지난달 반 총장의 방한 소식이 알려진 뒤 뛰기 시작해 20일엔 전날보다도 9.05%포인트 오른 1만3250원에 마감했다.


반 총장이 최근 “인종 차별과 증오를 부추기는 정치인의 발언에 분노한다”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선 후보를 겨냥한 것을 두고는 “객관적 지표뿐 아니라 정치와 권력에 대한 주관적 의지도 커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반 총장과 40년 지기인 임덕규 월간 디플로머시 회장은 “국민이 자신을 필요로 한다고 느끼면 그는 정계 입문을 결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바람만 그를 흔드는 것인지, 그도 바람을 기다리는지 25일부터 5박6일간의 행보가 힌트를 줄 것 같다.


 


 


이철재 기자, 심소희 대학생 인턴기자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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