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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의 추억’ 어린 곳 … 새로운 시장 개척 기회 노릴 때

1 라스팔마스항 전경. 오른쪽 외항 방파제를 따라 대형 석유시추용 해상 플랫폼이 잇따라 정박해 있다. 그 아래로 기존 해안을 매립해 확장한 컨테이너 전용 부두와 크루즈 등 여객선 부두, 조선소 도크 등이 자리 잡고 있다.

2 곳곳에서 볼 수 있는 총 300여 기의 풍력발전소 단지. 홍병기 기자


인구 40만 명의 자유무역항 라스팔마스는 여러모로 한국의 제주도와 비슷하다. 둥그런 화산섬 지형에다 거친 돌과 바람 많은 날씨가 너무나 흡사한 풍경이다. 섬에서 가장 높은 로스페초스산 높이가 1950m로 한라산과 같고 흑돼지요리가 현지 특산요리로 꼽히는 것도 닮은꼴이다. ‘야자수(palma·팔마)의 섬’이란 이름으로 불리던 이곳이 대륙을 잇는 해양교통 거점으로 도약하게 된 것은 14세기 이후 스페인 왕국에 정복당하면서다. 1492년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가 이곳에서 식량과 야자수 기름을 보충하고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하여 대서양 횡단의 출발점으로 유명해졌다. 지금은 유럽연합(EU)의 최남단 지역으로 아프리카 속의 유럽 도시로 꼽힌다.


라스팔마스가 한국 원양어업의 전진기지로 떠오른 것은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66년 11월. 한국인 선원 40명을 태운 한국수산개발공사 소속 ‘강화 1호’가 이곳에 입항하면서다. 북태평양에 이어 새로운 어장으로 떠오른 대서양 바다를 공략하기 위해 당시 한국 선사들은 일본에서 받은 청구권 자금으로 일본이 현지에 남기고 간 중고 어선을 구입해 조업활동에 나섰다. 전성기인 80년대에는 국내 원양어업 18개사의 전진기지와 함께 100여 척이 넘는 한국 선적 어선에, 한국 선원만 1만여 명에 달할 정도였다. 정점에 달했던 87년 한 해 동안 이곳에서만 1억1000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였다. 선장 출신인 이횡권(73) 라스팔마스 한인회장은 “한창땐 시내 곳곳에 한국 선원들이 왁자지껄하게 넘쳐났고, 한인 전용 식당·세탁소·이발소에 환전소까지 생겼을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원양어선단의 자취가 거의 사라지고 없다. 2000년대 이후 각국의 조업 규제 강화로 원양어업이 시들해지고 중국어선단과 아프리카산 냉동 수산물의 저가 공세가 이어지면서 현재 현지 조업 중인 한국 어선은 4~5척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라스팔마스 역시 최근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항구엔 이제 어선 대신 크루즈와 컨테이너선들이 들어찼고, 플랜트·조선·물류·레저 등 복합단지들이 잇따라 조성됐다. 대서양 연안 지역 내 최대 규모인 아스티칸 조선소의 경우 조선업 불황에도 불구하고 수리 전문 조선소로 탈바꿈해 3만t급, 길이 190m의 대형 선박 수리까지 가능한 도크 2개를 풀가동하며 연간 180척의 물량을 처리하고 있다. 저렴한 가격과 원활한 지리여건으로 인해 멀리 북유럽·멕시코에서까지 이곳을 찾아온다고 한다. 섬 곳곳엔 높이 160m짜리 유럽 최대 풍력발전기를 비롯한 총 300여 기의 풍력발전단지가 가동되는 등 신재생에너지 개발에도 본격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저유가 시대의 도래로 대형 해양 시추선들이 해상에서 할 일이 없어지자 라스팔마스는 재빨리 이를 겨냥해 또 변신했다. 수심(평균 30m)이 깊은 외항을 활용해 대형 해상 플랫폼 전문 정박 항구로 나선 것이다. 미국의 대형 해양 시추 전문업체 트랜스오션사 등 전 세계의 해상 플랫폼 20기 이상을 이곳으로 끌어와 장기 정박은 물론 시장 상황에 맞춰 출항 여부 등을 결정하는 기항기지로 발전시킬 계획이라고 엘바 카브레라 해양단지관리공단 대표는 설명했다. 지난 6일 한국해양대와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주최로 현지에서 열린 한·스페인 해양포럼에 참석한 선박용 전장품 전문업체 KTE의 정지영 부사장은 “선원 상륙에서 설비 해체까지 겨냥해 헬기 탑승·비상 탈출 등 대형 교육시설과 조선소 등을 함께 갖추고 있어 복합적인 서비스가 가능한 게 인상적”이라고 말했다.


이 모두가 가능한 것은 라스팔마스 일대에만 있는 독특한 ‘ZEC(Zona Especial Canaria·카나리아 경제특구)’라는 제도 덕분이다. ZEC란 95년 EU 회원국들이 지리적으로 고립된 일부 지역에 대해 세제상 특수 지위를 인정해 주기로 합의한 조세특례 지역. ‘개성공단’처럼 EU 내에서 카나리아제도에 대해 예외를 인정해 준 것으로 ▶5명 이상의 현지인 고용과 ▶10만 유로(약 1억3000만원) 이상의 투자조건만 충족하면 진출 기업들에 관세·부가세 등을 면제하고 30% 수준의 법인세를 4%만 받는다. 자유무역 지역보다 파격적인 조건이어서 ‘합법적인 조세피난처’라는 소문이 날 정도다. 그러나 정작 이곳에 입주한 400여 개 기업 중 한국 기업은 국내 중소기업 한 개 뿐이다. 라스팔마스 현지 로펌의 장우성 변호사는 “지금까지는 100만 유로 이상의 순익을 올린 기업엔 세제 혜택을 주지 않던 규정 때문에 글로벌 대기업들의 참여가 저조했지만 올 초 이 규정마저 완전 폐지됐다”며 “이런 기회를 적극 활용해 유럽과 아프리카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노려볼 만하다” 고 말했다.


 


[로드리게스 산업장관]


“아프리카 시장 ‘점령’ 전초기지로 삼으세요”


 


“아프리카 시장을 ‘점령’하려면 여기로 오세요.”


페드로 오르테가 로드리게스(사진) 카나리아주(州)정부 경제·산업·무역·지식장관은 라스팔마스를 비롯한 카나리아제도에 한국 기업의 많은 투자와 참여를 요청했다. 로드리게스 장관은 “유럽 내에서 특례를 인정받는 ZEC로 지정된 카나리아에 오면 이익금의 4%만 법인세로 내면 된다”며 “수산업뿐 아니라 한국의 물류·정보통신업·재생에너지기업들이 이곳에 기지를 세워 아프리카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는 “모로코까지 배로 한 시간 거리에 불과해 많은 물자와 기술이 이곳을 경유해 아프리카로 들어간다”며 “기업들에 매년 7%씩 성장하는 아프리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카나리아주정부는 지난해 현지 진출을 원하는 한국 양식업자에게 즉석에서 허가를 내준 것을 비롯, 이번에 라스팔마스를 방문한 한국 기업 대표단 영접에도 주요 인사들이 총출동하는 등 적극적이다.


로드리게스 장관은 “현재 미국·독일·캐나다·러시아·노르웨이 등에서 이곳에 현지법인을 세우고 아프리카 시장을 노리는 기업이 많다”며 “유럽과 똑같이 안전하고 풍부한 물자를 지닌 이곳을 한국 기업들이 적극 활용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라스팔마스가 이제 새로운 연안(offshore) 산업의 중심으로 변신해 가는 만큼 한국과도 수산업 위주에서 벗어나 새로운 교류를 만들어 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3 라스팔마스의 한국인 선원묘지 전경.


[라스팔마스에 남은 한인 자취]


한국인 선원묘지, ‘한국 광장’은 여전히 남아 있어


 


라스팔마스에 가면 곳곳에서 아직까지 남아있는 한국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4 ‘한국 광장’에서 스페인 소년들이 축구시합을 하고 있다. 5 입구 쪽 건물 벽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한국 광장’ 이름 표지판. 홍병기 기자


시내 외곽의 산나자로 시립묘지 한구석에는 이곳에서 조업활동을 벌이다 순직한 한국인 선원묘지가 있다. 2002년 한인회가 이곳저곳에 흩어졌던 묘를 한데 모아 납골당으로 조성한 이 선원묘지에는 돈을 벌러 이역만리의 바다에 나갔다가 사망한 한인 선원 102명이 묻혀 있다. 찾아오는 이 없는 묘지 앞에는 ‘땅끝 망망대해 푸른 파도 속에 자취 없이 사라져 갔지만 우리는 그들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고 시작되는 박목월 시인의 추모시가 적혀 있는 위령탑만이 쓸쓸히 서 있다.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마르샤간 지역에는 ‘한국 광장’이라 명명된 넓은 터가 남아 있다. 축구장 절반 크기의 광장 입구엔 ‘한국(Corea)’이란 빛바랜 표식이 여전히 남아 있다. 이 광장은 1995년 시에서 한인들의 끈기와 우정을 본받자며 친선과 우의의 의미에서 마련해 준 곳. 2000년대 초엽까지 한인회에서 매년 단합대회를 열며 현지 주민들과 함께 잔치를 벌였지만 최근엔 현지 한인들조차 이곳이 있는지 모를 정도다.


한인이 라스팔마스에 진출한 지 올해로 50년. 교민 대부분은 육지에 정착해 식당이나 무역·의류업 등에 종사하며 비교적 넉넉한 살림을 살고 있다. 높은 교육열로 2세들 중에 머나먼 고국을 찾아 유학 오는 사람도 꽤 있고, 현지에서 전문직종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사람도 많다.?주민애(31·사진)씨는 라스팔마스의 변호사 6000여 명 중 유일한 여자 동양인 변호사다. 일곱 살 때 부모를 따라 이곳에 온 1.5세 동포인 그는 2005년 라스팔마스대 졸업 직후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뒤 현지에서 기업 계약·세무 전문 변호사로 활약하고 있다. “어릴 적 참치잡이 배에서 뛰놀던 기억을 아직까지 잊지 못한다”는 주씨는 “앞으로 한국 기업 현지 진출의 징검다리가 돼 다양한 업무를 돕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동포 2세 유나 문(문창현·38)은 카나리아주정부의 유일한 한국인 공무원이다. 경제진흥청 소속으로 어업·관광·재생에너지 분야에서의 진흥업무를 관장하며 현지인 못지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는 그는 한인 2세들 사이에 표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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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박용한 연구위원 : park.yonghan@joongang.co.kr (02-751-5516)
‘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