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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맘의 죄책감

일러스트 강일구


“땀 흡수 잘 되려면 더워도 면 러닝셔츠를 입어야죠?” 할머니 환자가 나의 동조를 구하는 분위기다. 손주들을 키우며 면 내의를 꼭 챙겨 입히는데, 날씨가 더워지면서 ‘요즘 누가 러닝셔츠를 입냐’고 말한 며느리와 신경전을 벌이는 듯했다. 현 상황이 충분히 짐작되기에 의학적 지식만으로 무조건 한 편의 손을 들어줄 수 없었다. 평소에는 면 내의를 챙겨 입는 것이 땀 흡수에 좋지만, 더운 날 운동하며 땀을 많이 흘릴 때는 기능성 티셔츠 하나만 입는 것도 괜찮다고 해드렸다. 결국 양쪽 손을 다 들어준 셈이다.


일하는 엄마들이 많아지면 부모 외 다른 사람에 의한 양육 비율이 높아진다. 유모차를 끌고 장을 보거나 학교 앞에서 하교를 기다리는 노인들이 자주 눈에 띈다. 노년기는 신체기능 저하와 각종 만성질환 합병증으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기 쉽다. 젊은 엄마들도 힘이 부치는데 이런 신체조건을 가진 노인들이 손주를 양육하면서 건강상의 문제는 없을까? 각종 연구결과들은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할머니의 경우 손주를 양육하는 것이 건강에 긍정적 영향을 준다는 결과도 있고, 육아스트레스로 인한 노년기 정신건강 문제를 제기하는 연구들도 있다. 조부모 양육이 아이의 과체중 및 비만상태와 연관이 있다는 결과도 있다. 하지만 각국의 문화적 차이와 사회경제적 요인, 조부모 양육시간의 비율, 개인의 성향 등 많은 것을 고려해봐야 하므로 누구에게나 다 적용되는 일반화된 정답을 찾기는 어렵다.


육아의 다른 한 편인 ‘직장맘’들의 마음도 편치만은 않다. 얼마 전 직장맘의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에서 이런 장면을 봤다. “네가 하는 일이 뭐가 있냐, 노인네만 고생이지” 라는 드라마 속 남편의 대사나 정신 없이 일과 육아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애쓰지만 그 중 뭐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자괴감으로 고민하는 주인공의 모습 등은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진짜 능력 있는 여자는 결혼하고서도, 애를 낳고서도 결혼 전 역량을 유지하는 사람이다” 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말에 많은 직장맘들은 ‘내 입장 돼봐라’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애 낳더니 역시 예전만큼은 못한다는 얘기 듣지 말아야지’라며 자기최면을 걸 것이다. 하지만 직장맘들에겐 집에서 해야 할 역할에 대한 요구 수준이 직장 못지 않다. 가정에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함에 죄책감을 느끼며 ‘뭐 대단한 일 한다고 애까지 팽개치나’ 며 직장을 그만두는 여성들이 생길 수 밖에 없다. 이런 상황 속의 남편들이나 아이들 또한 맘이 편치 않다.


이런 상황들은 여러 정신적, 신체적 문제를 가져온다. 진료실에서 이와 관련된 신세한탄을 하는 환자도 적지 않다. ‘부부가 일을 나눠서 해라’와 같은 조언은 치열한 전쟁터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궁극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직장맘 출신 정치인의 증가도, 남성들의 육아휴직도 남의 얘기로만 들릴 뿐이다. 사회의 제도적 장치들이 좀 더 실용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갖춰진 상태가 되면 서로 배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진 않을까 하는 기대해 본다. 


 


박경희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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