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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 적은 침묵하는 다수’ 관객과 토론하는 파격 무대


연극은 흔히 세트로 지은 가상의 공간에서 현실과 다소 거리가 있는 이야기를 통해 간접적으로 인간의 삶을 사유하게 한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연극이 찾아온다. 세트라곤 거대한 검정색 칠판 하나뿐, 2시간 30분 동안 관객을 온전히 텍스트에만 집중시키는 이 직설적인 무대는 관객에게 사유를 넘어 토론까지 요구하는 독일 샤우뷔네 극장의 내한공연 ‘민중의 적’(5월 26~28일 LG아트센터)이다.


2012년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 초연 후 런던 바비칸센터를 비롯해 미국·독일·캐나다·호주·뉴질랜드·아르헨티나 등 세계 곳곳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화제작이다. 1883년 초연된 입센의 고전이지만, 130여 년 전의 작품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현재적이다. 공장 폐수로 인한 환경오염을 폭로하려는 학자와 도시 전체의 이익을 위한다며 사실을 은폐하려는 정치가·언론의 대립, 그 와중에 떡고물을 챙기려는 개인의 모습은 가습기 살균제 논란이 한창인 지금 우리에게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고전을 펄펄 뛰는 생물로 환생시킨 것은 ‘유럽 실험 연극의 산실’로 불리는 샤우뷔네 극장의 예술감독 토마스 오스터마이어(48·사진)다. 90년대 베를린 도이체스 테아터의 바라커 소극장에서 소외된 젊은이들의 문제를 다룬 작품들로 연극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바라커 소극장을 독일 최고의 극장으로 끌어올리고, 99년 31세의 나이로 샤우뷔네 예술감독으로 전격 기용된 이래 ‘유럽 젊은 연극의 기수’를 자처해온 그다.


“연극의 임무는 동시대를 살고 있는 개인들의 사회·세상·삶으로부터 겪게 되는 좌절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며 동시대 젊은이와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끈질기게 담아온 그의 작품들은 유럽을 넘어 미국과 캐나다·호주·네팔·일본·한국 등 전세계를 누비고 있다. 2011년 베니스 국제연극페스티벌비엔날레 황금사자상 수상, 2015년 프랑스 코망되르 작위 수여 등 수상경력도 화려하다.


그가 유럽 최고의 연출가로 꼽히는 이유는 지난 17년간 샤우뷔네의 관객층을 20~30대로 확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전통을 뒤흔드는 파격의 연출가’로 불릴 만큼 고전을 현대감각으로 리모델링하는 재주 덕이다. ‘민중의 적’도 시대를 현대로 옮기고 주인공들을 원작보다 훨씬 젊은 30대 힙스터로 설정했다. “베를린에는 지적이고 정치적으로 깨우친 젊은이들이 많지만 사회 문제에 대해 실질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선 유약한 면을 드러내기도 한다. 바로 그런 젊은이들을 그리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작품의 클라이맥스는 가족과 개개인의 건강과 행복을 대변하려다 정치경제적 이유로 ‘민중의 적’으로 낙인찍힌 학자의 연설 장면. ‘침묵하는 다수’를 토론자로 끌어들여 “진실의 최악의 적은 침묵하는 다수”임을 웅변하는 연출이다. 해외 투어에서도 언어의 벽을 넘어 관객과 배우들 사이에 열정적인 토론을 벌이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그는 “논쟁이란 형식은 베를린의 극장 환경을 반영한 것으로, 베를린은 관객과 토론하는 강한 전통을 가지고 있다”면서도 “관객들의 반응은 놀라움 그 자체다. 걱정도 많았지만 기대보다 훨씬 재미있게 전개됐다. 관객들은 배우들이 마치 진짜 정치인인 듯 맹렬히 공격했고, 배우들은 그 순간을 너무나도 즐겼다. 매 공연이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는 어드벤처”라고 했다.


하지만 “대중을 선동하기 위한 작품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연극적 경험을 통해 현실 속에서 “No”를 외칠 수 있는 용기와 일상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행동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하는 희망사항을 담았다는 것이다. 원작자 입센이 추구한 것도 개인의 ‘자유정신’이다. 무대 위 상황과 놀랍도록 유사한 현실을 겪고 있는 한국의 관객들이 극장에서 얼마나 열띤 토론을 벌일까. 결과는 우리의 ‘자유정신’에 달려있을 것이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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