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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레스 섬, 호빗족이 난쟁이코끼리 잡아먹던 곳

5만 년 전에 멸종한 플로레스인과 지금도 살고 있는 코모도왕도마뱀. 플로레스인은 코모도왕도마뱀을 잡아먹기도 했고 때로는 잡아먹히기도 했을 것이다. 플로레스인의 키는 불과 1m도 되지 않았으며 코모도왕도마뱀은 길이 3m까지 자란다. 둘 다 섬에서만 살았다.


어디 가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다 / 섬에 간다고 하면 왜 가느냐고 한다 / 고독해서 간다고 하면 섬은 더 고독할 텐데 한다. // 옳은 말이다. / 섬에 가면 더 고독하다 / 그러나 그 고독이 내게 힘이 된다는 말은 /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 고독은 힘만 줄 뿐 아니라 나를 슬프게도 하고 / 나를 가난하게도 하고 나를 어둡게도 한다.


이생진의 시집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에 실린 ‘섬, 그리고 고독’의 앞부분이다. 섬은 특별한 곳이다. 그 특별함은 고립에서 왔다. 고립은 사람에게 힘을 주기도 하고 슬픔을 주기도 하고 가난하게도 하지만, 생물의 크기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인도네시아는 인구가 2억5000만 명이 넘는 큰 나라다. 실제로 좌우의 폭이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대륙의 폭보다 넓다. 하지만 국토가 크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한 개의 거대한 땅이 아니라 자그마치 1만8108개의 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1 플로레스자이언트쥐. 플로레스 섬에 지금도 살고 있는 거대한 쥐다.


관광지로 유명한 발리 섬과 한때 분쟁지역으로 유명했던 티모르 사이에는 플로레스 섬이 있다. 포르투갈어로 ‘꽃’이라는 뜻이다. 플로레스 섬 역시 관광지로 유명한데 여기에서는 코모도왕도마뱀을 볼 수 있다. 코모도왕도마뱀은 현생 도마뱀 가운데 가장 커서 길이 3m, 몸무게 70㎏까지 자란다. 도마뱀만 큰 게 아니다. 큰 쥐도 있다. 플로레스자이언트쥐(Papagomys armandvillei)는 몸 길이가 45㎝이고 꼬리는 70㎝까지 자란다.


플로레스 섬에는 지금만 거대한 동물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2010년에는 플로레스 섬에서 거대 조류 화석이 발견됐다. 미국과 네덜란드, 인도네시아 학자들이 ‘린네 학회 동물학 저널’에 보고한 이 새는 멸종한 대머리황새(Leptoptilos robustus)의 일종으로 키 1.8m, 몸무게 16㎏으로 현생 황새보다 훨씬 크고 무거웠다. 연구진은 이 대머리황새가 날지는 못했을 것이며 설사 날았다 하더라도 아주 드문 일이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다리 뼈의 크기와 무게 그리고 뼈대의 두께로 미뤄볼 때 너무 무거워서 대부분의 시간을 땅에서 보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러니까 플로레스 섬은 과거에는 거대한 황새가 살았으며 지금도 거대한 거대한 쥐가 살고 있는 거대 생물의 세계인 셈이다. 혹시 플로레스 섬에 살았던 과거 생명들은 모두 다 거대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다.


 


키 1m, 몸무게 25㎏의 작은 인류 호빗족2003년 플로레스 섬에서 몸이 아주 작고, 특히 머리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인류 화석이 발견됐다. 어린 아이쯤은 대머리 황새가 능히 잡아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작았다. 키가 기껏해야 1m를 넘지 않고 몸무게는 25㎏이 안 됐다. 두뇌 용량은 현생 인류의 1400cc에 훨씬 못 미치는 400cc 정도로 어른 침팬지보다도 작았다.


발견자는 오스트레일리아의 고인류학자 마이클 모우드(Michael Morewood). 모우드 박사는 갓난아기보다 작은 크기의 머리를 가진 이 화석이 지금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인류라고 생각하고 플로레스인이라는 뜻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라는 이름을 붙였다. 플로레스인이 새로운 종의 인류가 아니라 현생 종의 난쟁이나 소두증 환자라고 의심할 수도 있지만, 과학자들이 그렇게 허술한 사람들은 아니다. 뇌가 난쟁이나 소두증 환자의 그것과는 달랐다. 과학자들은 플로레스인을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호빗을 떠올리며 호빗족이라고도 부른다. 플로레스인은 84만 년 전 자바섬에서 플로레스 섬으로 이주한 호모 에렉투스의 후예로 보인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에서 플로레스인을 이렇게 묘사했다. “인류가 플로레스 섬에 도착한 것은 해수면이 이례적으로 낮아져서 본토에서 건너가기가 쉬운 때였다. 그러다 해수면이 다시 높아지자 일부 사람들이 자원이 부족한 그 섬에 갇히게 됐다. 식량을 많이 먹어야 하는 덩치 큰 사람들이 먼저 죽었고, 아무래도 작은 사람들이 살아남기가 수월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플로레스 섬 사람들은 점점 난쟁이가 되었다. (중략) 하지만 이들은 석기를 만들 능력이 있었으며, 가끔 섬의 코끼리를 어찌어찌 사냥하기도 했다. 사실은 그 코끼리들도 왜소화한 종이었지만 말이다.“


유발 하라리의 해석에는 의문이 있다. 자바 섬은 다른 동남아시아 대륙과 연결됐지만 플로레스 섬은 깊은 바다로 갈라져 고대인들이 이 깊은 바다를 쉽게 건널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호모 에렉투스가 배를 만들 줄 알았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어쨌든 그들은 왜소해졌고 코끼리도 작았다.


 

2 멸종한 자이언트토끼 상상도. 오른쪽에 있는 현생 토끼와 비교하면 크기를 짐작할 수 있다. 섬에서만 살았다.


큰 바다 섬에는 포유류 포식자가 없어거대한 황새와 도마뱀 그리고 쥐가 살고 있는 플로레스 섬에 살던 인간과 코끼리는 작았다니 이상하지 않은가. 도대체 이런 일은 왜 일어날까.


섬이기 때문이다. 섬은 본토라고 하는 큰 땅과는 다르다. 바다로 인해 땅의 면적이 작고 인접한 섬이나 육지로부터 고립돼 있다. 특히 큰 바다(大洋)에 있는 섬들은 고립의 정도가 매우 심하다. 대륙붕에 있는 섬과 달리 큰 바다의 해저에서 솟아난 섬은 주변이 온통 물로 뒤덮여 있다. 그 결과 생태계와 서식 환경이 심오한 영향을 받는다. 알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1823~1913) 이래로 ‘섬생물지리학’은 박물학자에게 큰 영감을 불러일으켰다.


섬의 생물 종(種) 수는 종의 이주와 멸종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생물지리학의 주요 원리다. (물론 섬에서도 종의 분화가 일어난다.) 이주와 멸종은 섬의 크기와 고립 정도에 달려 있다. 섬이 크면 더 많은 종이 생존할 수 있고 아주 고립돼 있으면 이주자가 적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토보다 섬의 면적 당 종 수가 적기 마련이다.


육교(陸橋)가 없는 섬에 가려면 헤엄을 치든지 날아가든지 또는 떠내려가야 한다. 쥐·사슴·코끼리는 헤엄을 잘 친다. 새와 박쥐에게 물은 별다른 장벽이 아니다. 하지만 소와 기린 그리고 하이에나와 고양잇과 동물 같은 포식자에게 바다는 그야말로 넘을 수 없는 벽이다. 그러다보니 섬의 생태계는 균형이 잡혀 있지 않다. 대양의 섬에는 포유류 포식자가 아예 없다. 예를 들면 뉴질랜드와 하와이 제도에 살던 토종 포유류는 박쥐뿐이다.


섬에 이주한 생물들은 포식자가 없거나 있더라도 매우 적은 새로운 환경에 놓이게 된다. 이런 곳에서는 본토에서와는 다른 선택 압력이 작용한다. 본토에서는 잡아먹히는 것을 피하고 번식을 위해 많은 먹이를 확보해 보려는 진화 전략을 썼지만, 섬에서는 이 전략이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섬에 온 종들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행동과 생식, 개체군의 모습과 각 개체의 해부학적 특징이 변한다.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섬 환경에 가장 극적으로 대응한 것이 바로 신체의 크기 변화다. 같은 종이라 하더라도 환경에서 얻을 수 있는 자원의 양에 따라 덩치가 커지거나 작아진다. 이것을 ‘섬의 법칙(Island rule)’ 또는 ‘포스터의 법칙(Forster’s rule)’이라고 한다. 섬의 법칙은 1964년 포스터(Bristol Foster)가 1964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유래했다. 그는 논문에서 “섬에서는 작은 동물은 포식자가 없어서 커지고, 큰 동물은 먹을 게 제한돼 있어 작아진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렇게 단순한 이론이 모든 경우에 맞을 리가 없다. 따라서 ‘법칙’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상당히 많은 사례를 설명해 준다. 실제로 작은 포유류들은 커지는 경향이 있고(거대화, insular gigantism) 큰 포유류들은 작아지는 경향(왜소화, insular dwarfism)이 있다.


이런 경향은 특히 화석 종에서 확연하게 나타난다. 지중해의 섬은 매우 커다란 새앙토끼와 자이언트토끼의 고향이었다. 사이프러스와 마다가스카르에는 난쟁이 하마가 살았으며, 난쟁이코끼리와 같은 난쟁이 장비류들이 많은 섬에서 나타난다. 난쟁이코끼리 몸무게는 동시대에 본토에 살았던 선조 코끼리의 몸무게의 단 2%에 불과했다. 잘못 읽은 게 아니다. 20%가 아니라 2%가 맞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단 말인가!


여기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은 포스터와 유발 하라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몸의 크기를 변화시킨 주요 원인은 섬에는 이용할 자원이 적다는 것에서 찾았다. 땅이 좁으니 먹을 것도 적다는 것이다. 수많은 연구 데이터를 모아서 검토한 연구에 따르면 섬의 면적은 실제로 작은 포유류들을 거대화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쥐보다 커다란 동물의 경우에는 포식자가 없고 경쟁자가 적다는 게 신체 크기 변화의 중요한 동력이었다.


 

현대인과 비교한 난쟁이코끼리. 왼쪽부터 수컷과 새끼와 암컷. 섬에서만 살았다.


플로레스인들 5만 년 전에 멸종플로레스인은 9만5000~1만2000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됐다. 이 시기는 오스트레일리아에 호모 사피엔스가 도착한 5만 년 전보다 한참 후의 시기여서 큰 미스터리였다. 하지만 올해 3월 ‘네이처’에 보고된 최신 연구결과에 따르면 플로레스인들은 이미 5만 년 전에 멸종한 것으로 보인다.


고독은 힘이 되기도 하지만 슬프게도 하고 가난하게도 한다. 생태계가 섬으로 남으면 힘들어지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생태계는 가능하면 조밀한 먹이그물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이젠 섬이 아니라 본토마저 섬처럼 고독한 생태계로 변하고 있어 걱정이다.


 


이정모서울 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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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