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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도 말고 덜도 말고 최소한의 것만 갖춘 미덕


평소 비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타고난 흙 수저인 내가 창덕궁 안의 비원을 거처로 삼았을 리 없다. 비원은 13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킨 작업실의 이름이다. 지하1층을 뜻하는 B1을 우리말로 음차했다. 뭔가 있어 보이는 작명 아닌가. 오래전 의도된 단절과 고립을 선언했다. 혼자 사는 이가 제 시간을 방어하기 위한 조치다. 비밀스런 공간인 비원만큼 제멋대로 이름 붙인 비원도 나름 이유를 지닌 셈이다.


짜여진 일정이 없는 날엔 비원에 처박혀 나오지 않는다. 꽤 번잡스러워 보이는 내 행적의 이면이다. 온 종일 아무도 없는 빈방에서 글을 쓰고 음악을 듣는다. 집중하지 못하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는 글쓰기다. 그러다 지치면 음악을 들으며 논다. 몇 대의 컴퓨터로 펼치는 작업과 제한된 사람을 만나는 비원에선 아무렇게나 굴지 않기로 작정했다.


번거롭지만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린다. 기왕이면 프리미엄 등급의 커피를 써야 안심이다. 내린 커피는 멋진 잔에 담겨야 한다. 예쁘지 않은 커피 잔은 몽땅 버렸다. 손가락이 걸리는 고리의 굵기와 입술에 닿는 부분의 감촉이 중요하다. 커피 받침까지 받쳐야 안심이다. 이것만 가지곤 모자란다. 커피 잔과 받침만 들고 돌아다닐 수 없다. 커피는 문을 열고 들어가야 하는 다른 방의 소파에서 마셔야 하므로.


나뭇결의 느낌이 살아있는 간결한 나무 쟁반은 이럴 때 요긴하다. 커피 잔은 테이블 위에 올라야 비로소 마실 준비를 마친 것이 된다. 코를 벌름거리며 커피 향을 즐기고 우아한 표정을 지으며 맛을 음미한다.


봐주는 사람은 당연히 없다. 저 혼자 빛나고 저 혼자 아름다운 일상의 반복이다. 취향의 선택은 까다로울수록 좋다. 값비싼 고급품들이 아니다. 본질에 충실하고 아름다움을 풍겨야 제격이다. 사물에 덕지덕지 붙은 장식은 아무리 화려해도 싫다. 뒤로 물러난 듯한 절제가 외려 돋보이는 물건들이 좋다. 생활은 물건을 통해 펼쳐지는 것이다. 필요한 물건이라면 최고의 것을 탐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일상을 살기 위한 물건들은 아무리 호사를 부린다 해도 몇 만원이면 해결된다.


게걸스럽게 사들이고 버려지는 물건은 싫어스스로를 접대하는 일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다. 제 손으로 끌어들인 일상의 작은 풍요는 생각보다 큰 힘을 발휘한다. 품격을 갖춘 생활은 어느새 리추얼(의식)로 바뀌어 삶의 의미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혼자 있어도 무료하지 않다. 할 일과 놀잇감은 얼마든지 널려있다. 생활로 비롯되는 결과물이 곧 제 인생을 만든다는 점만이 중요하다.


온갖 물건이 있어야 하는 게 사람 사는 일이다. 쌓여가는 물건과 도구는 일상을 사는 생활의 흔적들이다. 물건의 사용처가 대부분 주거 공간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주거의 형태와 사는 방식이 생활의 내용들을 규정해 나간다. 유목민의 생활에 쓸모없는 전기용품은 우리의 필수품인 것처럼. 그들이 아끼는 찌그러진 솥단지만큼 우리는 매일 써야하는 전기밥솥을 애정해야 한다. 생활을 위해 쓰는 물건들로 삶의 스타일이 결정되기 쉬운 때문이다. 게걸스럽게 사들이고 버려지는 물건들은 이제 사절한다. 소비가 아닌 생활을 위한 물건에 깃든 아름다움만 좋아하기로 했다.


생활의 물건은 취향의 선택으로 이어져야 맞다. 취향이 빠진 선택이란 쓸데없는 물건의 숫자만 늘려가기 십상이다. 취향은 선호의 감정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골라내는 능력이란 점을 잊으면 안 된다. 취향의 선택으로 사들인 물건이어야 일관성을 지니게 된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아름다움은 형태가 전부가 아니다. 자연에 가까운 생활방식 같은 것이거나 본질의 환기를 시켜주는 존재감도 포함된다. 물건의 선택이 곧 자기표현으로 바뀌는 시대의 속성은 차라리 숙명이다.


생활하는 사람은 어떤 것을 원할까. 또한 어떻게 살고 싶은 것일까. 이런 소망과 물건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런 문제에 집착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1980년 일본에서의 일이다. 자잘한 생활의 조각들이 결국 삶이란 믿음은 솔직했다. 생활에 확실히 뿌리를 내린 것, 있는 그대로의 것, 근본이 되는 것의 가치가 원점이다. 생활을 위한 아름답고 좋은 물건들을 만든다는 무인양품은 이렇게 탄생했다. ‘무인(無印·상표가 없는)양품(良品·좋은 상품)’이란 작명엔 이 회사의 철학이 들어있다. 좋은 물건은 상표마저 지워버려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말이다.


이쁜 것은 생활의 즐거움 일깨워주는 권력36년의 세월 동안 만들어진 7000여 종의 상품은 모두 주거에 필요한 것들이다. 집과 내부를 채우는 가구에서부터 옷과 신발, 먹거리와 조리도구, 자질구레한 잡화까지. 어차피 써야 할 물건이라면 좀 더 아름답고 의미를 지니길 원했다. 품질은 기본이고 이야기까지 담겨있어야 완결이라 할 수 있다.


무인양품의 제품들은 소재의 질감과 아름다움을 그대로 드러낸다. 나무로 만든 물건이라면 원래의 결과 질감을 웬만해선 손상시키지 않는다. 장식이 없고 칠마저 얇게 했음은 물론이다. 플라스틱이 들어가는 가전제품은 색채마저 지워버린 흰색이다. 옷의 디자인은 단색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들 물건의 공통점은 단순히 장식을 덜어낸 깔끔함으로 끝나지 않는다. 궁극적으로 텅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쓰는 방식과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는 여백의 여유를 실천하는 것이라 할까. 비어있어 외려 충만해지는 동양식 정서의 유연성이 느껴진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필요최소한의 것만으로도 유지되는 아름다움은 모자람이 없다.


마누라는 일본에 들를 때마다 무인양품 매장을 가보자고 졸랐다. 무인양품의 매장은 분위기마저 달랐다. 간결한 매대에 질서 정연하게 수납시켜 놓은 깔끔함이 돋보인다. 마누라는 손에 집히는 것마다 “이쁘다!” “갖고 싶다!”를 연발했다. 결국 우리나라에서 쓸 수 없는 일본 국내용 100V 규격의 순백색 전기포트를 샀다. 말리지 못했다. “두고 보기만 해도 본전 뽑는 것”이란 선호의 이유를 무력화시킬 수 없어서다. 힘들게 감압 트랜스를 구했고 무용지물이 될 뻔한 물끓이개는 지금 우리 집 주방에서 현역으로 활약한다. 작고 동그란 아름다운 물건은 아침마다 생활의 즐거움을 일깨워준다. ‘이쁜 것’은 보이지 않는 권력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다.


비원에선 나무 쟁반을 즐겨 쓴다. 당연히 커피 잔을 받쳐들고 다니는 용도다. 참나무 원목의 질감이 그대로 느껴지는 사각 적층합판은 만지는 맛이 있다. 우리나라의 나무 쟁반에서 힌트를 얻어 디자인했다는 말을 들었다. 가끔 쟁반 위에 목기를 올려놓고 도자기 감상하듯 본다. 유려한 곡선의 매끄러움이 절묘하다. 높이를 달리해 보는 원형의 굴곡은 다채로운 표정으로 바뀌고 있는 중이다. 일상의 그릇이 이토록 아름다울 줄 몰랐다. 게다가 오랫동안 사용했던 목기는 은은한 광택을 잃지 않았다. 별것 아닌 것을 특별하게 여기는 재미는 비원에서만 가능하다.


무인양품은 대단한 것처럼 떠벌이지 않는다. 무리하지 않고 일부러 애쓰지도 않는다. 군더더기를 덜어내 가격도 비싸지 않다. 그럼에도 유명 제품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간소함의 아름다움을 실천하고 있다. 무인양품은 물과 같은 브랜드일지 모른다. 단번에 사람을 매료시키는 술과 향수 같은 힘은 없다. 대신 맑고 순수한 물의 청량감이 느껴진다. 물건에서 풍기는 인상이란 만드는 이의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겠다. ●


 


 


윤광준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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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