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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곤룡포 속에 몇 벌의 옷을 입었을까

고종이 강사포를 입은 모습의 어진. 1918년, 바단에 채색, 162.5×100cm. 국립고궁박물관


어진(御眞)은 왕의 얼굴을 그린 초상화다. 당대 최고의 화원들은 한 터럭의 수염도 실제와 같이 그리는 방법을 추구했다. 바로 이 어진에 나타난 특징을 이용해 그림 속 왕이 입었던 어의를 복원한 ‘왕 복식 착장 시연회’가 13일 오후 단국대 죽전캠퍼스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열렸다. 평생을 전통복식연구에 바친 고 석주선 선생의 별세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다.


이날 시연회에선 태조·영조·철종·고종 등 4명의 왕과 효명세자가 한삼바지와 저고리 위에 몇 가지 옷을 입었는지 차례로 보여주며 조선시대 관복을 입는 착장 예법을 선보였다. 이는 박성실 전 단국대 대학원 전통의상학과 교수와 수십 명의 후학들이 10년간 함께 땀흘려온 결과다. 박 교수는 “석주선기념박물관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소장품 가운데 왕실 관복류가 부족한 현실이 안타까워 개인적으로 왕실 관복을 고증하고 복원하는 작업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한 시대의 가장 화려하고 높은 기술력을 자랑하는 문화는 왕실과 귀족의 문화다. 따라서 왕의 복식을 연구하는 일은 그 시대의 전통복식을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홑으로 된 적삼과 속바지를 입고 겹저고리와 겹바지를 입은 후→두루마기→쾌자→중단을 입은 후 상을 두르고→강사포를 입은 후 후수 고름부분에 폐슬을 걸고→옥대를 차는 순서.


48점의 어진 바탕으로 어의 100점 복원하지만 이 작업은 말처럼 간단하지도 쉽지도 않았다. 어진을 바탕으로 한다고는 했지만 현재 남아 있는 조선시대 왕과 왕세자(왕세자의 초상화는 ‘예진’이다)의 초상화는 겨우 48점뿐. 그나마도 한국 전쟁으로 인해 손상된 상태로 전해지는 게 많다. 이번에 이들 4명의 왕과 효명세자 관복에 초점을 맞춘 것도 그중 보관상태가 가장 양호한 어진과 예진이기 때문이다.


박 교수와 제자들은 이 어진을 바탕으로 문헌과 출토유물을 비교하며 왕의 곤룡포 속 옷들을 하나하나 유추했다. 왕의 옷은 아니지만 출토된 사대부 양반들의 옷을 비교하면 그 시대의 유행을 알 수 있고, 이것을 다시 시대별로 분석하면 복식의 형태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박 교수팀은 또 이웃나라인 중국과 일본의 왕의 관복도 비교분석했다. 이 역시 문화의 흐름을 파악해 당대의 복식을 유추하는 작업이었다. 그 결과 100여 점의 어의를 복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겉옷으로 익선관·용포·옥대·흑피화를 입은 왕이 받침옷으로 답호와 철릭을 입었으며 속옷으로는 겹저고리·겹바지·홑한삼·개당고·합당고 홑바지 2종을 입었음을 밝혀냈다.


행사를 기획한 석주선기념박물관 박경식 원장은 “고된 작업이었지만 조선 왕실의 저력과 전통복식 문화를 이해하고 후세에 전할 소중한 자료가 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 선보인 어의들은 석주선기념박물관에서 7월 23일까지 전시된다.


관심 피하려 “무당이 맡겨둔 옷” 소문 내같은 기간 동안 ‘석주선 박사의 우리 옷 나라’ 특별전도 진행된다. 선생이 일생 동안 모았던 유물 중 한복 저고리만 모은 전시다.


선생은 생전에 전국을 돌며 헌 옷으로 쓰레기 취급받으며 사라지는 복식 유물들을 챙겼다. 1938년 일본으로 유학가 서양 복식을 배웠지만 “비싼 돈 들여 남의 나라까지 와서 기껏 서양 의복만 배우는 게 한심해서” 졸업작품으로 우리나라 한복을 입은 인형을 만들었고 이때부터 우리 전통복식 유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76년 단국대학교에 기증할 때 유물의 수는 총 3365점이었다고 한다. 이명은 학예사가 전한 선생의 일화는 흥미롭다. 헌옷을 집에 산더미같이 모아두니 동네 사람들은 그게 뭘까 궁금해 했고, 개중에는 비싼 유물이 아닐까 호기심을 가졌단다. 이때 선생은 사람들에게 “이 옷과 장식품들은 내가 아는 무당이 잠시 맡겨둔 것”이라고 소문을 냈단다. 이후 사람들은 찜찜해 하며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이 학예사는 “188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저고리의 길이는 짧고 길어짐을 반복했고, 소매도 지금의 서양옷처럼 일직선이었다가 붕어처럼 곡선을 이루는 등 변화를 거듭했다”며 “그 변화를 한눈에 비교하고 한복 옷감과 패턴, 색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만들어내는 숱한 문화는 다음 시대에 유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를 잘못 보존하고, 또 버려진다면 지나간 과거의 문화를 파악할 길은 없다. 평생을 우직하게 전통복식 유물을 거두고 이를 연구해온 난사 석주선 선생의 혜안과 노고에 감사할 따름이다. 또 유물을 기증받기 위해 박물관을 짓고 별세 20주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선생의 뜻을 기려 ‘석주선 기념박물관’을 한국의 전통복식 분야 대표박물관으로 키워온 단국대 장충식 이사장의 의리와 집념도 전시를 빛내고 있는 바탕이다.


공휴일·일요일은 휴관. 문의 031-8005-2392 ●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사진 단국대 석주선기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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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원 전력발전연구부ㆍ군비통제센터를 거쳐 1994년 중앙일보에 입사한 국내 첫 군사전문기자다. 국방부를 출입한 뒤 최장수 국방부 대변인(2010~2016년)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군사안보전문기자 겸 논설위원으로 한반도 군사와 안보문제를 깊게 파헤치는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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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