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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얼리도 예술…피카소·이우환 작품처럼 즐기세요


해외 CEO 인터뷰 럭셔리 보석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 이끄는 니콜라 보스

지난달 23일 싱가포르 시내에 있는 ‘예술 과학 박물관’에서 ‘보석의 예술과 과학’ 전시회가 개막했다. 프랑스 럭셔리 보석·시계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이 프랑스 자연사박물관, 싱가포르 박물관과 공동으로 기획한 행사다. 아름다운 주얼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미학적 기술, 그리고 광물과 원석이 형성되는 지구 활동을 탐구하는 내용이다. 아이를 데려 온 부모, 젊은 연인들, 나이 지긋한 어르신까지 다양한 관람객이 모여들었다.

| 몇백만원대서 수십억대 제품까지
특정 계층 전유물이라 생각하지만
예술적 영감·장인정신 얻으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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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보석·시계 브랜드 ‘반클리프 아펠’의 니콜라 보스 최고경영자(CEO)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도 겸하고 있다. 배경은 아르 데코 스타일의 반클리프 아펠 주얼리 세트를 착용한 여성들을 그린 1930년대 드로잉. [사진 반클리프 아펠]


반클리프 아펠은 보석 중에서도 하이 주얼리를 전문으로 한다. 하이 주얼리는 최상급 원석과 기술로 만든 예술성 짙은 보석을 말한다. 값을 매기기 어려울 정도로 귀한 보석을 쓰거나 희소 가치를 위해 한 디자인을 한 개씩만 만드는 제품은 가격이 수억원 또는 수십억원대에 이른다. 국내에서도 인기인 네 잎 클로버 모양의 ‘알함브라’ 컬렉션처럼 몇 백만원대 제품도 있지만 웬만한 사람은 접근하기 어려운 가격대의 명품 보석 브랜드가 대중을 대상으로 전시회를 여는 이유는 뭘까. 전시회장에서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이번 전시회를 기획한 배경은.
“우리는 비즈니스를 하는 럭셔리 브랜드지만 문화·예술 세계와도 맞닿아 있다. 유럽·미국·일본같이 진출한 지 오래된 곳에서는 상업적인 면과 문화적인 면을 밀접하게 연결해 보여준다. 한국은 이제 시작하는 단계다. 동남아시아에서도 예술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어 보석을 둘러싼 예술과 과학의 세계를 보여주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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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예술과 과학’ 전시회에 선보인 ‘반클리프 아펠’ 작품들. 금속이 보이지 않는 ‘미스터리 세팅’ 기법의 피오니 클립(左), 루비와 사파이어 장식의 부케 클립(右).

 
억대의 하이 주얼리를 사기 어려운 일반인에게 전시회는 어떤 의미인가.
“1925년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 장식미술 및 현대 산업 박람회’가 열렸다. 여기에서 ‘장식미술(Arts Décoratifs·아르 데코)’이라는 신조어가 나왔다. 건축·조형·패션·주얼리·가구·그래픽 등 시각·조형 예술 작품들이 전시됐다. 당시 관람객들은 주얼리를 장식미술 작품의 하나로 감상하러 왔기 때문에 가격이나 가치를 따지지 않았다.”
그건 그때 얘기 아닌가.
“지금도 다르지 않다. 피카소나 이우환의 전시를 보러 가는 것과 똑같다. 미술관에 갈 때 잠재적 고객의 마음가짐으로 작품 가격을 먼저 생각하지는 않지 않는가. 대부분은 ‘내가 이걸 살 수 있을까’라는 관점이 아니라 ‘작품이 감동적인가’ ‘배울 게 있나’의 시각으로 본다.”
반클리프 아펠은 기업이니 예술가의 작업과는 좀 다르지 않을까.
“물론 매장은 상거래를 위한 공간이고 그 안에서는 가격이 의미 있다. 하지만 전시회에서 가격은 의미가 없다. 관람객이 즐기고, 감탄하고, 예술적 영감과 장인정신, 스토리를 얻어가면 된다. 충분히 장식미술로 인정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전시장 곳곳에 아이들을 위한 발 받침대를 놓았다. 누구나 아이들이 보석을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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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석의 예술과 과학’ 전시회에 선보인 ‘반클리프 아펠’ 작품들. 발레리나 클립(左), 이집트에서 영감을 얻은 팔찌(右).

 
장식미술은 상업적일 수밖에 없나.
“실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업적인 부분이 분명 존재한다. 상업성은 미술 시장에도 존재한다. 피카소와 이우환 같은 대가들 작품을 둘러싸고도 거대한 시장이 형성돼 있다. 주얼리는 장식미술 중에서도 폭넓은 계층이 공감할 수 있는 품목이다. 주얼리에 호감을 갖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현대미술, 클래식 음악, 건축도 마찬가지다.”
고가의 주얼리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포멀한 느낌의 하이 주얼리는 나와는 다른 세상 사람에게나 해당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크게 보면 주얼리는 모든 사람을 위한 예술이다. 주얼리를 사용하지 않은 문명권이나 사회적 계급은 없다. 세계 어느 곳이든 오래된 부족들은 꽃이나 나뭇가지, 조개껍데기로도 주얼리를 만들어 착용했다. 주얼리는 가격이나 가치의 영역이 아니라 몸을 꾸미고 정체성을 드러내고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 의지, 즐거움에 관한 것이다. 거의 본능이다.”

 
| 사업 다각화한 다른 명품과 차별화
다른 분야 몰라 할 줄 아는 보석 외길
고품질 원석 써 대량 생산은 못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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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크리바 목걸이를 착용한 윈저 공작부인. 그의 40번째 생일 선물로 윈저공이 특별히 주문했다.


반클리프 아펠은 1906년 파리에서 설립됐다. 브랜드의 역사는 러브 스토리에서 시작한다. 보석 상인 집안의 딸인 에스텔 아펠과 다이아몬드 거래상이자 보석세공업자의 아들인 알프레드 반클리프가 결혼한 뒤 파리 방돔 광장에 부티크를 열었다. 금속이 보이지 않게 보석을 세팅하는 ‘미스터리 세팅’ 기술, 정교한 지퍼로 만든 주얼리 등 혁신적이면서 아름다운 디자인 덕에 보석 명가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 고급 시계를 제품에 추가했다. 의류·가방 등 다양한 품목을 갖춘 다른 명품 브랜드들과는 차별화된다.
보석 외길을 걷고 있다. 사업 다각화를 안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할 줄 아는 것이 보석이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 쌓은 창작과 장인 정신의 전통을 따라 지금도 예전과 같은 방식으로 제조한다. 고품질 원석을 쓰기 때문에 대량 생산을 하지 못한다. 예컨데 아이웨어(안경류)를 만든다면 우리만의 가치를 만들어야 하는데 우리가 모르는 분야이기 때문에 안 한다.”
 
| 불황 등 위기 딛고 110년 전통 유지
변하지 않는 정체성으로 살아남아
시장 대응과 투자는 끊임없이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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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와 금으로 만든 초커 목걸이를 한 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 전 남편 리처드 버턴이 선물한 목걸이는 두 개의 팔찌와 브로치로 바꿀 수 있다.

 
올해로 설립 110주년을 맞았다.
“한 세기 지나는 동안 두 번의 세계대전과 경기 불황 등 각종 위기를 겪었다. 많은 럭셔리 기업이 있었지만 생존한 브랜드는 많지 않다. 살아남은 브랜드들이 사라진 브랜드들과 다른 점은 강한 정신력,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정체성, 명확한 진실성을 갖췄다는 점이다. 반클리프 아펠, 에르메스, 샤넬, 파텍 필립, 롤렉스 등은 경제 사이클과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여러 차례 바뀌는 것을 겪었지만 계속해서 이런 가치를 유지해 나아갔다. 그 결과 살아남기 위해 변화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강해졌다. 단기적인 성과를 노리면 경제 사이클이 바뀔 때마다 그에 맞추기 위해 브랜드 정체성을 바꿀 수밖에 없다. 이는 장기적으로 매우 위험하고 유해하다.”
기업에 따라서는 변화해야 살 수 있는 곳도 있지 않을까.
“우리도 정체성이나 창작에 관한 것은 조정 없이 유지하지만 시장에 대한 대응과 투자 등은 끊임없이 조정한다. 장인 정신과 전통을 이어나가는 기반인 공방을 유지하기 위해 늘 살핀다. 대신 단기적인 움직임에는 매우 신중하다.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경제 사이클 변동 요인도 복잡하기 때문에 경기 변화를 읽어내서 가야 할 방향을 정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워졌다. CD가 사라지고 다시 LP판이 유행할 것이라고 누가 상상했을까. 진실성, 신뢰, 투명성을 높이면서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S BOX] “위대한 전시는 많은 사람에게 말을 걸 줄 안다”

특별해 보이는 보석이나 가구는 예술 작품일까, 아니면 값비싼 제품일 뿐일까. 장식미술을 둘러싼 논쟁거리 중 하나다. 장식미술은 사람이나 공간을 꾸미는 기능을 하는 조형미술이다. 주얼리·가구·샹들리에·장식품 등이 해당한다. 그 기능적 특징 때문에 때때로 상업성이 예술성을 덮는다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니콜라 보스 반클리프 아펠 최고경영자는 “장식미술은 전시회도 늘 논쟁거리”라며 패션 전시회를 예로 들었다. “(현재 활동이 활발하지 않은) 마담 그레, 엘자 스키아퍼렐리, 폴 푸아레 같은 패션계 거장의 작품을 전시하는 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디올이나 샤넬을 전시하면 이슈가 된다. 대형 패션 전시회를 기획하면서 마치 샤넬이란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할 수도 없는데 말이다.”

그는 “제프 쿤스나 피카소 전시회 뒤에도 상업 갤러리와 경매 회사 등 거대한 시장이 있다. 명품 브랜드라고 무조건 전시 내용이 좋지 않거나 상업적이라는 편견이 오히려 순진한 생각”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모든 계층에게 의미를 줄 수 있는 전시가 좋은 전시”라며 “위대한 책이나 영화와 마찬가지로 위대한 전시는 많은 사람에게 말을 걸 줄 안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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