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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초만 먹은 소 우유 ‘화이트 골드’로…모차렐라 생치즈 만들어 더 깊은 맛


세계 속으로 이탈리아 북부 자연 치즈 산지를 가다

| 농가당 평균 소 13마리 소규모 낙농
협동조합서 생산·판매해 수익 나눠
“식감 탱탱하고 촉촉한 우유 맛 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차를 타고 북동쪽으로 두 시간쯤 달렸을까. 마치 칼로 잘라놓은 것처럼 깎아질 듯한 돌로미티 산맥(The Dolomites)의 암벽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래로 넓게 펼쳐진 들판에선 회색 소가 한가로이 풀과 야생 꽃을 뜯어먹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최북단에 있는 남티롤 지방에선 우유를 ‘화이트 골드(White Gold)’라고 부른다. 그만큼 소와 우유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애정은 각별하다. 남티롤 우유로 만든 자연 치즈가 이탈리아에서 대표적인 청정 치즈로 주목받고 있는 이유다. 이탈리아 치즈는 로마시대부터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오랜 역사를 가진 유럽 치즈의 원산지로 꼽힌다. 이탈리아인들은 남티롤을 ‘축복의 땅’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생산되는 치즈 3분의 2는 이탈리아와 유럽 전역에 수출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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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티롤의 평원에서 농부가 소에 먹일 목초를 모으는 모습.


지난 13일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 광활한 목초지 한가운데 자리 잡은 농장에 도착했다. 이 농장의 주인인 토마스 메스너(33)는 300년 넘게 낙농업을 해 온 가문의 전통을 이어받아 40마리의 소를 키우고 있다. 소들은 목초를 먹거나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람이 다가갔는데도 크게 겁내는 기색이 없었다. “여기에선 소를 묶어두고 기르지 않기 때문에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요. 저 소의 이름은 마리아인데 새끼를 낳으면 어미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서 이름을 지어주죠.”(메스너)

남티롤 지역에 있는 5000여 곳의 농장은 평균 13마리의 소만 키울 정도로 전통적인 소규모 낙농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 가지고 있는 땅의 넓이에 따라 기를 수 있는 소의 수도 제한돼 있다. 넓은 땅에서 목초를 먹고 자란 소의 우유로 치즈를 만들어야 더 훌륭한 맛을 낼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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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짠 우유로 만든 모차렐라 치즈를 들고 있는 농장주.


우유의 질과 신선도가 생명인 모차렐라 치즈는 이 지역의 대표 생치즈(숙성 과정을 거치지 않는 치즈) 중 하나다. 4시간의 제조 과정을 거쳐 막 만들어진 모차렐라를 한입 물자 하얀 우유 즙이 배어 나오면서 고소함이 입안에 맴돌았다.

모차렐라 치즈를 생산하는 ‘브리미(Brimi)’의 게오르그 라이트너 품질 관리자는 “좋은 모차렐라 치즈일수록 탱탱한 식감과 함께 안에서 우유의 촉촉함이 느껴지고, 짠맛의 정도가 균형 잡혀 있다”고 말했다. 또 “고산지대에서 키우는 소가 생산량은 적지만 유지방과 단백질 함량은 더 풍부한 우유를 만들기 때문에 치즈에서 깊은 맛이 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 파르메산 경성치즈는 최소 1년 숙성
1000년 전 전통 방식 그대로 만들어
등급 매겨 품질과 정통성 보장


이런 전통 방식으로도 농가가 생존할 수 있는 건 현대적인 협동조합 체계를 갖췄기 때문이다. 이 지역에 자리 잡은 9곳의 유제품 협동조합에선 조합원인 농민들로부터 매일 공급받은 우유로 모차렐라·마스카포네·리코타 등 90여 종의 치즈와 각종 유제품을 생산한다. 치즈의 질을 높이기 위해 좋은 우유일수록 최대 50%까지 가격을 더 쳐주고, 농민을 직접 홍보 모델로 쓰기도 한다. 이렇게 치즈를 제조·판매해 얻은 수익은 조합원들에게 돌려준다.

최근에는 아시아권의 디저트 시장이 커지면서 마스카포네·리코타 치즈의 수출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이 지역 최대 협동조합인 밀라(Mila)의 크리스티안 오버도퍼 수출 담당은 “티라미수를 만드는 데 사용되는 마스카포네 치즈의 경우 전체 생산량의 11%를 한국에 수출할 정도로 아시아 시장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좋은 치즈를 만들어 농민들의 생활 수준을 유지해 주고, 청정 환경을 후손에게 그대로 물려주는 게 우리의 최우선 목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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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니의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 숙성 창고.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의 파르마 지역에서는 경성 치즈(Hard Cheese)인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가 생산된다. 12세기에 만들기 시작한 이 치즈는 ‘치즈의 왕’으로 불리며 한국에선 파르메산 치즈로도 알려져 있다.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는 생치즈와 달리 숙성 과정이 가장 중요한 ‘시간의 예술’이다. 지난 10일 방문한 ‘페라리니(Ferrarini)’의 치즈 숙성실에선 동그란 모양을 갖춘 1600개의 휠(wheel)이 천천히 익어가고 있었다. 겉면에는 치즈 이름과 생산 일자가 찍혀 있었다.

이곳에선 일주일에 한 번씩 휠을 돌려가며 닦아주는 등 균형 잡힌 짠맛을 내기 위해 숙성에 많은 공을 들인다고 한다. 여기서 최소 1년을 숙성시켜야만 지역 컨소시엄에서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라고 인정받을 수 있는 인증 도장을 찍어 준다. 최대 3년까지 숙성하는 경우도 있는데 휠 한 개당 한국에서 판매되는 가격은 100만원이 넘는다고 한다.

한 직원이 숙성이 끝난 치즈 휠을 작은 망치로 여기저기 두드리고 있었다. 이유를 묻자 그는 “소리를 들어보고 균질하지 않으면 불량 처리해 가공치즈의 원료로 쓴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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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티롤 브릭센의 치즈 가게에 진열된 다양한 종류의 치즈들.


이탈리아에선 이렇게 지역만의 전통적인 제조 방식으로 만들어진 치즈에 대해 ‘DOP(Denominazione di Origine Protetta)’ 등급을 매겨 품질과 전통성을 보장해 준다. 다른 지역에선 DOP 등급을 받은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와 같은 이름으로 치즈를 만들어 판매할 수 없다.

페라리니에서 일하는 엘리자베타 디오니지는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치즈를 만들기 위해선 우유와 소금·레닛(우유를 응고시키는 효소), 그리고 시간이 들어가야 한다”며 “1000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통 생산 방식을 유지해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 특유의 맛을 살리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S BOX] 유럽 전통 치즈, 수입 금지된 사연은
유럽의 치즈 상점에선 전통 방식으로 숙성한 다양한 치즈를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이런 숙성 치즈를 대부분 맛보기 어렵다. 살균하지 않은 우유로 만들어 숙성한 자연 치즈는 생산과 수입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축산물의 가공 기준 및 성분 규격’ 규정에 따르면 자연 치즈용 원유는 63∼65도에서 30분간, 72∼75도에서 15초 이상 또는 이와 같은 효력이 있는 방법으로 살균토록 제한했다. 이에 따라 비살균 원유를 자연 숙성하는 유럽의 전통 치즈는 수입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이탈리아의 ‘파르미지아노-레지아노’와 ‘그라나 파다노’ 등 2종, 스위스산 치즈 6종에 대해서만 수입이 허용됐다.

다양한 숙성 치즈를 개발하고 맛볼 수 있도록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지난달 숙성 기준을 완화한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비살균 원유로 자연 치즈를 만드는 경우 2도 이상에서 60일 이상 숙성하면 수입·유통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단 원료가 ‘비살균 원유’임을 표시토록 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2도 이상에서 60일 이상 숙성하면 유해한 미생물이 죽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에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같은 기준을 적용한다”며 “ 올 하반기 시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남티롤·파르마(이탈리아) 글·사진=천권필 기자 fee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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