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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유럽을 바꾼 비스마르크의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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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은 역사를
바꿀 수 있는가

마거릿 맥밀런 지음
이재황 옮김, 산처럼
368쪽, 1만8000원

역사를 인물 중심으로 살펴본다면 흔히 영웅 이야기를 꺼내게 마련이다. 인간이 어떻게 위대한 일을 해냈느냐에 초점을 맞추는 접근 방식이다. 하지만 캐나다의 역사학자이자 국제관계 전문가인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인물의 업적과 함께 개인적인 특질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그런 결과를 이끌어냈는지를 살펴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가장 주목하는 인물이 19세기 후반 프로이센의 총리로 1871년 독일 통일을 이룬 오토 폰 비스마르크(1815~1989)다. ‘현대 독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그에 대해 우리는 흔히 ‘철혈 재상’이라고만 기억한다. 무력 사용과 강경 보수 입장에만 초점을 맞추기 일쑤다. 하지만, 저자는 이를 두고 비스마르크의 일면만 바라보는 바람에 생긴 오해라고 지적한다. 비스마르크는 전쟁을 국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활용했을 뿐이다.

게다가 그는 ‘정치적인 원칙을 지극히 적게 지닌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완고함 대신 유연함을, 주장 대신 대화를, 강요 대신 협상을 선호했다. 1862년 프로이센 왕국의 총리가 된 그는 능숙하게 지지자들을 결집하고 정적들을 분열시켰다. 인간적으로 호소하기도 하고 상대의 입에 사탕을 물리거나 반대로 위협을 가해 입을 열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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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철혈 재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와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스벨트, 리처드 닉슨(왼쪽부터). 이들의 ‘개인적인’ 성격이 역사를 움직였다. [사진 산처럼]


그에게 중요한 것은 원칙이 아니라 목표였다. 원칙이란 목표로 가는 길을 장식하는 깃발에 지나지 않았다. 겸손·독실·근면·자제·살신성인의 덕목을 숭상했던 프로이센 융커(토지귀족) 출신인 그는 여기다 유연성이라는 지도자의 덕목을 추가함으로써 독일 통일을 추진하는 ‘기관차’로 등장할 수 있었다.

이 덕분에 비스마르크를 좋아하지 않았던 독일 자유주의자들도 민족주의를 고양할 수 있다는 희망으로 그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비스마르크가 프로이센과 독일제국의 총리로 있는 동안 노동계급과 사회주의자들은 혁명을 추진하기는커녕 위기에 빠졌다. 보수주의자인 비스마르크가 뛰어난 정치적 상상력과 유연성을 바탕으로 진보적인 정책을 과감하게 폈기 때문이다. 정치 분야에서는 신분에 상관없이 남자는 누구나 제국의회 의원 선거에 투표할 수 있는 보통선거권을 인정해 당시로서는 어느 나라보다 앞선 민주주의 진보를 이뤘다.

아울러 유럽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체계적이며 선진적인 사회보장 수급체계를 마련함으로써 노동계급이 혁명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했다. 목적 없는 원칙을 들먹이며 고집을 부리다 국정을 꼬이게 하는 요즘 정치인들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독일 통일은 원칙이 아닌 실용성, 고집이 아닌 유연성, 안주가 아닌 모험심이 만든 비스마르크의 걸작이다.

비스마르크는 보수를 혁신함으로써 오히려 보수의 가치를 지키고 자신과 프로이센의 목표였던 독일 통일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1871년 1월18일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에 있는 루이 14세의 ‘거울의 방’에서 새로운 독일제국이 선포될 때 비스마르크는 독일제국의 황제 빌헬름 1세의 옆자리에 섰다. 비스마르크의 품성과 헌신이 만든 역사의 현장이다.

100년도 더 지난 1989년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냉전 끝물에 짧게 생긴 기회를 번개처럼 포착해 재통일을 이뤘다. 콜은 통독을 방해할 수 있는 미국·소련·영국·프랑스 등 제2차 세계대전 승전국들을 극적으로 설득해 재통일을 이룰 수 있었다. 비스마르크가 정적들을 설득해 통일의 방해요소를 제거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 책은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 등 역사를 만들거나 망친 16명의 인물을 통해 설득과 통솔의 리더십, 오만과 독선의 비극, 세상을 변화시킨 모험심과 도전정신 등 지도자의 개인적 덕목을 다루고 있다. 대한민국의 현실을 떠올리게 하는 내용이 적지 않다.
 
[S BOX] 전쟁 반대 여론 95%를 돌려놓은 루스벨트의 비결은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단호한 지도자로 통한다. 하지만, 지은이는 루스벨트가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의회와 국민을 상대로 끈기있게 설득 작업을 펼친 끝에 이런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1937년 초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의 95%가 자국이 어떤 전쟁에도 관여해선 안 된다고 응답했다. 의회의 통제로 1935년 811억 달러의 예산 중 국방비는 11억 달러에 불과했다.

루스벨트는 의회와 국민에게 일본 제국주의와 독일 나치즘의 위험성을 계속해서 강조했다. 그 결과 39년이 되자 여론이 나치 위협을 받는 영국·프랑스·폴란드 지원에 찬성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루스벨트의 위대한 업적 뒤에는 소통·설득·통솔의 리더십이 자리 잡고 있다. 역사에 대한 비전과 신념이 있었기에 끈기있게 기다리며 역사를 만들 수 있었을까. 오늘날 우리 지도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다.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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