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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칼럼] 부모님의 신발은 십구문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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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우
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

마지막 희망이던 면접에서 최종 탈락한 뒤 고향 가는 발걸음이 무겁다. 전자제품 하나 살 돈이 무서워 고향 집에 전화를 걸었다. 부모님의 안부가 아닌, 예전에 쓰던 물건들이 남아 있는지 여부만 묻고는 전화를 끊고 제천 가는 기차표를 샀다.

청량리역에서 무궁화호 열차에 올라 좌석 맨 앞 창가에 앉았다. 발차 시간이 다가오자 아버지 나이대인 아저씨가 옆자리에 앉았다. 잠시 뒤척이던 그는 이내 자세를 잡더니 구두를 벗고 앞으로 다리를 쭉 뻗었다.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는 건 아니지만 공공장소에서 그러는 게 내심 못마땅하고 불편했다. 하지만 연세 지긋한 분에게 괜한 말을 건네기 싫어 망연히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양평, 용문을 지나 지평역에 다다르자 아저씨는 구두를 신고 황황히 자리를 떴다. 새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은 어머니 나이대의 아주머니였다. 가볍게 목례를 하고 다시 창밖을 바라보는데 아주머니도 똑같이 구두를 벗더니 벽에 다리를 기댔다. 나도 모르게 눈을 흘겼지만 아주머니는 사람 좋은 웃음만 지었다. 선잠을 자다 원주역에서 안내 방송과 옆자리 기척에 눈을 떴다. 아주머니가 내리고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가 옆자리에 타셨다. 이분도 자리에 앉자마자 구두를 벗고 다리를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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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제천역에서 내려 퇴근길에 마중 나오신 아버지의 차 뒷좌석에 올랐다. 앞자리에 어머니도 같이 타고 계셨다. 열차에서 있던 일을 말씀드리면서 “엄마 아빠 나이 되면 꼭 신발 벗고 앞으로 다리를 펴야 되느냐”며 툴툴거렸다. 허허 웃던 부모님이 “이 나이가 되면…”으로 말문을 여셨다. 오십견, 갱년기, 손목터널증후군, 당뇨, 백내장 같은 단어들이 들려왔다. 어머니는 “몸이 아프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가만히 기억을 더듬다가 이 모든 질병을 부모님이 앓았거나 앓고 계시다는 걸 깨달았다.

문득 아버지의 구두가 눈에 들어왔다.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어렸을 적 용돈을 벌기 위해 자주 닦았지만 언젠가부터 내 시선에서 벗어났던 구두였다. 얼마나 많은 진창을 밟아 왔을지, 십구문반 구두에 갇힌 발은 어떤 오욕의 세월들을 걸어왔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발이 흉터와 멍으로 가득하듯 부모님의 발도 수많은 사연으로 가득할 것이다. 인생의 고단함을 잠시나마 벗어뒀던 이들을 그토록 힐난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다.

서현우 고려대 사회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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