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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노도 세계 최정상에…24세 김기민 ‘무용계 아카데미상’

공무원인 아버지(김선호·55)는 두 아들 모두 몸에 착 붙는 타이즈를 입은 게 영 꺼림칙했다. “자식이라곤 사내아이 두 놈 뿐인데 남사스럽게….” 2004년 마침 강원도 춘천에서 서울로 발령이 났고, 예원학교에 다니는 큰 애는 꽤 재주가 있어 보였다. 키도 작고 몸도 허약한 작은 애를 이참에 공부 쪽으로 돌리려 했다. “서울엔 발레학원이 아예 없대”라며 거짓부렁으로 꼬드겼다.

강수진·김주원 이어 남자로는 처음
마린스키 동양남성 첫 수석무용수
맨부커상 수상 이어 한류 지평 확대
“난 아직 어려…매일매일 단련할 것
러시아 스케줄 많아 힘들지만 행복
그래도 떡볶이·라면은 그리워”

그러자 초등학교 5학년 둘째는 학교를 파하곤 혼자 기차에 몸을 실어 두 시간 걸려 춘천 발레학원을 갔다간 밤 12시쯤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봤자 얼마나 가겠어’ 싶었다. 하지만 둘째는 그렇게 1년을 꼬박 버텼다. “자식 이기는 아비 어디 있겠어요. 1년쯤 되는 날, 제가 손 잡고 용하다는 발레 선생님 찾아갈 수 밖에요.”

그 악바리 꼬마가 마침내 세계 최정상 발레리노로 우뚝 섰다.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기민(24)이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브누아 드 라 당스’ 시상식에서 최고 남자 무용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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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남성 발레 정상에 오른 김기민. “하루하루 열심히 단련할 뿐”이라고 말했다. 김기민이 발레 ‘돈키호테’에서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하고 있다. [사진 김기민 페이스북]


무용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는 강수진(1999년)·김주원(2006년)이 받으며 최고 여성 무용수로 등극했지만, 한국인 남성의 수상은 처음이다. 김기민은 지난해 말 파리 오페라발레단이 공연한 ‘라 바야데르’에 객원무용수로 주인공 ‘솔로르’ 역을 소화해 후보에 올랐다.

언제부턴가 김기민이 밟는 한발 한발은 한국 발레의 새 역사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영재 과정으로 입학한 그가 대중 앞에 ‘발레리노 김기민’를 각인시킨 건 2009년 12월.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지그프리트 왕자 역을 맡아 국내 직업 발레단 역사상 최연소(17세) 주역으로 기록됐다. 2011년엔 세계 최정상 발레단인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 전격 발탁됐다. 발레단 230여년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남성이었다. 입단 두 달 만에 ‘해적’과 ‘돈키호테’에 주역을 꿰찬 데 이어 지난해 4월엔 마침내 수석무용수로 등극했다.

모스크바에서 시상식을 마치고 생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김기민과 18일 오후 전화로 만났다.
수상을 축하한다. 소감이 남다르겠다.
“너무 얼떨떨하다, 예상을 전혀 못해 사실 수상 소감도 준비하지 못했다. ‘어버버’ 하고 내려왔다.”
러시아에 간 지 5년이 됐는데.
“연습과 공연 스케줄이 너무 빡빡하다. 힘들긴 하지만 고통스럽기보다 행복하다. 어릴 때부터 비행기타고 공연하고 곧바로 또 떠나는, 온전히 무대만을 위한 삶을 꿈꿔왔다. 아, 한가지 한국의 떡볶이와 라면은 그립다.”
초등학교 5학년때 1년간 춘천으로 발레 배우러 다녔다.
“그때 기차값 등 교통비가 왕복으로 2400원 들었다. 3000원 갖고 갈 땐 배를 곯았고 5000원 들고 가면 소시지와 콜라를 사먹을 수 있었다. 지금도 기차를 타고 공연을 갈 때면 그 소시지가 생각난다.”
이번 수상의 의미라면.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상이 꼭 실력과 비례한다고 믿지도 않는다. 그리고 난 아직 어리고 가야 할 길도 멀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단련할 뿐이다.”

김기민은 형제 발레리노로도 유명하다. 그의 형 김기완(27)은 현재 국립발레단 주역으로 활동 중이다. 1m88㎝의 훤칠한 키, 안정된 자세 등으로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김기민은 “형처럼 되고 싶어 죽도록 연습했다. 돌이켜보면 형에 대한 콤플렉스가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고 말하곤 했다. 동생의 수상 소식에 김기완은 “나를 늘 자극시켰던 동생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김기민의 트레이드 마크는 발군의 점프력이다. 체공 시간이 길 뿐 아니라 사뿐히 내려 앉는 모습에 “시간을 멈춘 듯한 점프”란 찬사를 받곤 했다.

김기민의 멘토였던 이원국(49)씨는 “고민하는 발레리노”라고 평가했다. “어떤 동작을 말하면 다들 테크닉 따라 하기 바쁘다. 하지만 기민은 곱씹고 연구했다. 몸보다 먼저 가슴으로 받아들였다”고 회고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용걸 교수(무용원)는 “상대적으로 평가절하돼 왔던 한국 남성 무용수들의 기량이 이제야 제대로 인정받았다”며 감격해 했다. 홍익대 고정민 교수(문화예술경영학과)는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에 이어 김기민까지 한류의 지평이 순수예술로 확장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현재 예정된 김기민의 한국 공연은 없다.
 
◆브누아 드 라 당스(Benois de la Dance)=‘브누아 무용상’이라는 뜻으로 발레의 개혁자 장 조르주 노베르(1727~1810)를 기리기 위한 상이다. 국제무용협회 러시아 본부가 1991년 제정했으며 현재는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상임안무가였던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심사위원장이다. 콩쿠르 실연 심사가 아닌, 전세계 현역 무용수를 대상으로 한 시상이기에 ‘발레계 아카데미상’으로 불린다. 25년간 실비 길렘, 줄리 켄트 등이 수상해 월드 발레 스타로 가는 관문이라는 평가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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