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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호림박물관 세워 문화재 1만5000점 지킨 기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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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호림박물관 개관 30주년 기념전을 둘러보고 있는 고(故) 호림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왼쪽)과 며느리인 오윤선 호림박물관장. 호림이 일일이 보고 고른 명품은 그의 자식과 같았다. [중앙 포토]


문화재 사랑으로 이름났던 호림(湖林) 윤장섭 성보화학 명예회장·성보문화재단 이사장이 15일 오후 1시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 94세.

윤장섭 성보화학 명예회장 별세
고유섭 개성박물관장 강의에 감명
“돈 있으면 문화재 한 점이라도 더”
유홍준 “20세기 사설박물관 선구자”
국내 첫 미술사학 명예박사 받아


고인은 1950년대부터 국내 농업과 문화재, 교육문화 발전에 힘쓰며 평생을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에 모범된 삶을 일궜다. 1982년 서울 대치동에 개관한 호림박물관을 키워 신림동에 확장 이전했고, 2009년에는 신사동에 분관을 개관하는 등 민족문화의 계승에 힘을 쏟았다. 고인의 노력으로 해외로 반출될 뻔했던 국보·보물급 유물 등 1만5000여 점이 우리 곁에 남게 됐다.

고인은 1922년 개성 출생으로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한 뒤 57년 성보실업을 시작으로 유화증권, 서울농약(현 성보화학)을 창립해 산업역군의 길을 걸었다. 1981년 성보문화재단을 설립해 호림박물관을 개관한 뒤에는 우리 문화재의 수집과 연구에 정성을 다했다. 개성공립상업학교 재학 중 접했던 미술사학자 우현(又玄) 고유섭 당시 개성박물관장의 특강에서 싹튼 문화재에 대한 열정이 고인을 “광고나 홍보할 돈이 있으면 문화재를 한 점 더 구입하는 것이 낫다”는 의지로 이끌었다.

고인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2001년 국민훈장목련장, 2009년에는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또 2011년 명지대학교가 국내 최초로 고인에게 미술사학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는 “다른 대학에서 호림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드리겠다는 제안이 많았으나 다 물리치셨다고 들었는데 미술사학이라면 받겠다고 하셔서 문화재에 대한 그 분의 사랑을 새삼 확인했다”고 전했다.

유 교수는 “20세기 한국 사설박물관 문화에서 호암 이병철 전 삼성 회장과 더불어 선구자 구실을 한 어른”이라며 “호림박물관을 후손이 지킬 수 있도록 개인 재산을 출연해 물적 토대를 든든히 세워놓고 가신 점은 존경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이원광 호림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명예회장님은 도자기 중에서도 특히 청자를 좋아하셨는데 한 점 한 점 다 직접 보고 사셨을 만큼 수집 철학이 투철하셨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박물관 개관 30주년을 기념해 펴낸 『호림, 문화재의 숲을 거닐다』에서 자신의 거래 원칙인 ‘수집가론’을 밝힌 바 있다. 모든 면에서 낭비하지 않고 검소하게 사는 게 신조였으나 “소장자가 값을 부르면 절대 낮추지 않되, 대신 능력이 닿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물건은 깔끔하게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고인을 아는 문화계 인사들은 입을 모아 “그의 첫 번째 자식은 호림박물관”이라고 말한다. 고인의 별세로 국내 3대 사립박물관을 일궜던 간송 전형필, 호암 이병철 등 선구자 1세대가 다 역사 속으로 떠나갔다.

유족으로는 부인 박정윤 여사와 성보화학 부회장 재동·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 재륜·유화증권 회장 경립 씨 3남, 며느리 오윤선 호림박물관장 등이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18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도 고양시 선영이다. 02-3010-2230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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