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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명품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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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아침입니다.
신문을 넘기다가 낯익은 얼굴이 눈에 띄었습니다.
건축가 김석철 교수의 사진이었습니다.
그 사진 위엔『국내 최초 도시계획(여의도) 주도한 ‘미스터 마스터플랜’』이란 제목이 있었습니다.
워낙 열정이 넘치는 김교수를 아는 터라 또 무슨 일을 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 『‘삶과 추억’ 건축가 김석철교수』란 소제목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본 순간 철렁했습니다.

하루아침에 삶이 추억이 되어 버린 그의 부고 기사였습니다.

허망했습니다.
그런데 얄궂게도 그의 미소가 스쳐 지나갔습니다.
예술의 전당에 들릴 때,
여의도를 오갈 때,
동숭동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을 지날 때, 문득 떠오르던 그 미소였습니다.

김교수를 처음 만난 건 2013년 2월이었습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의 사무실을 둘러보다 묘한 것을 봤습니다.
용도를 가늠할 수 없는 인체 모양의 틀이 벽에 걸려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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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기자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천연덕스럽게 미소 지으며 그가 답했습니다.

“방사선 차단용 납 가운이요. 작년에 대수술 후 방사선 치료를 66차례 받았죠. 아마 기록일 걸요. 보통사람은 서른 번 이상 못하도록 되어 있는 걸 죽기 살기로 대들었어요.”

그는 10년째 위암과 식도암을 친구처럼 끼고 살아왔다고 했습니다.
벽에 걸린 그것은 삶과 죽음의 사투를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그것을 마주하고서도 그가 보여준 것은 천연덕스런 미소였습니다.
묘한 물건과 대비된 그의 절묘한 미소가 사진쟁이의 눈을 홀리게 했습니다.
인터뷰가 시작되면 저 미소를 찍으리라 작정했습니다.

그날 인터뷰에서 그는 오래 가슴에 품고 있던 꿈을 이야기했습니다.

“한반도 남해안과 일본 서남해안을 아우르는 메가폴리스를 구상 중입니다. 포항·울산·부산·마산·창원·진해·여수에 일본 후쿠오카를 이어 항만과 공항을 접붙인 ‘아시아 크루즈 루트’를 만드는 겁니다. 미래 산업의 핵심 키워드는 관광 아닙니까? 세계를 압도하는 남해안 메가폴리스가 될 겁니다.”

이른바 ‘희망의 한반도 프로젝트’를 들려주며 보여준 미소는 의미심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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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말미에 취재기자가 김석철이란 이름 앞에 어떤 명칭이 붙었으면 좋겠는지 물었습니다.

“20세기 최고의 어반 플래너(Urban Planner). 스페이스 매트릭스 디자이너”라 답했습니다.
그 말끝에 한참을 파안대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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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웃은 후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내가 헬기를 좋아해요. 여의도를 설계할 때부터 타기 시작했는데, 헬기에 오르면 찌릿찌릿 전기가 와요. 책 읽는 것보다 하늘에서 저 아래 인간 공동체를 내려다보는 게 더 좋아요. 살아 있잖아요. 그들이 더 잘살 수 있게 공간 인프라를 디자인하는 것, 이거야말로 미래 창조 아니겠소.”

취재기자와 나를 번갈아 보며 빙긋이 웃는 것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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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내 보여준 그의 웃음, 참 다양한데다 오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따로 잠깐 사진을 찍자고 부탁하며 그에게 말했습니다.
“웃음이 참 명품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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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답 대신 미소를 보이며 나를 빤히 쳐다봤습니다.
잠깐 또 뜸을 들였습니다.
그날 그는 뜸을 들일 때마다 어김없이 미소를 먼저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항상 미소를 보여준 후에야 이야기를 이었습니다.

“잘 웃죠. 그러니 사람들은 저더러 미소가 명품이라고 하죠. 하지만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이유가 있어요. 태어날 때부터 왼쪽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못 알아들을 땐 그냥 웃는 거죠. 이를테면 멀리서 사람들이 나를 불러요. 다른 사람들은 안 들린다는 것을 몰라요. 사실 못 알아듣는다는 얘기죠. 그래서 웃어요.”

그가 들려준 건 명품 미소의 비밀이었습니다.
그의 미소는 일 평생 들리지 않았던 왼쪽 귀로 인해 켜켜이 쌓인 삶의 미소였습니다.
비밀을 듣고 나니 왼쪽귀가 보고 싶어졌습니다.
덥수룩한 머리에 가려 제대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머리를 헤쳐 왼쪽 귀를 보여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또 나를 빤히 쳐다보며 미소 지었습니다.
그러면서 그가 농담을 했습니다.

“우리 각시도 오른쪽으로만 보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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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손으로 머리를 헤치며 왼쪽 얼굴과 귀를 보여줬습니다.
그러면서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감은 얼굴에조차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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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후 눈을 뜨며 그가 말을 이었습니다.

“안 들려서 좋은 것도 있어요. 오른쪽을 베고 누우면 완전히 적막강산이 되죠. 그 안에서 내 안의 나를 만나고 공간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구상하기도 합니다.”

이 말끝에 보여준 미소 또한 명품과 다름없었습니다.
예술의 전당,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 여의도를 지나며 문득 떠오르던 미소,
그의 부고를 접해 허망한데도 얄궂게 스쳤던 게 바로 그 미소였습니다.
이젠 그리워질 미소가 되어버렸습니다.
삼가 김석철 교수님의 명복을 빕니다.

권혁재 shotg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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