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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사진관] 0.5평 CEO들의 삶 “갑갑해 보인다고요? 안에서 보면 바깥세상은 아주 넓은데요, 뭘”


몸 하나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좁은 공간에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밖에서 보면 새장 같다. ‘저렇게 좁은 곳에서 어떻게 하루 종일 견디며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그러나 이는 사람들의 편견일 뿐이다. 정작 당사자들은 안이 아니라 훨씬 더 넓은 바깥세상을 바라보며 일한다. 생계형 CEO들이다. 그래야 산다.

땅이 필요 없는 이동형 점포도 있다. 최근에는 ‘푸드트럭’에서부터 ‘칼갈이’ 차량도 등장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땅은 돈이다. 서울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곳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설계도에도 나오지 않은 좁은 시장 골목 점포에서부터 이동형에 이르기까지 ‘0.5평 일터를 지키는CEO’들이 살아가는 삶의 풍경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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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신진시장 중앙통로. 책상 크기만한 공간을 가진 소점포가 즐비하다. 유현옥(79) 씨는 이곳에서 30년째 옷 수선집을 운영한다. 그동안 바꾼 재봉틀만 네 개라고 한다. 유씨의 일터에는 재봉틀과 의자 그리고 쌓인 실타래가 전부다. 기지개 한 번 펴기조차 힘든 곳에서 한 세대의 시간을 버텨왔다. 그러나 자부심 충만이다. 남에게 손 한 번 안 벌리고 재봉틀에 의지해 5남매를 훌륭하게 키워냈기 때문이다. 유씨의 주요 고객은 시장에서 옷을 사서 몸에 맞게 수선하려는 사람들이다. 기장 2000원, 허리 줄임 3000원, 자크 교체 1만원이다. 유씨는 이렇게 말한다.
 
이 나이에 월급 주며 나를 받아주는 곳은 세상 어디에 있겠어요. 일이 있어 행복한 거죠. 건강이 허락한다면 죽을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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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시장에서 멀지 않는 동묘 벼룩시장. 간판도 상호도 없다. 유리창에 ‘돈’, ‘우표’ 라고만 쓰여 있다. 옛날 우표와 화폐를 사고파는 곳이다. 김학수(64) 씨는 이곳에 보증금 300만원, 월세 20만원을 주고 점포를 냈다. 외국인 관광객과 동호회원들이 주 고객이다. 미닫이 유리문이 달린 점포 안에는 1970년 대 후반까지 유통된 종이돈과 우표가 전시돼 있다. 돈 되는 ‘골동품’은 공간 어딘가에 숨어 있다. 단골이 아니면 쉽게 보여주지도 않는다. 한때 어려운 시기를 겪었지만 요즘은 나름 경기가 좋은 편이란다. 유커를 비롯한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어난 덕분이다. 큰돈은 못 벌지만 노부부가 생계를 유지하는 데는 문제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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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문시장 중심에 자리 잡은 대도수입상가 E동 지하. 경계를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작은 점포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그런데 유독 눈에 띄는 매장이 있다. 간판이 예사롭지 않다. ‘작은 공간’. 수제 액세서리를 파는 곳이다. 한때 대학에서 보건학을 가르쳤던 유진향(가명) 씨가 4년 전에 문을 연 곳이다. 벽면 크기가 아파트 현관문 절반 크기나 될까. 작지만 수제 공예품을 진열하는 어엿한 갤러리다. 유씨의 손재주가 입소문 나면서 좁은 공간에서 큰 수입을 올린다. 유씨가 만든 제품은 백화점에도 납품된다. 유씨는 “최근에는 영국의 한 박물관에도 들어갔다”고 귀띔한다. 한 달 수익이 얼마나 되느냐는 질문에 “한 달 임대료와 기타 부대 비용 70만원을 제외하고도 웬만한 직장 여성들의 월급보다는 조금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장사치의 ‘수입 에누리’는 아는 사람은 안다. ‘잘 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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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규제완화 정책으로 푸드트럭 운영이 합법화됐다. 땅이 필요 없는 이동형 소점포도 급격하게 늘어난다. 푸드트럭에서 과일, 커피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아이템도 점점 다양해져 간다. 최근에는 소형 다마스 차량을 이용한 칼갈이가 성업 중이다. 직접 고객을 찾아가는 ‘방문 판매’ 형식이다. 2년 전 칼을 갈아주는 업종에 뛰어든 박왕순(45) 씨. 그의 일터는 겨우 몸 하나 들어가는 다마스 화물칸이다. 가맹비와 차량 구입비, 칼 가는 기계 등 총 3000만원을 투자했다. 그는 주로 서울 서초구 일대의 요식업체를 돌며 주방용 칼과 가위를 갈아준다. 개당 3000원을 받는다. 칼과 가위의 날은 쓰면 쓸수록 무뎌진다. 그동안 영업력을 발휘해 고정고객을 상당수 확보하고 있다. 박씨는 “웬만한 월급쟁이보다 높은 수입을 올린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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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 판매업은 자본이 필요하지만 시계 수리업은 손바닥 만한 공간만으로도 충분하다. 남대문시장 지하 쇼핑센터 6번 출구에서 시장으로 올라가는 길은 시계 수리상이 몰린 ‘시계골목’이라고 할 만하다. 8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이곳은 시계상가가 성시를 이뤘다고 한다. 지금은 20곳 남짓 남아 있다.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시계는 한때 사양산업이 됐다. 그러나 트랜드는 돌고 도는 모양이다. 아날로그 바람을 타고 다시 손목시계를 찬 사람이 늘어나면서 시계 수리업도 다시 기지개를 켠다.

최도하(78·가명) 씨는 이곳에서 40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점포라고 해야 작업대 겸 유리 진열장 하나와 의자가 전부다. 과거에는 시계 판매에 주력했지만 지금은 배터리 교체 등 수리 전문이다. 노점이다 보니 비바람이 치는 날이 가장 고역이다. 그러나 최씨는 “40년 동안 한자리를 지켜온 덕분에 단골손님이 많다”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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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석(73)씨는 중구 서소문동 한 건물에서 3가지 품목을 판매한다. 담배와 우표, 수입인지가 전부다. 전자수입인지가 나오기 전에는 수입인지의 한 달 매출이 3억 원이 넘기는 때도 많았지만 지금은 판매가 뚝 끊겼다. 디지털 시대의 그늘이다.

5년 전부터 이곳에서 영업을 시작한 김 씨는 "수입의 크기를 떠나 출퇴근할 수 있는 공간을 가졌다는 게 행복하다"며 소박한 꿈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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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의 원단시장인 서울 동대문종합시장 인근에서 생과일 주스 집 '과일나라'를 운영하는 한희관(29)씨. 건물 바깥에 쳐놓은 파라솔 아래에 믹서기와 커피 포트가 그의 재산목록 1호다. 한 씨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시작으로 노래방 직원, 촬영스텝을 거쳐 4년 전 이곳에 정착했다.

한 씨는 요즘 날씨가 더워지면서 커피보다는 과일 판매로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1인3역을 자처하는 그는 아침 8시 출근해 7시 퇴근하는 어엿한 사장이다. 주문이 많을 때는 하루 3천 원짜리 200개의 과일 주스를 만들어 배달한다. 한 명의 아르바이트를 직원으로 쓰고 있지만 과거 남 밑에서 일하던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수입이 늘었다.

사진·글= 김상선 기자 kim.sang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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