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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용품에 들어간 화학성분 뭔지, 물질 정보 깜깜이

아기와 어린이, 산모가 원인 미상의 폐질환으로 쓰러져 갔다. 그 원인이 마침내 가습기 살균제라는 사실이 밝혀진 지도 5년이 지났다. 239명의 사망자(환경단체 접수 기준)가 발생했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가습기 살균제와 같은 유해 화학물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 곳곳에 구멍이 뚫려 있다. 살균제 사고와 같은 재앙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어떤 점이 개선돼야 할지 짚어봤다.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공개 안 해지난 3월 초 환경부는 세정제·합성세제·표백제 등 생활용품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 정보를 제공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오픈한다고 밝혔다. ‘생활환경 안전정보시스템(ecolife.me.go.kr)’이다. 15개 품목 1532개 제품에 사용된 화학물질 정보를 쉽게 검색해 확인할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가습기 살균제 사고에도 유해물질 관리 허술

하지만 14일 본지가 이 사이트에 들어가 살펴본 결과, 환경부 설명과는 차이가 컸다. 세정제로 분류된 S제품의 성분 정보에는 ‘계면활성제 10% 이상~15% 미만, 산소계표백제, 산도 조절제, 피부보습제, 경수연화제, 안정제’만 적혀 있었다. 업체의 자가검사번호가 소개돼 있지만 추가 정보는 볼 수 없었다. 사용상 주의사항도 제품 포장에 붙어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놓았을 뿐이었다.



표백제인 O제품도 성분 정보는 ‘표백제, 알칼리화제, 표백활성화제, 형광증백제, 향료, 인산염 1% 미만’으로만 돼 있다. 어떤 화학 성분이 얼마나 들어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었다. 이 사이트에는 각 화학물질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정보도 있었지만 제품별 화학물질 정보가 부실해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못했다.



임종한 인하대 의대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제한물질로 분류된 물질이 아니면 어떤 물질을 사용해도 공개할 의무가 없는 게 현실”이라며 “환경부가 제한물질을 추가로 지정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제한물질은 특정 용도로 사용할 경우 위해성이 커 해당 용도로 제조하거나 수입·판매·사용 등을 금지하는 물질을 말한다. 환경부는 현재 납·카드뮴 등 12종을 제한물질로 지정해놓고 있다. 하지만 2009년 이후에는 추가로 제한물질을 지정한 사례가 없다. 산업계의 반발로 추가 지정이 쉽지 않다는 게 환경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제한물질의 용도 제한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중금속인 6가크롬의 경우 유럽 등 외국에서는 가죽·가죽 제품에서 0.0003%를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으나 국내에서는 이 용도와 관련해서는 별도 제한이 없다.



탈취제·방향제 유해물질 1년간 방치가습기 살균제 사고 이후 살생물제(Bioci de)에 대한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랐지만 환경부는 최근에야 유통 중인 살생물제에 대해 전수 조사를 시작했다. 살생물제는 가습기 살균제처럼 비농업 분야에서 사용하는 농약으로 원하지 않는 생물체를 제거하기 위한 제품을 말한다. 살생물제에 대한 전수 조사는 내년 말에나 완료될 전망이다.



더욱이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은 지난해 4월 연구용역을 통해 유럽연합(EU)에서 사용을 금지한 물질(2-메틸-4-이소티아졸린-3-온)이 탈취제·방향제 등에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지만 1년 넘게 방치해 온 사실도 최근 드러났다. 홍정섭 환경부 화학물질정책과장은 “방향제·탈취제 관리 업무가 지난해 4월 환경부로 이관됐고, 지난달에야 흡입독성 실험이 완료됐다”며 “연구 결과를 토대로 조속히 안전기준을 마련하겠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지난해 1월 시행에 들어간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에 따라 살생물제를 ‘위해우려 제품’에 포함해 관리하고 있다. 위해우려 제품을 생산·수입하는 경우 유해 화학물질의 중량 비율이 0.1%를 초과하고 연간 사용량이 1t을 초과할 경우 화학물질 유해성과 용도 등 정보를 신고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는 지난해 6월 살생물제인 소독제·방충제·방부제 세 가지 품목에 사용할 수 있는 물질의 목록을 선정해 발표했다. 에탄올 등 소독제용 39개 물질, 나프탈렌 등 방충제용 33개 물질, 테부코나졸 등 방부제용 15개 물질이다. 이들 목록에 포함되지 않은 신규 살생물 성분을 포함한 제품은 시장 진입 전에 사전 검토를 거치게 했다.



환경부는 살생물제 전수 조사 결과를 토대로 독성이 크고 소비자 노출 우려가 높은 물질에 대해 위해성 평가를 실시할 예정이다. 평가 결과에 따라 기준을 마련하거나 용도를 제한할 방침이다.



하지만 위해우려 제품 15종 가운데 소독제·방충제·방부제 3종을 제외한 나머지 생활화학제품, 즉 탈취제·세정제·합성세제 등 12종은 사전 검토 과정 없이도 시장 진입이 가능할 정도로 규제가 느슨하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위해우려 제품 15종 모두 신규 살생물 물질을 사용할 경우 사전 검토를 받도록 할 계획이다. 또 유통량이 많고 노출 수준이 높은 살생물 제품을 위해우려 제품으로 추가 지정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심상정(정의당) 의원실 박항주 보좌관은 “가습기 살균제 재앙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화평법이 제정됐는데 입법 과정에서 산업계 반대로 핵심 조항이 빠졌다”며 “화학약품 제조사와 제품 제조사 사이에 어떤 화학물질을 어디에 사용하는지 정보를 공유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솜방망이 처벌에 오염 기준 초과 반복생활화학제품뿐만 아니라 생활 곳곳에는 유해물질로 인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학교 인조잔디에서는 납이나 벤조피렌 등 중금속·발암물질 등이 다량 검출되고 있다. 어린이들이 사용하는 학용품이나 장난감에도 프탈레이트나 납 등으로 오염된 사례가 계속 적발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필통에서 환경호르몬의 일종인 프탈레이트가 기준치의 200배 넘게 검출됐다. 지난달에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은 완구에서 기준치의 166배를 초과하는 납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이처럼 기준을 초과한 유해물질이 검출돼도 해당 업체에 대해서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리는 바람에 오염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가기술표준원은 해당 제품을 제품안전정보센터 홈페이지(www.safetykorea.kr)에 공개하고 해당 제품에 대해서는 판매 중지와 회수 처분을 내리는 것이 전부다. 해당 업체에 영업정지 등의 강력한 처분을 내리는 사례는 찾기 어렵다.



지난달 4일 서울 관악경찰서에서는 30대 여성이 경찰관에게 황산을 뿌린 사건이 발생했다. 황산·염산 같은 위험한 유해 화학물질은 온라인에서 판매할 수 없도록 정부가 감시를 강화했지만 이 사건에서 보듯이 인터넷을 통한 거래가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화학물질센터 실장은 “환경부 공무원들이 그동안 규제 완화를 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주눅이 들어 화학물질 관리를 강화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며 “시민들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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