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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박은 혁신 의지 없고 비박은 구심점 없어 “끓는 물에 삶기는 것도 모르는 개구리 꼴”

정진석 원내대표(오른쪽에서 넷째) 등 새누리당 신임 원내대표단이 지난 9일 국회에서 회의를 하고 있다. 13명의 원내대표단 중 11명이 친박계다. 강정현 기자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혁신의 방향도 못 찾고 있어. 그러니까 이 꼴이지. 아직도 정신들을 못 차렸어.” 지난 12일 저녁 여의도 국회 주변의 한 중식당을 나서던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의 말이다. 그를 비롯해 5선에 성공한 심재철·이주영·정갑윤 의원이 저녁 모임을 한 직후였다. 정 의원은 “혁신위에 전권을 주며 (외부 인사를 혁신위원장으로) 모셔도 올까 말까인데 누가 오려고 하겠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대위-혁신위 투 트랙 체제의 혁신위는 힘 빠진 맹탕이 될 수밖에 없다고 그는 푸념했다.



4·13 총선 한 달, 거꾸로 가는 새누리당 쇄신

비슷한 시각 300m쯤 떨어져 있는 P한식당. “총선에서 낙선한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 상당수는 이미 ‘새한국의 비전’에 참가하기로 했어. 정병국·주호영·김용태 의원 등 현역 의원들도 만나 참가를 설득하고 있지.” 기자들과 만난 박형준 국회 사무총장은 정의화 국회의장이 26일 발족할 싱크탱크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갔다. 일단은 여야를 아우르는 싱크탱크로 출범하지만 종국적으로는 새누리당 내에서 집권의 희망을 찾지 못한 세력이 정계개편의 발판으로 삼는 플랫폼이 될 수도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박 총장은 “총선 후에도 당 혁신은 아랑곳없이 친박 세력이 패권을 형성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심상치 않다. 4·13 총선 뒤 한 달이 지났지만 쇄신의 성과는커녕 그 의지마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한 달을 허송세월했다”는 푸념과 무력감이 곳곳에서 분출되고 정 의장의 ‘새한국의 비전’처럼 비박계 이탈의 정계개편을 염두에 둔 움직임도 생겨나고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12일 기자간담회 발언은 새누리당 주류의 현실 인식을 그대로 보여줬다. 그는 “새누리당에 친박 당선자가 70~80명 정도 있는데 그들이 다 무슨 책임이 있나. 떼로 몰려다니면서 나쁜 짓을 했느냐. 그렇게 덤터기 씌우는 건 옳지 않다. ‘친박=책임’은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다. 특히 ‘새누리당이 다시 친박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는 기자의 지적에 “가소로운 이야기”라고 발끈한 발언은 논란을 불렀다.



정 원내대표의 등장 이후 새누리당은 친박계가 원했던 흐름을 타고 있다. ‘정진석 팀’이라고 부를 수 있는 원내대표단 13명 중 11명이 친박계였다. 당선자들을 대상으로 비대위 구성과 관련한 의견을 묻는 설문조사에선 무기명이 아닌 기명으로 의견을 적어내게 해 ‘줄세우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정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까지 겸해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준비하고 비대위와 혁신위 ‘투 트랙’으로 지도부를 운영하는 안이 채택됐다. 그동안 당내엔 “비대위 기능까지 겸하는 강력한 혁신위가 들어설 경우 친박들의 총선 책임론이 더 크게 부각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으니 이 역시 친박계가 바라던 결과다.



이런 혁신위에 사람이 모일 리 없다. 혁신위원장으로 거론됐던 한 외부 인사는 “가라앉는 당에, 들러리 서라고 만들어놓은 자리에 좋다고 앉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고 했다. 당 안팎에선 “서서히 끓어오르는 물에 자신이 삶기고 있는 줄도 모르는 개구리 같다. 뼈는 물론 근육과 신경까지 손상된 복합골절을 당했는데 수술은 생각도 않고 깁스로 때우려고 하는 꼴이다. 그러면 결국 불구가 된다”(이동관 전 청와대 홍보수석), “2006년 열린우리당 상황과 비슷하다. 선거에서 참패를 당했는데 당과 청와대가 현상에 안주해 대선 패배로 이어졌다”(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혹평이 쏟아진다.



비난이 고조되자 당 지도부는 ‘혁신위에 쇄신의 전권을 부여한다’고 말을 바꿨지만 비박계 당 관계자는 “혁신위를 앞세워 이뤄지지도 않을 쇄신 아이디어 몇 개로 분위기를 전환시킨 뒤 7월 말~8월 초 치러질 전당대회에서 친박계가 당권을 쥐는 시나리오로 몰고 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친박계 책임론이 잦아들면 좌장인 최경환, 잦아들지 않으면 이주영 의원이 친박계 대표로 경선에 나설 것”이라는 게 비박계 내부의 정설이다. 비박계의 대항마로는 정병국(5선)·나경원(4선) 의원이 거론되지만 친박이 압도적인 당내 역학 구도에선 쉽지 않은 싸움이다.



“이길 수 있는 선거를 누가 망쳤느냐. 청와대와 당 지도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이라도 해야 할 판에 당을 또 이 모양으로 만드느냐”(비박계 수도권 낙선 의원)는 말처럼 비박계의 불만은 하늘을 찌르고 있다. 하지만 목소리를 결집할 구심점이 없는 게 이들의 약점이다. 총선 과정에서 치명상을 입은 김무성 전 대표는 한 달 내내 잠수만 타고 있다. 당의 모든 행사에 불참한 그는 지난달 28일 백상 장기영 탄생 100주년 기념 세미나, 지난 1일 원불교 100주년 기념식, 9일과 10일 방우영 조선일보 상임고문과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 빈소 방문 때만 모습을 나타냈다.



이재오·정두언 의원처럼 전투력이 있는 중진들은 줄줄이 낙선했다. 이밖에 비박계를 결집시킬 카드로 유승민 의원이 꼽히지만 복당 전 무소속의 신분으로는 활동 반경에 제약이 있다. 비박계의 이탈을 전제로 한 다양한 정계개편 시나리오가 제기되지만 구심점 없는 비박계의 현실에선 ‘그림의 떡’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새누리당은 위기 극복을 위한 DNA를 잃어버렸다”는 비관론도 있다. 야당 시절이던 2000년대 초반엔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으로 대표되는 쇄신 그룹이 당내에 새바람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후 ‘이명박 대 박근혜’ ‘친박 대 비박’의 당내 대결 구도와 의원 줄세우기로 이리저리 찢겨 쇄신파는 존재 기반을 잃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역풍을 맞았던 2004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등으로 당이 휘청댔던 2012년 위기 때는 ‘박근혜 브랜드’로 난국을 타개했지만 지금은 박 대통령이 비박계에 의해 쇄신 대상으로 거론되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충형 기자 adch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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