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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존’ 굳힌 김정은 비핵화 외면, 국제사회 고립 가속화

‘김정은 시대’를 선포한 북한의 제7차 노동당대회가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지난 9일 폐막됐다. 노동신문은 36년 만에 열린 당대회가 끝난 다음 날인 10일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노동당대회 경축 평양시 군중대회를 보도하며 명실상부한 김정은 시대의 개막을 알렸다. [노동신문]



지난 9일 막을 내린 북한 노동당 제7차 대회는 김정은 유일영도체제를 확인한 행사였다. 이로써 김정은은 명실상부한 ‘3대 수령’이 됐다. 김정은은 1949년 6월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이 차지했던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과 유사한 당 위원장에 추대됐다.



[7차 당대회 이후] ‘김정은의 북한’ 어디로

김일성은 수많은 반대 세력을 제거한 후 수령에 등극할 수 있었다. 여타 파벌의 견제 속에 차지한 당 중앙위원장 직위는 권력연합적 성격이 강했다. 반면 김일성·김정일의 피의 대가로 이룩한 유일영도체제를 이어받은 김정은의 당 위원장은 견고하다. 2대 수령인 김정일이 약간의 투쟁을 통해 수령 지위를 이양받았다면 김정은은 투쟁 없이 이양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세칭 ‘다이아몬드 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지난 10일 열린 평양시 군중대회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 [AP=뉴시스]



절대권력을 이어받은 김정은이 굳이 7차 당대회를 개최한 이유는 자신의 정치적 정당성을 전 인민적 차원에서 추인받고 싶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막스 베버(Max Weber)의 정당성(legitimacy) 확보 방식에 의하면 김정은의 권력은 ‘전통적 지배 방식’에 의해 창출된 것이다. 할아버지인 김일성이 수령이기 때문에 그도 자동적으로 수령이 된 것이다. 왕조체제의 전형이다.



사전적(ex ante) 정당성을 확보한 김정은이 자신의 권력에 대해 전 인민적, 전 당적 추인을 받으려 한 것은 북한 내부에 김정은이 후계자로서 적절한 자격을 갖추었느냐에 대한 무언의 의문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적자(嫡子)가 아닌데다 수령으로서 국가운용 능력도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상태에서 최고지도자에 오른 김정은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켜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그 대상은 일반 주민들, 특히 고위 권력 엘리트들이었다. 김정은의 출생 배경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고위 엘리트들은 김정은의 나이브하고 즉흥적인 정치행태와 그가 과연 미국의 ‘침략’으로부터 북한을 보위하고 주민들을 잘살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가졌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 장성택 행정부장, 이영호 총참모장 같은 인사들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김정은 정권창출의 공신이면서도 김정은이 그리 미덥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김정은에 대한 충성도를 흔들게 만든 대표적인 사건이 2012년 4월 발생했다. 김일성 생일을 맞아 해외 언론까지 불러들여 미사일 발사 현장을 공개하고 무리하게 은하 3호(장거리 로켓)를 발사했다가 실패한 사건이다. 국가적 기밀 지역을 해외 언론에 공개한 행위는 ‘극보수’로 꼽히는 인민군 대표자 이영호의 불만을 살 만한 일이다. 김씨 일가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의 상황을 거론하며 김정은이 “(북한이) 미국에 가까이 다가가면 (미국은 북한이) 도저히 승복할 수 없는 조건을 거칠게 들이댄다. 열 받아서 미사일을 발사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런 김정은의 즉흥성은 장성택과 같은 노련한 전략가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을 수 있다.



김정은은 소극적 저항세력을 자신의 권력을 절대화하는 계기로 활용한다. 숙청과 처형이라는 극단적 방법을 통해서다. 무자비한 처형은 김정은을 ‘무자비한 패륜아’라는 인상을 심어줬지만 동시에 체제 내부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가 됐다. 내부적으로는 강력한 주민 통제로, 외부적으로는 핵실험과 단·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등 강경책을 쓰는 한편 주민들을 회유하기 위한 온건책도 병용했다. 평양 밝게 하기, 초현대식 아파트 건설, 롤러스케이트장 및 마식령스키장 건설, 장마당 확장, 치마 허용, 모란봉악단 창단 같은 것들이다.



김일성은 모두 6차례의 당대회를 열었는데, 견제세력들과 벌였던 권력투쟁에서 성공할 때마다 당대회를 개최해 권력의 공고함을 과시하며 김일성의 사당(私黨)으로 만들어 나갔다.



김정은도 이번 7차 당대회를 자신이 최고 권력임을 확인하고 추인받는 자리로 만들었다. 당 위원장제 도입, 정치국 상무위원 정상화, 정치국 위원 확대, 정무국 신설 등이 이뤄졌고 김영남·최용해·황병서·박봉주·이수용·김영철·김기남·김평해·오수용·이만건 등 30명 정도의 핵심 ‘아바타들’이 포진됐다. 공포스러운 엘리트 통제로 인해 북한 권력 엘리트 내에는 현실에 안주하며 아부하는 충성 문화, 수령의 어떤 조치에 대해서도 감사하는 감사 문화, 수령을 위해 몸까지 희생하는 희생 문화가 형성됐다. 종신제나 다름없는 수령제하에서 북한의 권력 엘리트들이 터득한 나름의 생존 방법인 셈이다.



7차 당대회가 김정은의 ‘지존’을 확인하는 행사였기 때문에 다른 행사들은 부차적일 수밖에 없었다. 사업총화 보고는 자화자찬 일색이었고 정세 인식도 특별히 변하지 않았다. 핵 문제를 비롯한 대내외 정책도 보수적이거나 과거회귀적이었고 경로의존적(수령 노선 계승)이었다. 민생경제를 위해 내놓은 방안이 고작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이었다. ‘수입병’을 질타하고 국제 제재의 장기화에 대비하려는 듯 자강력제일주의를 강조했다. 통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남북대화의 가장 큰 걸림돌인 핵문제 해결에 대한 방안은 없었다. 역으로 핵 무력의 ‘질량적’ 강화가 강조됐다.



김정은은 한국은 물론 미국·중국 등 세계가 요구했던 비핵화를 외면했다. 대신 김정은은 ‘경제건설·핵 무력 건설 병진 노선’을 전략적·혁명적 노선으로 명시하고 ‘핵보유국임을 천명’함으로써 비핵화 불가를 대내외에 선언했다. 이라크의 후세인과 리비아의 카다피 죽음이 대량살상무기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핵심 엘리트들의 인식 변화가 없는 한 핵무기 개발은 계속될 것이다. 만약 ‘북·미 평화협정이 맺어지더라도 비핵화는 있을 수 없다’는 북한 외교관의 발언이 이것을 뒷받침해 준다. 김정은은 ‘세계의 비핵화’를 운위함으로써 결국 북한은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거듭 천명했다.



북한에는 우리의 ‘빨갱이 콤플렉스’보다 더 심한 ‘승냥이 콤플렉스’가 있고 ‘깡보수들’이 우리보다 더 많다. 김정은이 이들의 지지와 환호에 의해 핵실험을 지속하는 측면도 있다. 이들이 가장 강력한 지지자들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의 ‘김일성 흉내 내기’도 김일성을 신처럼 숭배하는 북한판 보수주의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해 지지를 획득하기 위한 ‘정치적 쇼’란 성격이 짙다.



‘핵보유국’의 공식화로 북·미 간 물밑 대화가 이어졌던 평화협정 문제도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이 선(先)비핵화·후(後)평화협정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데 북한이 돌연 ‘핵보유국’을 명문화함으로써 당분간은 협상 진전의 동력을 찾기 어렵게 됐다는 관측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여전히 비핵화-평화협정 일괄 논의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북한 7차 당대회에 축전을 보낸 것도 5차 북핵 실험을 막고 6자회담의 틀로 북한을 이끌어내기 위한 행보란 분석이 나온다.



이 때문에 향후 중국의 적극적 중재에 의해 6자회담 개최 요구가 급물살을 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는 중국의 압력에 의해 6자회담이 개최된다고 하더라도 북한 비핵화 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북한은 ‘북한 비핵화’가 아닌 ‘세계의 비핵화’를 위해 미국과 대화하겠다는 입장이고 이것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5차 핵실험을 감행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5차 핵실험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각국이 대북정책을 구상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남북관계 또한 불투명하다. 김정은은 조국통일 3대 헌장, 연방제 통일, 조국통일대통로, 민족대단결, 통일대전 등 과거의 통일정책을 되풀이했다. 또한 대북 확성기 방송 및 대북전단 살포 중지를 주장하고 남한의 ‘제도 통일’을 비난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비무장지대(DMZ) 주변에서 모든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기 위한 남북 군사회담을 제의했다. 정부는 북한 비핵화가 최우선 과제이고 지금은 대북제재에 집중할 때라는 이유에서 이를 거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화전(和戰) 양면 전술 차원에서 군사회담에서 나아가 고위급 회담을 제안할 가능성도 있다. 남북대화를 북·미 대화로 연계시키려는 전술일 수도 있다. 북한은 대화 의제로 개성공단 재개, 금강산관광 복원 등은 물론 2013년에 박근혜 대통령이 제안한 DMZ평화공원 조성을 제시하며 유화 공세로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는 ‘진정성 없는 대화 제의’엔 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어서 대화와 협상 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남북관계는 72년 이전 ‘대화 없는 체제경쟁’ 상태로 회귀했다. 극적 돌파구가 없는 한 남북관계의 답보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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