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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늘려주던 ‘효자’라더니 이젠 유해동물 ‘찬밥’ 신세

1 지난달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의 백야도에서 흑염소 포획작전이 진행됐다. 섬에 살던 흑염소들이 벼랑끝에 몰렸다. [국립공원관리공단]



굴업도에서 천남성을 만났다. 그것도 한 차례 여행에서 여러 종류를. 작아도 화사한 들꽃들이 자신의 자태를 부끄럽게 펼치는 5월, 서해안의 진주라는,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서포3리 굴업도의 햇빛이 잘 닿지 않는 기슭에 웅크린 그는 남쪽 하늘의 별, 천남성(天南星)이라는 들풀이다.



[동물도 이웃] 외딴 섬 흑염소

 

특이한 모양을 가진 천남성은 치명적인 독을 가진 독초이기도 하다.



천남성은 독초다. 임금이 내리는 사약으로 사용하던 천남성에 섣불리 접근하는 초식동물은 자칫 생명을 잃을 수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가 장미 가시에 찔린 뒤 죽었다지만 천남성은 차원이 다르다. 릴케는 백혈병을 앓았기에 장미 가시에 쓰러졌지만 천남성은 가시가 없어도 치명적이다.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아도 응달에 숨은 자태가 순수하기 이를 데 없다. 팜므파탈의 고혹적 유혹이랄까.



들풀마다 새순을 펼치는 계절에 긴 꽃대를 내밀고 원통 깔때기 모양의 녹색 꽃을 비스듬하게 펼치는 천남성은 사람에게는 팜므파탈일지 모르지만 굴업도에서 주인 행세하는 흑염소에게는 유혹이 통하지 않는다. 철저히 외면받는다. 어미 젖 보채는 새끼 때문에 아무리 허기지더라도 말랑말랑한 천남성 잎사귀에 입도 대지 않는다. 젖 물리던 어미는 일찍이 그렇게 학습됐다.



5월 바닷바람이 싱그러운 덕적도에서 연락선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닿는 작은 섬 굴업도는 마을 진입로부터 하얀 민들레 군락이 방문객의 눈을 끌어 모았는데, 지금은 아니다. 흑염소가 뜯어낸 건 아니다. 경관을 즐기려 모여든 방문객의 등쌀로 하얀 민들레가 자취를 감춘 것이다. 마침 연두색 잎사귀를 펼친 바닷가의 소사나무 군락은 따사로운 햇살을 만끽한다.



잎을 막 펼친 소사나무 사이로 파란 하늘이 두드러지는데, 커다란 매들이 천천히 맴도는 모습이 한가롭다. 봄볕을 받으며 산등성이로 오르는 사람들이 나른해질 오후, 무리지은 흑염소들은 기슭마다 부산하다. 매가 떴다.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은 새끼를 먹이랴 보호하랴 흑염소 어미는 바쁘다.



 



흑염소 새끼 노리는 사나운 매새 생명이 움트는 계절, 사람에게 5월은 계절의 여왕이지만, 새끼들을 거둬 먹여야하는 매와 흑염소는 한가로울 수 없다. 마른 억새 사이로 파릇하게 움터 오르는 부드러운 풀을 뜯는 흑염소 가족, 그 중 어미의 품에서 멀어진 새끼에게 매는 치명적 천적이다. 새끼가 천남성에 입을 댈지 몰라 어미가 안절부절못하는 사이에 벼락같이 내려와 새끼를 채가지 않던가. 굴업도 산등성이의 오솔길로 들어서면 여기저기 어린 흑염소의 잔해가 눈에 띈다. 서해안의 작은 섬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으며 하층 생태계를 지배하는 흑염소는 저렇듯 매를 불러들여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요사이 특히 드물어진 매를 보려면 서해안의 작은 섬을 찾아야 할 정도다.



 

[그림 박성곤]



흑염소는 덕적도 인근의 작은 섬에 흔하고 굴업도도 예외가 아니다. 절해고도를 지키는 주민들의 소득 증대를 위해 정부가 일찌감치 풀어놓았기 때문이다. 2000년 전 중국에서 들여와 서해 연안부터 사육했을 것으로 추정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땅콩 밖에 심을 게 없어 엎드려 일해야 목구멍에 풀칠할 수 있었다는 굴업도는 예나 지금이나 척박한 섬이다. 산등성이 말잔등처럼 완만하게 이어지는 경관이 더 없이 빼어나지만 조기도, 민어도 두 세대 전의 전설로 남았을 따름이다.



굴업도 주민들은 흑염소를 잡을 때 절대 엽총을 사용하지 않는다. 오솔길 주변 나무에 나일론 올무를 여러 개 펼쳐놓고 기다리면 영락없이 걸려든다. 올무에 발목이 걸렸어도 겉보기에 당황하지 않는 녀석이 오솔길을 지키고 있다. 당황은커녕 눈을 치켜뜨며 뿔 달린 이마를 앞세워 달려들지 않을까. 그렇다고 흑염소 탓에 땅콩농사를 접은 주민들이 당황할 소냐! 억센 두 손으로 뿔을 움켜쥔 뒤, 인천 연안부두의 식당에 탕 거리로 팔아버릴 것이다.



흑염소는 포유강(綱) 우제목(目) 소과(科) 염소속(屬)으로 분류된다. 암수 모두 뿔이 있지만 수염은 수컷만 가지고 있다. 몸무게가 30㎏ 정도에 불과해 염소 무리 중에서 작은 편이다. 추위에 잘 견디며 독초를 제외하면 아무거나 잘 먹어 섬 지방 주민의 수익에 보탬이 된다. 흑염소는 늦은 가을 짝짓기를 해 새싹이 파릇파릇한 계절에 두마리의 새끼를 낳는 분명한 가축이지만 다른 가축과 달리 특별한 관리가 필요하지 않다. 그런 특성을 살려 서해안의 유인도와 무인도에 놓아 길렀는데 뒤늦게 문제를 일으킬 줄이야. 도서 주민이 줄고 몰이꾼의 인건비가 높아지면서 허락 없이 섬 지방 하층 생태계를 지배하는 터줏대감이 됐다. 풀과 나무 뿌리까지 먹어치우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것이다.



초식동물의 눈매는 대개 선하다. 소를 보라. 사람들이 아무리 가혹하게 사육해도 눈매가 그리 무던할 수 없다. 반면, 육식동물의 눈매는 사납다. 흑염소 새끼를 낚아채는 매는 말할 것도 없고 개구리를 노리는 때까치의 눈매도 여간 날카로운 게 아닌데, 흑염소는 예외다. 바위투성이 절벽, 천적이 도저히 접근할 수 없는 난공불락 계곡, 햇살 강한 절벽에서 고독 속에 거친 풀을 뜯는 흑염소가 서글서글해야할 이유는 없을 터이다.



노려보는 듯 치켜뜬 눈은 거만해 보이기까지 해 머리통을 쥐어박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서인지 흑염소를 집 가까이에서 사육하는 농가는 드물다.



거친 사료는 물론, 소나무 잎이나 나무줄기까지 거뜬히 소화시키므로 인적이 드문 임야나 외딴섬에 방목돼도 사람의 수입에 이바지해왔는데, 이제와 아우성이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유해동물이라고 비난이다.



엽총을 들자 매가 접근하지 않고, 천적이 사라지자 흑염소는 거침없이 늘어나게 됐다. 그 원인을 사람이 제공했건만, 나무껍질과 가지까지 뜯는다고 난리다. 설마, 사람을 노려본다는 죄목이 덧씌워진 건 아니겠지? 절벽에 은둔하는 염소를 굳이 데리고 와 가축으로 개량한 건 사람이었다. 살쾡이도 접근할 수 없는 환경에서 표정이 선하든 험하든 사람이 신경 쓸 이유가 전혀 없는데,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사람 세계로 다가온 흑염소는 치명적 곤혹을 강요받아야 했다.



 

2 ‘서해의 진주’로 불리는 굴업도의 풍경.



1970년대 외딴 섬에 방목 시작1970년대 방생된 흑염소가 마음껏 늘어난 1981년 12월, 국내에서 14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다도해국립공원 측은 참다못해 엽총을 들었다. 2011년 나온 연구 결과로 생태계에 부정적이라는 견해를 확보한 환경부는 ‘생태계 위해성 2급 종’으로 분류했고, 마침내 다도해와 한려해상국립공원 17개 섬에 퍼진 흑염소를 포획하기로 한 것이다.



2007년부터 2500마리가 넘는 흑염소를 생포했던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지난해 4월 경남 통영시의 매물도에서 엽총을 쏘았다. 그물을 이용한 생포가 원칙이지만 절벽으로 숨어드니 어쩔 수 없었다면서. 껍질 잃은 나무와 뿌리까지 뜯긴 풀이 국립공원에서 사라지자 산사태가 일어났다. 결국 매물도의 마지막 수컷마저 사살됐고, 흑염소가 지배하던 국립공원 생태계의 ‘흑역사’는 지워졌지만 사람에게서 사료 한 톨 얻어먹지 못했던 흑염소는 몹시 억울할 것이다.



사람에게 큰 이익을 안겨줄 거라 환호를 받다 억울해진 흑염소는 더 있다. 1998년 한국과학기술원은 사람의 백혈구 증식인자를 젖으로 분비하는 흑염소를 개발했다고 자랑했다. 이름하여 ‘메디’. 1g에 9억 원을 호가하는 치료제를 정제하면 국가 부가가치를 크게 향상시킬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금 어떤 신세인가. 메디의 후손들은 부가가치를 여전히 약속하는가. 2001년에 임상시험에 들어갈 것으로 장담한 백혈구 증식인자는 여태 감감무소식인데, 분명한 사실은 메디 후손은 굴업도의 흑염소보다 결코 높은 부가가치를 보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한 해 100만 마리 약재로 소비돼칼슘과 철분이 많을 뿐 아니라 근육까지 연해 소화흡수가 잘 되므로 예로부터 환자의 보양식으로 애용되는 흑염소는 왕실의 약용동물이었다. 소가 건드리지 않는 “100가지의 풀과 1만 가지의 꽃을 고루 먹는 매우 신비한 동물”이라는 것이다. 동의보감에서 ‘양기의 으뜸’으로 치켜세운 흑염소는 왕실보다 오히려 백성에게 적합할지 모른다. 사육하느라 큰 돈 들이지 않아도 되는 가축이기 때문이다.



구우면 고기가 딱딱해지는 흑염소는 온갖 약재와 과일, 심지어 파인애플까지 넣고 조리거나 중탕으로 먹는 편이 좋다는데, 몸을 따뜻하게 해주는 성질이 있어서 체열이 많은 사람에게 두드러기가 발생할 수 있다고 민간의료 전문가들은 귀띔한다. 식욕을 돋우니 살이 심하게 오를 수 있다는 진단도 등장한다. 살찌고 싶은 사람들 솔깃해지겠다. 민간의료 왈, 비타민 E가 많아 세포의 노화를 늦추고, 새살을 돋게 해 수술 뒤 회복하는 환자에 좋으며, 불임을 예방하니 임산부에게 이롭다는데, 결혼을 앞둔 요즘 사람들이 관심을 보일 것도 같다.



간에 비타민 A가 풍부하니 시력감퇴에 효과가 좋고 동맥경화·고혈압·심장병·신경통을 비롯해 성인병의 예방에 효과가 있다지만, 흑염소만이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해마다 100만 마리의 흑염소가 세상에 태어났다 등진다.



봄이 무르익은 굴업도에는 천남성이 군락을 이뤘다. 천남성을 외면하는 흑염소는 매를 조심해야 할 계절을 다시 맞았는데, 굴업도는 인산인해다. 사람 탓에 매가 떠나면 흑염소가 다시 늘어나지 않을까.



 



박병상인천 도시생태환경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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