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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체제 벗고 민주주의 2.0으로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한국 민주주의 지수’는 세계 22위다. 2006년 첫 발표 이래로 한국은 순위가 꾸준히 올라 20위 언저리에서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놀랍게도 아시아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1위다.



세계 순위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한국인들이지만 이 순위에 대해서는 자부심보다는 의구심이 더 클 것 같다. 역사적 경험 때문에 한국인의 신경세포는 ‘독재’에 민감하고 ‘민주주의’에 둔감하게 진화했는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한국은 선거를 통해 빠른 속도로 민주주의의 지평을 넓혀가고 있다.



Out look

이 나라 민주주의의 역사는 선거의 역사다. 선거는 한국 민주화 운동이 쟁취한 가장 강력한 성과다. 대한민국에서 선거는 다른 어느 영역보다 반칙이 적으며, 승패를 쉽게 예측할 수 없고, 실제로 승패를 주고받는 ‘공정한 전쟁’이 되었다. 선거는 한국 보수의 ‘약한 고리’다. 선거를 두려워한다. 대부분의 영역에서 보수가 압도적으로 힘의 우위를 점하는 데 비해 선거는 보수·진보 어느 쪽도 확실한 지배력을 갖지 못한 ‘평평한’ 운동장이 (거의) 되었다. 대통령 선거는 더욱 그렇다.



선거를 통해 달성해야 하는 민주주의 과제는 세 가지다. 평화적 정권교체(민주주의 1.0), 사회적 갈등관리(민주주의 2.0), 관료에 대한 문민 통제(민주주의 3.0)가 그것이다. 한국은 1987년 직선제 개헌을 통해 민주주의 1.0에 진입했다. 선거는 스포츠와 전쟁 중간 어디쯤에 있을 것이다. 스포츠처럼 규칙을 정해놓고 전쟁처럼 싸운다. 전쟁으로 가까이 가면 ‘적’과 ‘동지’로 편을 갈라 증오하고, 스포츠로 가까이 가면 ‘여’와 ‘야’로 부르면서 평화적으로 경쟁한다.



19세기 이전의 정치적 투쟁은 (그것이 재판·전쟁·혁명의 어떤 것이든) 통치자와 피치자를 결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승리한 자는 패배한 자를 죽이는 것이 목표였다. ‘체제 안에서’ 싸운 것이 아니라 ‘체제를 둘러싸고’ 싸웠기 때문이다.



전쟁 같은 정치의 시대가 끝나자 민주주의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상대를 ‘죽일’ 적으로 보지 않고 ‘이길’ 경쟁자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승리하면 여당이 되고 패배하면 야당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아담 쉐보르스키가 민주주의를 정의한대로 ‘여당이 (평화적으로) 야당 될 가능성을 열어두는 체제’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긴 자가 진 자를 죽이는 ‘쿠데타’와 ‘혁명’을 동시에 폐기처분하고 선거를 통한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한 체제를 87년에 합의했다.이른바 ‘87년 체제’다. “신생 민주주의는 두 번의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해 공고화 된다”는 새뮤얼 헌팅턴의 말을 상기해 볼 때, 2017년에 다시 한 번 야당으로 정권이 넘어간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도 더 공고하게 될 것이다. 적어도 국가정보원· 검찰· 경찰 같은 권력기관의 대선 개입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지금 한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과제를 요구받고 있다. 대통령 선거 지형은 평평한 운동장이 되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대통령의 힘은 고위 관료와 권력 기관의 인사권 정도로 약해지고 있다. 군인의 시대였던 1970~1980년대나 3김으로 상징되는 정치인의 시대였던 90년대까지 익숙했던 ‘개혁의 설계자’이자 ‘개혁의 리더’로서의 지도자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있다. 지금은 누가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는지 분명하지 않은 시대다. 대통령만 잘 뽑으면 되는 시대가 아니다. 2000년대 이후 대한민국의 파워그룹의 맨 위에는 관료·재벌·법조(법원·헌법재판소·검찰·로펌)가 자리 잡았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지배력은 점점 커지고 있다.



‘관피아’(관료+마피아)로 불리는 이 카르텔은 마이클 샌델이 통찰한대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도 돈으로 살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슬라보예 지젝이 통렬하게 비판한대로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이혼하려는’ 배후에도 이들이 있다.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가 되었다. ‘이익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하는 탐욕의 시대가 되었다. 반독재 시대에는 가장 힘이 센 사람, 가장 나쁜 사람,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이 같았기 때문에 싸우기가 쉬웠지만 지금은 가장 힘이 센 사람, 가장 나쁜 사람, 가장 자주 보는 사람이 달라서 싸우기가 쉽지 않다. 적이 안 보이는 시대다. 모두가 다 포섭되었기 때문에 ‘어용’도 없고, ‘사쿠라’도 없다.



소수에게 부와 권력이 집중되자 세계 도처에서 혁명 전야 같은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자기를 대변할 목소리를 갖지 못한 채 밀려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정치가 이 분노를 담아내는 데 실패한다면 대한민국은 큰 위기에 빠질 것이다. 갈등을 관리할 새로운 민주주의를 상상할 시간이다.



정치는 ‘싸우는 것’이고 ‘갈등을 조직화’하는 것이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싸우는 것이고,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말’로 싸우는 것이다. 그만 싸우라는 것은 민주주의를 그만하라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다.



85년 2·12 총선의 신민당 돌풍을 만든 국민은 2년 뒤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는 직선제를 쟁취해 (평화적) 정권교체의 길을 열었다.



2016년 4·13 총선에서 양당 체제를 깨고 3당 체제를 만든 국민도 (사회적) 갈등 관리를 해낼 수 있는 다당제를 제도화함으로써 ‘민주주의 2.0’ 시대를 열 수 있을까. 한 선거구에서 적어도 4명을 뽑는 중·대선거구제(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전면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좋다)와 대통령 결선투표제가 도입된다면 한국의 민주주의는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게 될 것이다. 선거구당 4명 이상의 의원을 뽑아야 4당 체제가 될 수 있다. 지금이 좋은 기회다. 새누리당 복당보다 탈당이 더 중요해진 이유다.



87년 직선제 개헌과 88년 소선거구제 도입으로 ‘민주주의 1.0’ 시대를 열었다면 들어온 길로 나가는 것이 좋다. ‘민주주의 2.0(선거구제 개편)’으로 먼저 다당제 체제를 구축한 뒤, 정치가 관료를 통제할 수 있는 내각제를 통해 ‘민주주의 3.0(개헌)’ 시대를 여는 것이 옳은 순서로 보인다.



 



박성민민정치컨설팅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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