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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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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5국 공동체 프로젝트를 구상중인 故 김석철 교수. 김상선 기자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석철 명지대 석좌교수가 12일 별세했다. 73세. 유족 측은 김 교수가 이날 아침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고 밝혔다.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 원장인 그는 전날까지도 서울 동숭동 사무실로 출근해 일에 열중했다고 한다.

1943년 함경남도 안변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한국 모더니즘 건축의 주춧돌을 쌓은 김중업과 김수근을 사사했다. 경기고 재학시절 ‘천재’ 소리를 들었던 그였다. 비록 실행되지 못했지만, 24세에 김수근 건축연구소에서 ‘종묘-남산 간 재개발계획’에 참여하면서 도시계획가로서 첫 발을 디뎠다.

이후 숱한 도시계획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전후 대한민국 국토와 공간의 골격을 매만졌다. 26세에 한국 최초의 도시계획인 여의도 마스터플랜을 주도했다. 서울대· 경주 보문단지 마스터플랜을 거쳐 쿠웨이트 자하라시에 1800세대 주거단지를 짓는 국제지명현상에 당선되기도 했다.

그가 남긴 건축물도 숱하다. 39세에는 세계적인 건축가들과 경쟁을 벌여 예술의전당 설계를 따냈다. 처음에는 서울 사대문 안의 중심축과 예술의전당을 잇는 서울의 상징가로를 만들어 서울의 문화공간 대부분을 집합시킬 생각이었다.

일명 ‘예술의전당 도시화계획’이었으나 공사기간 부족으로 큰 그림은 접어야 했다. 생전에 김석철은 “예술의전당 완성 이후 아직 미완의 꿈을 버리지 못했다”며 “그 당시 생각했던 안을 더 진전시켜 모두에게 의미 있는 우리 삶의 인프라가 되게 하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2000년대 초 첫 위암 수술을 받았고, 암의 전이 및 재발로 투병생활도 오래 했지만 그는 쉬지 않았다. 2002년 대통령선거를 시작으로 5년마다 국토 디자인의 청사진을 그려 제안했다. 청계천 복구 등을 담은 서울 재설계를 시작으로 청사진은 점점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됐다. 그런 그를 두고 고은 시인은 “하나의 나라, 하나의 대지를 가슴에 품어야 하는 들짐승"이라고 선언하듯 말했다.

2012년에는 두 차례 식도암ㆍ임파선암 수술을 받으면서 5개월간 병상에서 쓴 책을 내놨다.『한반도 그랜드 디자인: 2013 대통령 프로젝트』다. 당시 그는 “국가와 역사에 대한 마지막 의무라는 마음으로 준비했다”고 전했다. 책에는 세종시를 중추로 지방권을 자립시키고 수도권을 혁신하며 북한도시를 건설하는 안까지를 담았다.

최근까지도 고인은 한반도 통일 프로젝트를 그려왔다.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을 맡고서 ‘두만강 다국적 도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두만강 하구 북ㆍ중ㆍ러 접경지역에 다국적 자유경제도시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압록강변에 아레나(수상극장) 및 반원도시, 태양광도시를 지어 세계 물류의 흐름 속에서 한반도와 동북 3성의 공동 공간을 확보하자는 압록강 통일 프로젝트도 있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멘디니는 자신의 저서에서 김 교수를 이렇게 평가했다. “(현대 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와 견줄만하다. 건축과 도시를 아울러 이만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사람이 다시 나오기 어렵지 않을까.”

유족으로는 동생 김석동 지평 인문사회연구소 대표(전 금융위원장), 장남 김영재 아키반 건축도시연구원 실장, 딸 김국희·김혜원· 김영나씨 등 1남 3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분향실1호, 발인은 15일 오전 7시. 02-2072-2091.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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