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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의 시시각각] 스웨덴 총리 에를란데르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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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기
논설위원

박근혜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만남은 뒤끝이 늘 개운치 않았다. 한쪽은 진정성, 다른 쪽은 선명성에 집착했다. 야당은 A4용지 열 장에 빼곡하게 적어온 걸 읽어가며 대통령을 몰아붙인 뒤 “할 말은 다하고 나왔다”고 외쳤다.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하고 싶은 것을 못하면 얼마나 한이 맺히겠느냐”고 떨리는 목소리로 호소했다. 양측은 또 합의문이라는 걸 만들려고 애를 썼다. 무의미하거나 지켜지지 않을 약속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2015년 3월 박근혜·문재인 회동은 최저임금 인상과 서비스발전기본법안 처리를 합의했다. 전자는 최저임금법에 규정돼 있는 것이라 무의미했다. 후자는 여태껏 처리되지 않고 있다. 최후의 의사결정자들이 어렵게 만나 기껏 하는 일이 기존의 신념을 재확인하고 허공에 독백하며 신뢰를 깨는 것이라면 정치는 얼마나 값없고 무책임한 일인가.

“난 목요일이 한가해”…정적과 만찬
‘여·야·정 협의체’로 복지국가 완성


오늘 박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정책위의장이 만난다. 지금은 정치 격변기다. 안팎의 변화는 한국인에게 지도에 없는 행진을 요청하고 있다. 나침반을 제시해줘야 한다. 시간이 걸릴 것이다. 무리하게 합의문 같은 걸 내려고 할 필요는 없다. 한 가지만 합의했으면 한다. 한 달 뒤 금요일에 또 만나기로.

스웨덴 총리 중에 타게 에를란데르(Tage Erlander)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매주 목요일마다 정적(政敵)을 만났다. 정적은 재계 인사와 우파 정치인들이었다. 에를란데르는 스웨덴 복지국가의 완성자다. 45세에 총리에 올라 68세로 정치를 관두기(재임 기간 1946~69년)까지 그의 정치는 스웨덴을 ‘국민의 집(The people’s home)’으로 만드는 데 집중됐다. 이 기간 중 전 국민 의료보험, 전 국민 연금 지급, 4주 휴가제, 9년간 무상교육, 100만 호 주택 건설을 이뤄내 국가는 국민의 안전한 보호처요 따뜻한 가정이 되었다. “그 집에선 누구도 특권의식을 느끼지 않으며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는 게 국민의 집의 가훈이다.

사회민주당 소속인 에를란데르가 집권하자 우파 야당의 대표는 “총리의 계획경제대로 가면 스웨덴이 소련처럼 공산주의 사회로 직행할 것”이라고 유권자를 겁줬다. 에를란데르가 추구한 건 복지국가였다. 계급해방이 아니었다. 그는 경제를 일으키면서 복지에 투입할 돈을 댈 수 있는 자본가의 협조가 필요했다. 좌파 권력을 두려워하는 자본가 집단, 재계와 대화가 시작됐다. 그때 에를란데르의 초대장엔 “난 목요일이 한가한데 일단 만나서 얘기합시다”라고 쓰여 있었다. 그 뒤에 아예 “목요일 저녁을 비워놓을 테니 함께 식사합시다”라고 제안했다. 노사정, 여·야·정 협의가 이어졌다. 스웨덴 현대사에서 ‘목요 클럽’은 아주 유명한 만찬 모임이다. 목요 클럽은 지방에 있는 총리의 여름 별장에서, 스톡홀름의 특별한 고궁에서도 진행됐다. 파업 종식, 임금인상 중단 같은 노조의 협조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재계의 결단도 목요 클럽에서 나왔다.

에를란데르는 1969년 “젊은 정치인에게 총리직을 넘기겠다”며 하야했다. 꿈을 다 이뤘다는 것이다. 총리 사퇴 뒤 그가 들어가 살 집이 없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23년간 국민의 집을 만드는 데 성공했으나 자신의 집을 마련하지 못했다. 총리는 사민당이 청년 연수원 옆에 지어준 집에 살면서 당원들과 함께 지내다 84세에 숨졌다. 스웨덴 사람들은 그에게 ‘국민의 아버지’라는 칭호를 붙였다.

스웨덴은 인구 규모가 우리의 5분의 1이고 사회적 환경과 역사적 경로가 판이해 한국의 모델국가로 삼기에 부적절한 면이 있다. 하지만 인종과 민족이 달라도 영혼의 보편성은 찾아낼 수 있다. 스웨덴이 일군 복지국가를 우리가 못 이룰 이유는 없다. 복지사회 건설은 정치와 정치인이 하기에 달렸다는 깨달음이 중요하다. 청렴과 대화, 설득과 믿음이 정치적 수단이다. 첫 번째 행동 프로그램은 박 대통령이 여야 정치인,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사 관계자, 청년 실업자와 50대 은퇴자 등을 매주 돌아가면서 만나는 것이다. 박 대통령에겐 처음 가는 길이다.

전영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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