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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파 스님 “얹혀가니 삶이 버거워, 직접 운전대 잡으세요”


통도사에서 ‘부처님오신날 법문’을 듣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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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0t ‘도자’ 팔만대장경 성파 스님이 통도사 서운암의 장경각에 앉았다. 양 옆에 ‘대장경’ 도자(陶瓷)판이 쌓여 있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의 양면을 똑같이 도자로 구워 만든 일명 ‘도자대장경(陶瓷大藏經)’이다. 한쪽 면씩 옮겼으니 모두 16만2500여 장, 무게는 총 650t이다. 성파 스님은 1991년부터 10년에 걸쳐 이 방대한 불사(佛事)를 완수했다. 남북통일 염원과 민족문화 보존을 원으로 세웠다. [양산=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영상 다큐 경남 양산 서운암에서 성파 스님과 보낸 1박2일은 배움과 힐링의 시간이었다. [촬영 한영혜·공성룡]

개개인은 스스로 빛 내는 발광체
사람들은 미래의 행복 찾지만
지금 여기가 극락, 네가 청산이다
봄 찾아 온종일 돌아다녔는데
집 뜰에 이미 매화가 피었더라

경남 양산 통도사의 봄은 파랬다. 산내 암자인 서운암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는 신록이 파도 쳤다. 암자 앞에는 수백 개의 장독이 늘어서 있었다. 길 따라, 언덕 따라 온갖 야생화가 피었다. 들꽃축제와 시화전도 한창이었다. 서운암은 하나의 커다란 ‘문화 고을’이다. 찾는 이도 다양하다. 부처가 좋아 오는 이도 있고, 꽃이 좋아 오는 이도 있고, 된장 맛이 좋아 오는 이도 있었다.

이 모든 결과물의 연출자는 중봉(中峯) 성파(性坡·77) 스님이다. 그는 영축총림 통도사의 수좌(총림의 최고 어른인 방장 다음의 2인자)다. 부처님오신날(14일)을 맞아 성파 스님을 만났다. 서운암에 무위선원을 세우고 서예·불화·민화·도예·천연염색·전통장 담그기·시조 등 온갖 전통 장르를 넘나들며 불법(佛法)을 피워내는 그를 3회에 걸쳐 조명한다.

“절집에는 이판(理判)과 사판(事判)이 있다. 이판은 진리를 탐구하는 선객(禪客)들이다. 사판은 집도 고치고, 행정도 하고, 절집 살림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럼 이판이 큰가, 사판이 큰가. ‘이판사판’이란 속담이 있다. ‘이사무애(理事無碍·이와 사에 걸림이 없음)’와도 뜻이 통한다. 그러니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해야 한다.”
 
말도 잘하고, 일도 잘한다. 무슨 뜻인가.
“진리의 이론만 알고 사물에 어두우면 곤란하다. 그럼 일이 엉망진창이 된다. 반대로 사물에만 밝고 진리에 어두워도 곤란하다. 그럼 말을 제대로 못한다. 서로 달라 보이지만 둘은 통한다. 이판과 사판을 걸림 없이 다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때 선사라도 대선사가 된다.”

성파 스님은 이(理)와 사(事)를 아우르는 건 출가자만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도시에서 바쁜 일상을 꾸려가는 현대인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세상은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원래 세상은 늘 변한다. 1초도 멈추지 않고 가는 게 세월이다. 변화가 없을 수는 없다. 다들 차에 올라탔다. 나는 가만있는데 차가 가버린다. 가고 싶지 않아도 차가 가면 어쩌겠나. 딸려가야 한다. 그렇게 얹혀가니까 삶이 버겁다.”
버겁지 않으려면 어떡해야 하나.
“자신이 직접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국토(國土)다. 하나의 나라다. 개개인이 그 국토의 주인공이다. 물질로 따지면 스스로 빛을 내는 발광체(發光體)다. 우리는 그런 존재다. 그걸 알면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그걸 모르면 어찌 되나.
“남의 빛을 받기만 하는 수광체(受光體)가 된다. 그럼 남들이 운전하는 대로 얹혀가야 한다. ‘청산원부동 백운자거래(靑山元不動 白雲自去來)’. 청산은 원래 움직임이 없고, 흰구름만 왔다 갔다 할 뿐이다. 구름이 많이 덮였다고 산이 자빠지나, 구름이 떠났다고 해서 산이 엎어지나. 제아무리 구름이 왔다 갔다 해도 청산은 늘 그 자리다. 청산은 주인(主人)이고, 구름은 객(客)이다. 사람들이 주인과 객을 구별하지 못하니까 삶이 힘든 거다.”

성파 스님은 서커스를 예로 들었다. “서커스 하는 사람을 봐라. 보기만 해도 어지럽다. 빙글빙글 돌아간다. 위험천만이다. 그렇게 곡예를 하면서도 넘어지지 않는다. 왜 그런가. 자기 중심이 있기 때문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중심의 힘을 뺏기면 넘어지고, 뺏기지 않으면 넘어지지 않는다.” 성파 스님은 그 중심이 바로 ‘자기 마음의 주인공’이라고 했다.
 
그 주인공이 어디에 있나.
“‘진일심춘불견춘(盡日尋春不見春)’이다. 봄을 찾아서 온종일 돌아다녀도 봄은 보이지 않더라. 돌아와서 보니 자기 집 뜰에 매화가 있거든. ‘춘재지두이십분(春在枝頭已十分)’이라. 봄이 매화 가지에 있은지가 벌써더라. 그 사람이 나갔다 돌아와 보니 핀 게 아니고, 이미 피어 있은 지 오래더라. 그런 뜻이다. 그러니 ‘주인공’이 어디에 있겠나. 우리 안에 진작에 있는 거다. 자기가 잊어버려서 그렇지.”

성파 스님은 “자기가 직접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청와대도 그렇고, 기업체도 그렇다. 아침에 출근하면 조회를 하지 않나. 그럼 수석이나 부장들이 와서 각종 보고를 한다. 그 보고에는 맞는 것도 있고, 틀린 것도 있다. 최고 결정권자는 이걸 다 듣고 난 뒤에 최종 판단을 한다. 그 판단을 잘하면 된다. 신하들과 부장들이 ‘흰구름(객관)’이라면, 최종 결정권자는 ‘청산(주관)’이다. 그 ‘청산’이 우리 안에 있다.”
 
사람들은 행복을 찾는다. 행복은 어디에 있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그중에 뭐가 제일 중요할까. 현재다. 현재가 없으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현재를 중시하지 않을 때가 많다. 행복도 그렇다. 다들 ‘이 다음의 행복’ ‘미래의 행복’만 말한다. 그러다 보면 현재가 수렁에 빠진다. ‘이 다음의 행복’까지도 못 간다. 가령 외줄타기 하는 사람에게 뭐가 제일 중요하겠나. 자기 발 얹어놓은 바로 그 자리, 거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 자리가 없으면 떨어져 죽으니까. 그게 어딘가. 바로 ‘지금 여기’다. 그럼 행복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각자의 현실에서 찾아야 한다.”

이 말끝에 성파 스님은 “새가 숲에 있을 때는 극락세계(極樂世界)인 줄 모른다. 막상 새장에 갇히면 ‘저 숲이 극락세계구나’ 하고 깨닫는다. 우리가 사는 이곳이 극락세계다. 따로 찾을 게 없다. 극락세계를 오인해 사람들이 사바세계(娑婆世界·중생이 사는 세계)라 한다. 고통의 세계라며 자꾸 고민하며 살아간다. 내가 이 지구상에 살 때 여기가 전부 극락세계임을 알아버리면 어찌 되겠나. 날마다 날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가 있다”고 말했다.

다들 밖에서 찾는다. 멀리서 찾는다. 아득한 서쪽 끝, 그 땅의 너머에 ‘서방정토(西方淨土)’가 있다고 믿는다. 거기에 ‘행복’이 있으리라 여긴다. 성파 스님은 거꾸로 말했다. 바로 여기가 ‘극락(極樂)’이라고 했다. 지극한 즐거움의 땅. 행복의 땅. 그곳이 ‘지금 여기’라고 했다. 내 안의 청산을 잊고서 흰구름만 쫓아다니는 우리에게 성파 스님은 말했다.
 

네가 바로 청산이다!”

◆성파 스님=월하 스님을 은사로 출가 . 현재 영축총림 통도사 수좌이자 조계종 원로의원. 한국의 전통문화를 되살리는 활동을 전방위로 펼치고 있다.

양산=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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