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시론] 몇 천 년 이어온 빛, 늘 새로운 그 빛

기사 이미지

지 홍
조계종 포교원장

지혜의 등불을 붙이는 게 연등
후세에 연등회를 잇는 건 전등
욕심·화냄·어리석음 몰아내고
강물처럼 흐르는 빛 만나시길

잠실 불광사 회주

한적한 밤길 운전은 이제 나이 탓인지 부담스럽다. 시야를 제대로 확보하기 위해 멀리까지 비치는 상향등을 켰다. 하지만 달리다보면 그 사실조차 잊게 된다. 맞은편에서 오던 차가 ‘번쩍’ 하며 주의를 주고 지나간다. ‘아차!’ 싶어 다시 하향등으로 조정한다. 비치는 면적이 줄어드니 당연히 운전이 불편하다. 한참 후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과속으로 뒤따라 오던 트럭이 하이빔을 쏘아대며 비켜달라고 야단이다. 할 수 없이 일단 피했다. 갑자기 부아가 슬며시 치민다. 뒤따라 가며 앙갚음으로 하이빔을 쏘아보지만 역부족이다. 차 높이가 이미 서로 다른 까닭이다. 아~참! 마음공부 한다는 수행자가 이러면 안 되지. 잠시나마 일어났던 남을 미워하던 감정을 가라앉혔다. 그건 그렇고. 어쨌거나 빛의 과잉은 상대방을 불편하게 만든다. 아무리 내가 필요한 빛이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필요한 법이다. 그것은 공동체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구성원들의 의무인 까닭이다. 

하지만 빛의 과잉도 제대로 조절만 할 수 있다면 사람의 눈길을 모을 수 있다. 조명의 여러 가지 색깔과 강렬함을 통해 꾸며지는 갖가지 무대의 화려함은 주인공과 배우들을 더욱 빛나게 만들고 관객에게 감동을 더해주는 요소가 된다. 이제 빛 전문가인 조명감독의 영역은 실내로 국한하지 않고 도시 전체로 넓혀졌다. 쇳덩이로 만든 다리에도 조명을 넣고 단청이 조화로운 고궁건물도 빛으로 화장을 한다. 이제 아름다운 야경이 도시관광의 경쟁력인 시대가 된 까닭이다. 방방마다 층층마다 켜진 등이 모여 하나의 빌딩등(燈)이 된다. 빌딩등 한 등 한 등이 모여 ‘도시등’이라는 야경을 만든다. 그야말로 한 등이 켜지면서 천 등 만 등이 되는 이치를 조화롭게 보여준다. 야경이 아름다운 세계적인 도시들은 빌딩등들이 자연스럽게 제 몫을 다하기 마련이다. 

 
기사 이미지
이즈음 잠심벌에 있는 불광사(佛光寺)도 작은 연등이 하나하나 모여 ‘빛절’이 되었다. 내친김에 인근 석촌호수 주변까지 밝혔더니 저녁마다 지역주민과 외지 관광객들이 등불 아래에서 그야말로 ‘빛보기(觀光)’를 즐기고 있다. 이맘때면 스승께서 ‘빛절’이라고 이름을 지은 뜻을 제대로 알 것 같다.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 광화문 앞에는 한지로 만든 은은한 불빛의 대형 탑등을 세웠다. 신호등에 걸린 버스승객들도 광장 대중과 함께 여유롭게 그 불빛을 즐긴다. 청계천·인사동·북촌에는 갖가지 형형색색의 등불이 가득하다. 동방의 빛을 찾아온 외국인 관광객도 수만 명이다. 해마다 그 숫자가 늘어나는 인기 해외관광 상품이 되었다. 

2500여 년 전 붓다께서 궁궐에서 법문을 마치고 사찰로 되돌아오는 길은 이미 깜깜했다. 그날따라 왕은 많은 질문을 했고 답변 또한 길어졌던 까닭이다. 제자들은 귀사 길을 밝히기 위해 등을 달기 시작했다. 요즘 말로 바꾸면 ‘붓다의 길’이 된 것이다. 그것이 전통이 되고 역사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다. 스승은 그 길을 걸으면서 “고맙다!”는 말끝에 한마디 더 보탰다. 길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의 욕심과 화냄과 어리석음이라는 마음속 세 가지 어둠의 길도 함께 밝혀줄 것을 주문했던 것이다. 그래서 속 뜰까지 밝히는 지혜의 빛이라는 의미가 더해졌다. 1000년 동안 계속된 동굴의 어둠이라고 할지라도 등불을 들면 순식간에 어둠이 사라지는 것처럼 지혜의 등불을 드는 순간 내가 쌓아 온 수십 년 아집(我執)도 찰나에 사라질 것이라고 자상하게 일러 주셨다.

지혜의 등불은 심지끼리 서로 닿게 하여 불을 붙였다. 이를 연등(燃燈)이라고 한다. 하나의 등은 두 개의 등이 되었고 두 개의 등은 네 개의 등이 되었다. 많은 이가 모여서 불붙이기를 동시에 하니 그것이 연등회가 된 것이다. 이 모임은 그 시절은 물론 후세까지 대대로 이어지도록 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것을 전등(傳燈)이라고 불렀다. 그런 과정 속에서 일 등이 만 등에 불을 전해도 내 빛의 밝기는 절대로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고 지역을 달리하면서 의례가 가미되고 여흥이 보태지면서 동아시아 곳곳의 등불축제로 분화되었다. 

한반도의 관등(觀燈)놀이도 그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연등회는 2012년 4월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된다. 통일신라부터 현재까지 지속과 단절 및 변화를 거쳐 일반인들까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의식이라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정성스러움과 자발적 참여를 바탕으로 지속과 변화를 이루면서 면면히 계승된 등불인 것이다. 오월 첫 번째 주말에 종로길의 연등회 행렬은 사월초파일 행사의 백미다. 몇 천 년을 이어온 빛이면서 동시에 늘 새로운, 강물처럼 흐르는 그 빛을 만나는 감동의 시간인 것이다. 

일천 몇 백 년 전 연등을 보며 조주(趙州·778~897) 선사에게 누군가 물었다.

“한 개의 등불로 백천 개의 등불을 켭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의 등불은 어디에서 온 것입니까?”

오늘 등불 밑에서 화두로 삼아 정진하면서 그 해답을 찾아볼 일이다.

지홍 조계종 포교원장·잠실 불광사 회주
AD
온라인 구독신청 지면 구독신청

PHOTO & VIDEO

shpping&life

많이 본 기사

댓글 많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