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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젠, EU는 0.1% 넘으면 출시 금지…한국은 용도 제한도 없어

정부가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계기로 유해화학제품을 관리할 컨트롤타워를 총리실에 두기로 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가 나온 지 14년 만이다. 환경부는 생활화학제품 관리,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의약외품 관리, 산업통상자원부는 공산품 관리를 각각 나눠 맡는 바람에 벌어진 관리의 사각지대를 뒤늦게나마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이에 따라 현행 화학물질 관리제가 수술대에 오르게 된다.

정부는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화학물질 평가 및 등록에 관한 법률(화평법)’ 등을 제정해 지난해부터 시행 중이다. 화평법은 ‘유해성 등 정보가 확인되지 않은 물질은 시장에 나오지 못하게 한다(No data, no market)’는 취지로 유럽연합(EU)이 2007년 도입한 ‘신화학물질 관리제도(REACH)’를 참고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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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행 화학물질 관리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의 관리 현황이 EU 등과 비교할 때 허술하다는 데 있다. 정부는 “화학물질 중 722종을 유독물질로 지정해 관리 중”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제품 용기에 ‘독성 있음’ 표시를 한다는 것이지 위해가 나타날 수 있는 용도로의 사용까지 제한하는 것은 아니다.

특히 EU에서 사용이 금지된 화학물질이 한국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다. 1급 발암물질로 알려진 벤젠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농도 85% 이상의 벤젠’을 유독물질로 지정했다. 벤젠은 플라스틱 용제로 흔히 쓰여 2010년 한 해에만 514만t이 국내에서 유통됐다. 환경부 스스로도 “건축자재나 페인트 또는 가정에서 사용되는 접착제·세정제·왁스·살충제 등에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고 안내하고 있다.

반면 EU에선 “농도가 0.1% 이상의 벤젠이면 시장에 출시되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농도 0.0005%보다 높을 경우 장난감에 사용되어선 안 된다’고 못 박고 있다.

특정 용도에서 사용을 제한하려면 해당 화학물질에 대해 ‘제한물질’ 지정으로 이어져야 한다. 국내에서 지정된 제한물질은 현재 12종으로 EU의 57개군에 비해 적다. 같은 제한물질이라도 한국은 사용을 금지하는 용도가 훨씬 적다. 역시 1급 발암물질인 카드뮴의 경우 EU는 카드뮴 농도 0.01% 이상인 금속과 플라스틱 제품의 출시를 금하고 있다. 한국에선 이보다 농도가 열 배(0.1%)인 카드뮴을 금속 장신구에서만 제한하고 있다. 카드뮴 사용이 제한 되는 용도를 EU 법령집은 3쪽에 걸쳐 설명한다. 하지만 한국의 ‘화학물질정보시스템’에선 이 설명이 한 문장에 그친다.

더욱 심각한 것은 제한물질 지정이 2009년 이후로 아예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환경부는 올해 2월 발표한 ‘화학물질의 평가 등에 관한 기본계획’(2016~2020)에서 “2009년부터 (제한물질 등을) 지정하지 않고 있으며 제한용도가 한정돼 유해물질에 대한 실질적 관리에 한계를 보이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환경부 관계자는 “2008년까진 화학물질 규제가 국제적 붐을 이뤄 제한물질을 지정했지만 이후엔 산업계의 반대에 부딪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평법 시행 이후 제한·금지물질 지정이 오히려 까다로워졌다. 법규대로라면 EU 등에서 이미 용도 제한이 된 물질도 국내에서 별도로 위해성 평가를 거치게 돼 있다. 환경부 이호중 환경보건정책관은 “유해성이 비슷해도 사용 양태나 빈도 등에 따라 실제 인체에 미치는 위해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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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더해 이제는 용도 제한 등에 따른 사회경제적 효과 등도 심사하게끔 규정이 바뀌었다. 제한물질 지정은 화학산업계 대표자 4명이 참여하는 환경물질평가위원회(위원 15명)를 통과해야 한다.

이에 대해 노동환경건강연구소 김신범 환경물질센터 실장은 “EU 등에서 이미 확인했는데도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들여 국내에서 위해성 평가를 별도로 하겠다는 것은 제한물질을 추가 지정할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성시윤 기자 sung.siy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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