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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호의 사람 풍경] “도깨비·귀신도 실수 잦고 어수룩…한 많은 우리 이웃”


동화책 50종 펴낸 ‘이야기 대장’ 서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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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서정오씨의 몸에 옛이야기 단골손님인 호랑이와 토끼 그림을 비췄다. 그는 “아이들에게 옛이야기를 공부처럼 강요하면 안 된다”고 했다. 경쟁의 시대, 이야기에 담긴 위로의 힘을 강조했다. “몰라도 괜찮아” “게으름 좀 피우면 어때”가 더 필요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동화작가 서정오(61)씨는 ‘이야기 대장’이다. 아이들이 그렇게 부른다. “(선생님의)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 잊지 못할 거예요. 앞으로 옛이야기 책 많이 써 주세요.” 7년 전 한 초등학생이 보내온 편지다. 그렇게 받은 편지가 600여 통에 이른다. 서씨의 ‘보물 1호’는 14년 전 스승의 날에 받은 ‘표창장’. 강원도 동해시의 한 아이가 보내왔다. “위 사람은 옛이야기 보따리를 만들어 조상들이 말하는 것처럼 이야기를 썼고”로 시작한다.

“그때 아이들이 이제 다 성인이 됐겠죠. 그 어떤 기관에서 준 상장보다 귀한 선물입니다. 일일이 답장을 못해 줘 미안할 뿐이죠.” 그는 백발이 성성하다. 마치 산신령을 닮았다. “젊어서부터 희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내가 150살인데’라고 하면 모두 눈이 동그래지죠.”(웃음)

서 작가는 1년 내내 전국이 교실이다. 아이와 부모, 선생님 등을 대상으로 이야기 곳간을 풀어놓는다. 지난 5일 어린이날을 앞두고 그를 만났을 때도 서울 금천구와 경기도 일산을 다녀왔다. 이튿날에는 전북 고창에 간다고 했다. “늘 바쁜 건 아닌데 4~5월엔 강연 일정이 빽빽합니다. 많으면 한 해 100번 정도 하는 것 같아요. 명색이 작가가 이렇게 돌아다녀도 되는 건가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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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오 작가가 2002년 스승의 날에 강원도의 한 초등학생으로부터 받은 표창장.

 
무슨 말씀을 주로 하십니까.
“요즘 부모나 선생님 중에는 옛이야기를 듣고 자란 사람이 별로 없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데 구체적인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무엇보다 옛이야기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주려고 합니다.”
선입견이라면 어떤 건가요.
“‘틀에 박혀 있다’ ‘허황하다’ ‘비현실적이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게 옛이야기의 매력이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예로 권선징악적 내용이 낡았다고 하는데, 우리가 수천·수만 년 쌓아온 슬기가 바로 그것 아닌가요. 흥부보다 놀부를 낫게 보는 요즘 일부 사람들이 옳다고 할 순 없겠죠.”
옛이야기의 매력이라면요.
“어리고 착한 주인공들이 이런저런 도움을 받아 어려움을 이겨내는 틀(구조)이 기본입니다. 딱딱한 도덕 교과서와 달라요. ‘열심히 공부해라’ ‘목표를 분명히 세워라’고 강요나 명령을 하지 않습니다. 듣는 사람, 즉 아이들을 쓰다듬고 어루만져 줘요. 이야기는 공부가 아니라 놀이입니다. 아이들은 놀면서 배우죠.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듣고 상상하는 게 이미 훌륭한 교육 아닌가요.”

서 작가가 옛 일화를 하나 꺼내들었다. 그는 경북 안동의 가난한 농가 7남매의 막내였다. 위로는 누나만 여섯. 귀여움을 받고 컸지만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 그는 식탐(食貪)이 많았다. 당시 어머니가 들려준 ‘너삼 허리띠’ 얘기가 지금도 생생하다고 했다. 고삼(苦蔘)으로도 불리는 너삼은 줄기와 뿌리가 굵고 질긴 풀이다. 시집 간 누나 집에서 해준 밥을 너무 많이 먹어 배가 산만큼 나온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너삼으로 허리띠를 맸는데, 졸라맨 허리띠가 불룩한 배를 파고든 나머지 결국 아이가 죽게 됐다는 줄거리다. “이 이야기를 듣고 배가 부르면 슬그머니 숟가락을 놓았지요. 만약 어머니가 ‘밥 좀 그만 먹어라’고 잔소리를 늘어놓았다면 제 버릇이 고쳐졌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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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옛이야기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들. 왼쪽부터 선비·나무꾼·저승사자.

 
전에는 이야기가 TV·인터넷이었죠.
“화롯가에서 할아버지·할머니의 얘기를 들으며 잠에 들었죠. ‘옛날 옛적에 호랑이가 살았는데…’가 시작되면 마법에 걸린 듯이 빠져들었습니다. 저도 아버지에게서 ‘한양가’ ‘유충렬전’ 같은 전설을, 어머니에게서 ‘별순이 달순이’ 같은 민담을 들으며 자랐어요. 부모님 몸에 밴 이야기들이죠. 또 웬만한 고을에는 얘기꾼이 있었고요.”
선생님 마을도 예외는 아니었겠죠.
“칠봉이 아재가 생각납니다. 아재가 저녁 먹고 마실을 나오면 동네 꼬마들이 줄레줄레 따라 나왔어요. 아재 얘기는 화수분 같았어요. 밑천이 달리는 법이 없었죠. 좁쌀을 술에 불린 다음 멍석에 깔아 놓으면 그걸 먹은 참새들이 술에 취해 잠이 드니까 참새를 쉽게 잡을 수 있다고 하는 바람에 동네 아이들이 좁쌀을 술에 담가놓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아! 옛날이여’ 같은 얘기입니다.
“시간을 되돌리자는 뜻이 아닙니다. 지금도 옛이야기를 얼마든지 들려줄 수 있어요. 예전 할머니·어머니가 했던 역할을 이젠 지자체·교육기관 등이 맡아야 합니다. 일정 공간을 빌려 어르신을 모셔오면 되지 않을까요. 소통이 절로 될 겁니다. 실제 요즘 안동에서는 이야기 할머니들의 활동이 왕성해요. 옛이야기는 세대를 잇는 끈입니다.”
게임에 빠진 요즘 애들이 좋아할까요.
“자신 있게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옛이야기를 싫어하는 아이들을 지금껏 본 적이 없어요. 조상들과 똑 같은 피를 갖고 태어났잖아요. 속는 셈치고 세 번만 들려 주세요. 아이들 눈이 반짝반짝 빛날 겁니다. 다만 교훈을 내세우면 안 돼요. 이야기가 지루해지고 잔소리로 흐를 수 있습니다. 아이들 눈으로 봐야 합니다.”

1984년 데뷔한 서 작가는 ‘이야기 심부름꾼’을 자부한다. 지난 30여 년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민담·전설을 수집하고 옛 문헌 등에 실린 이야기를 찾아내고는 이를 요즘 입말에 맞게 새로 빚어냈다. 그렇게 ‘다시 쓴’ 옛이야기 500여 편을 동화책 50여 종으로 엮어냈다. 96년 나온 『서정오의 우리 옛이야기 백 가지 1, 2』(현암사)가 대표적이다. 지금까지 25만 부가 팔리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옛이야기 주인공을 유형별로 설명한 『옛이야기 별별 인물』(열린어린이)도 냈다. 나무꾼·소금장수·도사·바보·귀신·저승사자·도깨비 등을 두루 소개했다.
 
나무꾼 얘기가 왜 그렇게 많죠.
“저는 나무꾼을 ‘백성 1호’라고 부릅니다. 옛이야기 단골손님이죠. 나무꾼은 가난한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옛날에 부자 나무꾼이 살았는데…’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나요. 나무꾼은 주로 꿈을 꿉니다. 부자 되는 꿈, 결혼하는 꿈 등 고단한 삶을 뛰어넘으려는 염원일 테죠.”
도깨비도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귀신도 마찬가지죠. 한 많고 사연 많은 우리들 이웃입니다. 도깨비도, 저승사자도 실수를 자주 하죠. 어수룩합니다. 사람을 해코지하지 않아요. 옛이야기 주인공들은 어린이·과부·노인 등 99% 약자 편에 섭니다. 지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와 통하는 대목이죠.”
초등학교 교사도 오래 했는데요.
“2005년까지 28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들려줄 얘깃거리가 달려 옛이야기에 눈을 돌리게 됐죠. 교사와 작가, 두 가지를 다 잘할 수 없어 정년을 채우지 않았습니다. 아이들에게 전념하지 못하는 게 죄를 짓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왜 지금 옛이야기를 꺼내야 할까요.
“톨스토이를 보세요. 그가 위대한 건 러시아 이야기에 뿌리를 내린 때문입니다. 우리 이야기를 모르고 아이들이 세상의 주인으로 자랄 수 있을까요. 상상력도, 창의성도 옛이야기에서 비롯합니다. 서로 어울려 사는 지혜도 배우고요. ‘하느님은 쓸데없는 건 하나도 만들지 않으셨다’는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 구절처럼요.
남은 소망이 있다면요.
“옛이야기에 바탕을 둔 창작동화를 쓰려고 합니다. 북한 이야기도 수집하고 싶고요. 세 살 된 손녀에게도 이야기를 많이 해줘야죠. 딸만 셋인데 글 쓴다는 핑계로 잘 챙기지 못했거든요. 마음의 빚을 갚을 때입니다.”
 
[S BOX] 이오덕·권정생이 나의 스승, 교육·문학에 눈뜨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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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이다. 서정오 작가는 “해마다 이맘때면 스승 두 분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다”고 했다. 두 스승은 한국 어린이 문학의 기둥이었던 이오덕(1925~2003·사진 왼쪽) 작가와 권정생(1937~2007·사진 오른쪽) 작가다. 서씨는 “이오덕 선생님은 교육에 대해, 권정생 선생님은 문학에 대해 눈을 뜨게 해주셨다”고 기억했다.

경북 청송 출신의 이오덕 작가는 우리말 글쓰기와 교육에 온 힘을 기울였다. 번역 말투, 일본 말투에 오염된 우리말을 바로잡으려고 했다. 『우리 문장 바로 쓰기』 『우리글 바로 쓰기』 등을 남겼다.

“제가 초등학교 햇병아리 교사 시절 인근 초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셨죠. 의욕만 넘치고 보는 눈은 없던 시절,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을 찾아뵈었어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지식이나 재주가 아니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삶은 가꿔야 한다. 기름지게 해야 한다’는 당부를 곱씹고 있습니다.”

권정생 작가는 서 작가와 고향이 같다. 애니메이션·드라마로도 만들어진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의 ‘명작’을 남겼다. 약하고, 어리고, 아픈 것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었다.

“아동문학에 처음 뜻을 세웠던 안동교육대 학생 시절 선생님으로부터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창작에 관심이 컸던 제가 옛이야기로 방향을 틀게 된 것도 권정생 선생님 덕분이죠. 문학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분입니다. 평생을 병마와 싸우면서도 당신의 몸을 돌보는 것을 사치로 여기셨습니다.”

박정호 문화전문기자·논설위원 jhlogo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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