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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속으로] 솟아오르다 확 꺾여보니, 벽에 부닥친 사람들 보이더라

근데, 꿈이 뭐예요?”


그가 불쑥 물었다. 명함을 교환하고 막 인사를 마친 후다. 당황스러웠다. ‘어, 내 꿈이 뭐였더라…’. 얼른 질문으로 반격에 나선다.

‘돌아온 언니’ 꿈 강사 김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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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디자인한 여름용 롱재킷을 입은 김미경 아트스피치 대표. 한정 수량만 주문 제작해 판매하고 수익금은 전액 미혼모 지원에 쓸 계획이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아직도 꿈을 이야기하네요.
“내가 ‘꿈 강사’잖아요. 누굴 만나면 이 사람은 뭘 하고 싶을까 궁금해요. 근데 꿈이란 게 별 게 아니에요. 여행을 가고 싶다, 공부를 좀 더 하고 싶다…. 내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죠. 그렇게 있고 싶은 자리에 나를 끌고 가는 능력이 ‘꿈 실력’이고.”

여전히 시원시원하다. 한때 ‘독설하는 언니’로 이름을 날렸던 인기 강사 김미경(52) 아트스피치 대표다. 지난달 그가 패션브랜드 ‘리리킴’을 론칭하고 온라인으로 옷을 판매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익금은 미혼모 지원사업에 쓰인다고 했다. 4일에는 지난 3년간 유튜브에 연재했던 ‘김미경의 있잖아…’를 글로 엮은 새 에세이집 『김미경의 인생미답』도 출간했다. 2013년 논문 표절 사태 이후 한동안 관심에서 멀어졌던 그는 여전히 강사로, 저자로, 패션디자이너로 바쁘게 뛰는 중이었다.
 
느닷없이 패션디자이너라니요.
“제가 양장점집 딸이잖아요. 충북 증평에서 어머니가 50년간 ‘리리 양장점’을 운영하셨어요. 1년 반쯤 전, 한 연예인이 입은 판초 스타일 외투를 봤는데 너무 예쁜 거야. 그 길로 동대문에서 천을 사다 재봉질을 했어요. 그런데 또 이게 입을 만해. 그렇게 시작해서 만든 옷이 벌써 300벌이 넘어요.”
‘비영리 패션브랜드’라고 적혀 있던데.
“원래는 옷을 판매할 생각이 없었어요. 제가 지금 ‘그루맘’이라는 미혼모 지원단체를 만들려고 사단법인 지정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거든요. 어떻게 하면 후원금을 재미있게 모을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옷을 팔면 좋겠다 한 거지. 계절별로 몇 종류만 주문 제작을 해서 판매하고 수익금을 전액 미혼모를 돕는 데 쓸 계획이에요.”
미혼모 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가 있었나요.
“언젠가 앳된 소녀가 제 강의를 들으러 왔어요. ‘왜 친구랑 안 오고 혼자 왔니’ 했더니 ‘오늘 우리 아이 첫 생일인데 선생님 강의를 들으며 자축하고 싶어서요’ 하더라고요. 임신을 했는데 남자친구가 떠났대. 죽고 싶었지만 마음 다잡고 아이를 낳아 온갖 아르바이트를 하며 1년간 키웠대요. 아, 저 조그만 아이에게서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왔을까. 생각해 보니 미혼모는 보통 사람이 내기 힘든 용기를 두 번 낸 사람들이에요. 일단 아이를 낳겠단 결심을 했고, 낳은 후에는 입양 보내지 않고 내 손으로 키우기로 한 거죠.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어 홀트아동복지회와 2년간 미혼모 지원활동을 했어요.”
직접 단체를 만드는 이유는요.
“오래 도우려면 조직이 필요하다 싶었어요. 어린 엄마들은 아이 키우느라 자신의 꿈을 희생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와 엄마가 같이 성장할 수 있도록 장학금도 주고 상담도 하고, 필요한 게 있으면 대신 정부나 사회에 요구도 하려고요. 내가 미혼모들에게 종종 말해요. ‘너랑 아이랑 몇 살 차이 안 나니까 나중에 누가 잘될지는 아직 모른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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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출신에 아이 셋의 엄마로, ‘강사’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질주한 김 대표의 스토리는 많은 사람의 지지를 받았다.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 『언니의 독설』은 베스트셀러가 됐고, 꿈을 꾸라고 다그치는 강연엔 사람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2013년, 2007년 이화여대에 제출한 석사 학위 논문이 표절 논란에 휘말리면서 그는 한번 주저앉았다. 이번 에세이집 『김미경의 인생미답』에는 강연에서 만나 인연을 맺은 미혼모 이야기를 비롯해 그를 응원해주는 사람들과의 인연, 지난 3년간 느낀 기쁨과 슬픔이 진솔하게 담겼다.
 
지난 책들과 비교하면 이번 에세이는 너무 따뜻해요.
“예전엔 ‘힐링? 웃기고 있네. 원하는 걸 이뤄야 해결돼. 울 시간에 뛰어!’ 이게 제 메시지였죠. 지금 돌아보니 꿈을 가진 사람들을 끌어주는 건 좋은데 주저앉은 아이들도 좀 일으켜 함께 가지 왜 그랬을까 싶어요. 노력하고 싶은데 그것마저 맘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 꿈을 말하기에도 버거운 형편의 사람들에게 눈길이 가더라고요.”
논문 표절 사건이 계기가 된 건가요.
“1년 정도 쉬면서 공부를 많이 했어요. 내가 부족했구나, 그걸 나에게 가르쳐주기 위해 이런 불행이 찾아왔구나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직선으로 솟아오르다 확 꺾여보니 벽에 부딪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보이고, 그 사람들에게 어떤 말과 글로 용기를 줄까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이젠 꺾여본 게 행운이었다고 느껴요.”
당시 이화여대에서는 논문을 취소하지 않았는데.
“‘재인용에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지만 당시 표절에 대한 기준이 없고 논문의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추가 조치는 없을 것’이란 레터를 받았어요. 몰라서, 무식해서 저지른 일이지만 잘못한 건 맞아요. 당시에 제가 받았던 말도 안 될 정도의 관심이나 애정을 생각하면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죠.”
‘미혼모들의 큰엄마’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제 글과 강연은 결국 제가 살아온 인생이에요. 30대엔 어떻게 꿈을 찾을 것인가, 40대 땐 어떻게 꿈을 이룰 것인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이제는 어떻게 의미 있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돼요. 나는 여자, 그리고 엄마라는 정체성이 좋고 덕분에 인생을 두 배, 세 배 치열하고 깊이 있게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미혼모들은 너무 어린 나이에 여자이자 엄마로 어렵게 시작하는 사람들이라 더 마음이 쓰이는 것 같아요.”

‘꿈’이란 단어마저 사치스러운 시대라고 하지만 김 대표는 계속 ‘꿈질’을 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사회에 대한 분노도 필요해요. 분노가 모여 무언가를 바꾸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 분노에 나 자신이 잡아 먹혀선 안 돼요. 내 안의 소소한 소망을 방치하지 않고 실제 사건으로 만들어주는 것, 그런 작은 ‘꿈질’이 모이면 자신감이 붙고, 그 자신감이 삶을 끌어가는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니까요.”
 
[S BOX] 새 직업은 명함 파는 인쇄소에서 탄생한다

김미경 대표에게 명함 두 장을 받았다. 하나는 ‘아트스피치 대표’, 하나는 ‘리리킴 수석디자이너’라고 적혀 있다. “웃기죠? 제가 잘하는 게 명함 먼저 파는 거예요. 디자인 공부를 제대로 한 적도 없고, 사람들이 비웃을 수도 있지만 그냥 팠어요. 디자이너라고.” 강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24년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작정 인쇄소를 찾아가 ‘강사’ 명함을 파달라고 했다. 인쇄소 직원이 물었다. “전문 분야가 있나요?” “아니요.” “그럼 주로 어디서 강의하세요?” “그냥, 기업 몇 군데….” “그럼 기업 강사라고 쓰지요.” 그렇게 인쇄소에서 ‘기업 강사’라는 새 직업이 탄생했다.

김 대표는 “사람은 스스로에게 어떤 이름을 붙이는 걸 두려워한다. 남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먼저 이름을 붙이고 그 가치를 자신이 만들어 나가는 것도 괜찮더라”라고 했다. 강의에 온 젊은이들에게 “지금 명함을 만든다면 뭐라고 쓰고 싶나?”고 종종 묻는다. 셰프, 뮤지션, CEO 등의 답이 돌아온다. “오늘 내가 갖고 있는 것 중 가장 가능성 있는 걸 명함에 딱 새겨놓고 노력할 단서를 만들어 보세요. 그리고 그 이름의 함량이 채워질 때까지 계속해 보는 거죠.”

글=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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