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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으로] 영국 해리왕자, 봉사하며 세상 배웠듯…말리아도 입학 1년 미루고 ‘사회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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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입학을 앞두고 1년간 갭 이어를 갖기로 한 오바마 대통령의 장녀 말리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큰딸 말리아 오바마(18)가 과연 어느 대학에 들어갈지를 두고 세계 언론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지난 2일 백악관은 “말리아가 하버드를 선택했다”고 답을 내놨다.

하버드 가는 오바마 큰딸이 택한 ‘갭 이어’

다음 관심은 말리아가 택한 하버드에 집중될 게 뻔했지만 미국 언론은 대학 간판보다 좀 생소한 ‘갭 이어(Gap year)’를 앞다퉈 다루기 바빴다. 고교 졸업생인 말리아가 당장 올 9월 하버드에 입학하는 게 아니라 갭 이어를 갖고 1년 뒤인 내년 9월 하버드에서 학업을 시작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도대체 갭 이어가 뭐길래 1년이나 대학 입학을 미룰 수 있지?’ 갭 이어라는 제도에 이목이 집중됐다.

갭 이어는 통상 고등학교 졸업생이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여행을 하거나 봉사활동·인턴 등 사회 경험을 쌓으며 진로 체험도 하는 기간을 말한다. 입학은 보장하되 등록 시기를 1년뒤로 유예해준다는 점에서 휴학과 구별된다. 대학이 입학생에게 허락하는 갭 이어 기간은 통상 1년.

미국 대학이 갭 이어를 도입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하버드가 2000년 초반부터 갭 이어를 권장하기 시작했고 프린스턴이나 매사추세츠공대(MIT)는 몇 년 안 됐다. 갭 이어를 시행하는 대학은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수십 개뿐이다. 그렇다 보니 AP통신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전체 고교 졸업생 중 갭 이어를 택한 학생은 약 3만3000명에 불과하다. 미 전체 고교 졸업생의 1%도 안 되는 숫자다.

사실 갭 이어의 원조는 영국이다. 영국 윌리엄 왕세손과 해리 왕자가 말리아보다 훨씬 앞서 갭 이어를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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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졸업 후 갭이어를 통해 사회를 경험한 영국 해리 왕자와 윌리엄 왕세손, 배우 에마 왓슨(아래 왼쪽부터).


윌리엄 왕세손은 2000년 영국 명문 이튼스쿨을 졸업한 뒤 1년간 해외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2001년 세인트 앤드루 대학에 입학했다. 영연방 국가인 중미 벨리즈에서 군사훈련을 받았고 칠레에 가선 영어 선생님으로 교육 봉사활동을 했다. 당시 왕자 신분으로 스스럼없이 일반인과 어울리는 윌리엄의 모습에 전 세계가 친근감을 느꼈다. 하버드가 윌리엄을 보고 갭 이어에 주목했다는 얘기도 있다.

해리 왕자는 2003년 이튼스쿨을 졸업하고 호주·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해리는 갭 이어를 2년 보냈다. 특히 남아프리카공화국 레소토 왕국에서 에이즈에 걸린 고아들을 돌본 게 “내 삶에 어떤 방향 제시가 됐다”고 해리는 나중에 영국 IT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그는 “난 어머니(고 다이애나 왕세자비)를 많이 닮았다”며 “레소토에서 봉사를 하면서 생전 어머니가 했던 에이즈 퇴치활동을 이어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해리는 실제 영국으로 돌아와 레소토 고아들을 후원하는 자선단체를 설립했다.

비교적 최근 갭 이어를 가진 유명 인사는 영화 ‘해리포터’의 여주인공 에마 왓슨. 역시 영국 태생의 왓슨은 미국 명문 브라운대 합격 통지를 받고 2009년 갭 이어를 보냈다. 평소 환경 문제와 패션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영국의 친환경 패션업체 ‘피플 트리’에서 일했다.

미국 인터넷언론 쿼츠에 따르면 갭 이어의 탄생은 400년 전 영국의 귀족가문 자제들의 ‘그랜드 투어(Grand tour)’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1960~70년대 영국 여행사들이 이에 착안한 각종 프로그램을 선보였고 영국에서 제도적으로 자리 잡았다. 아시아에선 일본이 2010년 도쿄대 등이 갭 이어를 도입했고, 중국도 청소년발전기금회가 지난해 갭 이어 특별 기금을 베이징에서 출범시켰다. 한국은 고교 졸업생을 위한 갭 이어 제도가 따로 없다. 갭 이어를 운영 중인 대학도 없다.

미국갭협회(American Gap Associ ation)에 따르면 영국에서 갭 이어를 갖는 고교 졸업생은 연간 20만~30만 명으로 미국의 10배 수준이다. 아일랜드·호주·뉴질랜드도 영국 영향으로 갭 이어를 시행 중이다. 말리아의 꿈이 영화감독인 점을 들어 할리우드와 관련된 일을 하거나 해외 여행을 할 거란 전망도 나온다.

말리아 덕분에 갭 이어가 미국에서 트렌드가 될 거란 시각도 있다. 갭 이어가 학업 성취도 향상에 기여한다는 보도도 쏟아졌다. 워싱턴포스트(WP) 등은 미국 미들버리칼리지 입학허가처의 조사 결과 갭 이어를 보낸 학생들의 평균 학점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지속적으로 높았다고 전했다.

하버드는 홈페이지에서 갭 이어 권장에 대해 “이르면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 입학 때까지 공부에만 몰두하는 게 요즘 학생들의 현실”이라며 “한발 물러나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탐색하고 삶의 목표에 대한 시각을 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말리아의 갭 이어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갭 이어가 미국 상위권 대학에 입학한 일부 학생만 누리는 ‘호사’ 아니냐는 시선이다. 또 갭 이어를 가려면 일단 돈이 든다는 점 때문에 자기 계발의 계기로 활용하는 건 상류층 자제뿐이란 비아냥도 나온다.

세라 골드릭랍 미 위스콘신메디슨대 교수는 “대학 등록금 때문에 입학과 동시에 휴학하고 돈을 버는 학생이 많은 상황에서 말리아의 갭 이어는 사치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직접 수행한 2011년 연구를 토대로 “저소득층 학생들은 갭 이어를 갖더라도 집안 형편 때문에 자기 계발의 계기로 활용하는 일이 드물었다”며 “갭 이어를 마친 뒤 대학에 복귀하지 못하거나 학업에 적응하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다”고 지적했다.
 
[S BOX] 영국 상류층, 유럽 문화 체험 ‘그랜드 투어’가 원조…모차르트·괴테도 참여

갭 이어의 원조 격인 ‘그랜드 투어’는 1660년께부터 1840년대까지 영국 상류층 자제들 사이에서 유행한 유럽 여행이다. 영국의 가톨릭 신부 리처드 러셀스가 1670년 그의 책 『이탈리아 여행』에서 그랜드 투어란 말을 처음 사용했다. 영국의 유력 귀족 집안의 가정교사로 일했던 러셀스는 귀족 자제를 보좌하기 위해 그랜드 투어로 이탈리아를 다섯 차례 방문했다. 러셀스의 책 출간 이후 그랜드 투어는 다른 북유럽 국가의 부유층으로 퍼져 나갔다.

짧게는 몇 달, 길게는 몇 년에 걸쳐 유럽 곳곳의 유적과 문화를 체험하는 이 여행은 귀족 사회의 등용문처럼 간주됐다. 여행 경로는 우선 프랑스로 가서 상류사회의 예법과 언어를 익히고, 이탈리아에서 고대 유적지와 르네상스 고전예술을 공부하고 독일·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으로 돌아오는 게 일반적인 코스였다.

천재음악가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1763~66년 독일·파리·영국 등으로 그랜드 투어를, 요한 볼프강 괴테도 1786년부터 3년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고 전해진다.

막대한 비용 때문에 부유층에 국한됐던 그랜드 투어는 1840년대 철도 이용이 대중화되면서 점차 사라졌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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