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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칼럼] 자리를 위한 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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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연세대 정치외교학 4학년

학기 초면 앞자리를 잡으려는 경쟁이 치열해진다. 성적은 자리 순이 아닌데 더 잘 듣고 더 잘 보고, 혹은 더 잘 보이기 위한 반짝 열정이다. 이번 학기만 해도 거의 모든 교수님이 출석체크의 번거로움도 덜고 시력이 좋지 않은 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해 ‘지정좌석제’를 시행하겠다고 하셨다. 눈이 나쁜 학생들이 e메일을 보내면 먼저 앞자리에 앉게끔 배려해 주겠다는 얘기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학생이 눈이 나쁘다는 거짓 e메일을 보냈다. 친구들이 이러는 걸 보고 들은 학생들도 덩달아 거짓 e메일을 보냈다. 정말 눈이 나쁜 학생들만 울상이 됐다. 다수의 이기주의와 비양심 때문에 소수의 약자가 피해자가 됐다. 그뿐만 아니라 e메일을 보내지 않은 정직한 학생들까지 가장 뒷자리로 밀려나게 됐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문 지면을 장식하는 대기업 총수, 고관 대작들부터 한사코 현금영수증은 못 끊어 준다는 지하상가 상인 아주머니까지 우리 사회 전반에 이런 ‘꼼수’가 허다하다. 소위 ‘밥그릇’을 두고 벌어지는 ‘꼼수’는 더욱 가관이다. 사회적 약자는커녕 사회적 ‘포식자’에 가까운 자신의 지위나, 심지어는 부모의 지위를 앞세워 한자리 차지하고자 너도 나도 달려든다. 이들이 꼼수를 통해 공직이나 공직에 준하는 자리를 차지한다면 보호받아야 할 약자의 자리는 점점 더 좁아지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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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박용석]


이러한 꼼수들은 사회 전반의 신뢰수준을 깎아먹는다. ‘내가 낸 세금이 약자를 돕고, 차후에 혜택으로 돌아온다’는 믿음도 부실해질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소득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각종 보험료나 생계비 지원, 심지어는 국가 장학금까지 불공정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당연히 납세·증세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상당하다. 정치인들은 굳이 원성을 사려 하지 않고, 세금이 걷히지 않으니 복지 예산은 늘 부족하고, 빚더미 위에서 아슬아슬 줄타기를 한다. 조세제도·복지 시스템이 신뢰를 잃고 붕괴하거나 정치인들의 표심 잡는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 ‘진짜’ 약자들은 더욱 뒷자리로 밀려나 울상을 짓는 수밖에 없다.

e메일이 폭주하자 교수님은 어쩔 수 없이 임의배정을 하겠다고 하셨다. 눈 나쁜 친구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일반 학생들이 별것 아니라고 여기며 부린 꼼수가 눈 나쁜 학생들의 기본적인 수업권을 앗아간 셈이 됐다. 우리가 분노하는 큰 꼼수들도 어쩌면 자리배정 같은 별것 아닌 데서 싹트는 게 아닐까.

김현지 연세대 정치외교학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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