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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가나와 한국의 본질적인 차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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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영
논설위원

해묵은 질문이 최근 다시 제기됐다. 질문은 ‘1960년대 초반 같은 후진국이었던 한국·가나·필리핀·파키스탄이 오늘날 전혀 다른 모습인 이유는 무엇인가’다. 여러 가지 답이 가능하다. 스탠퍼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받은 가나 사람에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차이는 영국과 일본의 식민지배의 차이다. 영국은 가나를 착취했고 일본은 한국에 잘해줬다. 이러한 차이가 오늘날 가나와 한국의 차이를 낳은 것이다.” 기자는 이 말에 극렬히 반대한다.

가나·한국의 차이는 수십 년 동안 미국·유럽 학계의 숙제
‘박정희 정신’이 차이일 수도 있지만 다른 요인들도 따져야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재러드 다이아몬드 교수의 『나와 세계』가 이 문제를 부분적으로 다룬다. 또 같은 질문을 ‘문명충돌론’으로 유명한 새뮤얼 헌팅턴(1927~2008) 하버드대 교수가 물은 바 있다. 이번에 다이아몬드 교수는 가나와 한국의 차이가 농업·문자·금속도구·중앙정부에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고 1992년 당시 빌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선거 전략가가 핵심을 요약한 것처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인가. “가나·한국의 차이는 박정희야, 이 바보야”라고 외치고 싶은 충동은 항상 강력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움직일 수 없는 ‘한국 산업화의 아버지’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에게 산업 근대화 공의 100%를 부여하기는 좀 어렵다. 간단한 답은 항상 현실을 왜곡한다. 다른 중요한 요인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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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예컨대 이미 알려진 것으로 이런 것들이 있다. 첫째, 한국은 일인당 60~70 달러 국민소득으로 시작한 게 아니다. 구한말에도 일인당 소득이 600~700 달러 정도 됐다. 1인당 소득이 일제강점기 때 좀 올랐다가 6·25라는 참화를 겪으며 좀 낮아졌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영도하에 60 달러에서 1000달러로 기적적인 성장을 했다’는 인식은 일종의 ‘착시 현상’이다.

둘째, 민족국가 요인이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1446년)에 보면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가 서로 맞지 아니할세···”라고 돼 있다. ‘조선 말이 명나라 말과 다르다’가 아니라 아주 오래전부터, 늦어도 15세기부터 ‘우리나라 말은 중국 말과 다르다’ ‘우리나라는 중국과 다르다’는 인식이 있었다.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은 기원전 2333년 건국됐다. 건국 연도에 논란이 있기는 하지만 최소한 고조선이 망한 기원전 108년 이전에 우리나라에는 국가가 있었다.

또 676년 신라에 의한 제1차 삼국통일, 936년 고려에 의한 제2차 삼국통일 이래 우리나라는 대체적으로 ‘단일’ 민족국가를 유지해왔다. 또 그 이전인 5세기에 이미 “차라리 계림의 개나 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되지 않겠으며, 차라리 계림의 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이나 녹을 먹지 않겠다”고 한 신라의 충신 박제상(363~418년께)이 있었다. 민족국가는 서구 역사의 산물로 한국을 비롯해 세계의 나머지는 민족국가 관념을 수입했을 뿐이라는 관념에는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다이아몬드 교수의 지적처럼 우리나라에는 1957년 독립을 선언한 가나와 달리 중앙정부가 아주 일찍 등장했다. 아무리 늦게 잡아도 936년부터 있었다. 신라·고려 시대부터 과거제를 도입해 능력주의(meritocracy)에 따라 객관적으로 관료를 뽑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우리나라에도 부족 연맹체 시기가 있었지만 옛날에 ‘청산’했다. 상당수 아프리카 국가는 아직도 사실상 부족 연맹체를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 역사에는 건너뛰기가 없다.

셋째, 문명권 요인이 있다. 같은 유교 문화권에 포함됐던 국가들은 시장경제를 하고 미국과 어느 정도 관계가 정상화된 다음에는 모두 다 고속 성장을 경험했다. 일본에 이어 소위 동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 경제(four tiger economies)’인 한국·홍콩·대만·싱가포르는 모두 급성장했다. 좀 늦게 시작한 중국·베트남도 성장이 빠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만 경제적으로 뒤처졌다면 아주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같은 이유로 만약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미국과 관계 정상화를 하고, 중국·베트남처럼 시장경제를 도입한다면 고속 경제성장을 이룰 가능성이 크다.

21세기 우리 시대는 본질을 묻는다. 인공지능(AI)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미국의 트럼프·샌더스 현상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묻는다.

러시아 표트르 대제(1672~1725)는 뒤처진 러시아를 근대화시키기 위해 일단 무조건 서구를 따라 했다. “나는 배움이 필요한 학생이다”며 서부 유럽을 평민 복장으로 방문했다. 무엇이 근대화의 본질·비본질인지 알 수 없기에 따지지 않고 일단 따라 했다. 러시아 식탁에 나이프·포크·스푼·이쑤시개를 도입했다. 또 러시아 여성들이 서구 여성처럼 남자들과 대화하고 춤추고 카드 게임을 하게 했다. 연애결혼을 권장했다. 베일을 벗어 던지게 했다.

우리나라 또한 상투를 자르지 않는 근대화, 초가집을 없애지 않는 근대화가 가능했을 것이다. 예컨대 한 외국 신부님의 주장처럼 초가집 안은 호텔처럼 꾸미고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본질과 비본질을 따지기에는 나라의 상황이 시급했다.

21세기는 우리나라가 실리콘밸리처럼 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는다. 또 오늘 계승해야 할 ‘박정희 정신’의 본질에 대해서도 묻는다. 우선 정치인들과 학자들이 이 질문에 대답해야 한다. 이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면, 22세기 학자들은 융기하던 대한민국이 추락한 이유를 궁금해할 것이다.

김환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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