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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아이] 구마모토 지진과 재해 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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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헌
도쿄 특파원

지난달 17일 밤 일본 구마모토(熊本)시 호텔 8층 꼭대기 방. “긴급 지진 속보가 떴습니다. 강한 흔들림에 경계가 필요합니다.” 피해 현장을 취재한 뒤 잠시 몸을 눕히려던 순간 NHK 아나운서의 다급한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전날 규모 7.3의 2차 강진을 직접 겪었고 하루 100여 차례 여진을 견디던 때지만 강한 지진파가 감지됐다는 뉴스는 새삼 두려움을 몰고 왔다.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달리듯 내려갔다. 도로변에서 한숨을 돌리는 사이 규모 3~4의 지진이 또 이어졌다.

스스로 몸을 피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느낀 건 다음 날이었다. 두 차례 강진으로 큰 피해를 입은 마시키마치(益城町)의 소학교. 3년 전부터 파킨슨병을 앓아 휠체어에 의존하는 오카다 구니오(岡田久仁男·86) 할아버지는 2층 교실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틀 전 소학교에 도착했는데 1층은 자리가 없었다. 뜬눈으로 밤을 새운 뒤 욕창이 악화됐다. 엘리베이터가 없어 55세 둘째 아들이 그를 업고 계단을 오르내렸다. 뒤늦게 도착한 다른 장애인과 고령자들도 선착순 원칙에 따라 2층으로 밀렸다.

30대 시각장애인 부부는 규모 6.5의 1차 지진으로 집이 부서지자 주차장에 담요를 깔고 이틀을 버텼다. 처음엔 이웃들이 식사를 챙겨줬지만 2차 강진 이후 비까지 내리자 모두 떠났다. 장애인 친구들도 어디로 갈지 몰라 우왕좌왕했다. 대피소를 수소문한 끝에 간신히 몸을 피했다. 구호물품을 얻기 위해 줄을 선 50대 청각장애인 남성은 “일반인들 틈에 섞여 식수와 먹을 것을 받으려 해도 안내 방송을 들을 수 없어 어려움이 많다”고 하소연했다.

장애인과 노인, 임산부 등 자력으로 몸을 피할 수 없는 재해 약자들이 지진 피해 현장에서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뒤 일본 정부는 2013년 재해대책기본법을 개정했다. 자치단체가 재해 약자를 사전에 파악해 명단을 작성하고 누가 어떻게 도울지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도록 했다. 간호사와 복지사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복지 피난소 지정도 의무화했다. 2014년 10월 내각부 조사에 따르면 전국 791개 자치단체가 병원·노인홈·복지센터 등 7647개 시설과 협정을 맺었다. 구마모토시도 17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176개 시설을 복지 피난소로 지정했다.

하지만 매뉴얼은 실제 지진 현장에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재해와 재난 관리 강국인데도 예상치 못한 2차 강진으로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일본 공무원들은 허둥댔다. 초기 열흘간 구마모토시 복지 피난소의 입소자는 104명에 그쳤다. 전국 80세 이상 노인이 10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재해 약자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국민안전처도 지난 1월 재해구호법을 개정했다. 구호 사각지대 해소와 인프라 구축이 골자다. 재해 약자를 위해 법과 매뉴얼은 잘 만들어야 한다. 다만 필요할 때 작동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철저한 사전 준비와 점검이 더 중요하다는 걸 구마모토 지진은 보여준다.

이정헌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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