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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부자 도시가 쏘아 올린 S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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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하청근로자 1만여 명이 빠져 나간 울산 동구는 썰렁했다. 현지조사차 들른 필자에게 택시기사가 말했다. ‘이리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술집과 식당은 불황 직격탄을 맞고 신음 중이다. 5월 말까지 정규직 3000명, 하청근로자 수천 명이 추가로 짐을 쌀 예정이고, 임원 60명도 직장을 떠난다. 하숙집과 원룸업자는 파산 직전에 몰렸다. 인력을 조달하는 협력업체 사장 S씨는 밀린 임금 때문에 자살했다. 집으로 돌아간 근로자들도 자살충동을 안고 거리를 헤맨다. 올해 말까지 약 2만 명 실업자가 쏟아져 나올 울산과 거제, 한국 최고의 부자 도시에서 쏘아 올린 구조 신호탄을 어찌 해야 할까. 요즘 정권을 달구는 구조조정의 고민이다.

연봉 1억원 고소득자 1만 명이 운집한 울산 동구는 서울 강남이 부럽지 않았다. 최고급 고층아파트에, 회사가 지은 보육원에서 대학까지 교육시설은 물론이고, 백화점, 문화센터, 주부대학 등 없는 게 없다. 인조잔디가 깔린 고즈넉한 축구장 7개와 체육시설도 갖췄다. 20년 호황의 돈잔치는 끝났다. 예전 70척까지 올렸던 선박 수주량은 올 4월까지 고작 2척, 풍요한 자율도시 울산 동구와 돈이 넘쳐 나던 거제, 아니 한국 전체가 수주 절벽에 몰렸다.

씁쓸히 돌아서는 필자에게 연안에 떠 있는 우주발사대 같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선주가 인도를 거부한 문제의 해양시추선이었다. 유가가 70달러 선으로 회복되지 않으면 고철덩어리가 될 해양시추선을 어쨌든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들어야 한다. 대당 5000억원짜리, 조선 3사 합쳐 총 50대에 달하는 해양시추선은 만약 인도를 거부당하면 거제와 울산 앞바다에 하릴없이 진열된다. 혹시 그놈들이 울산 연안에서 해저 깊은 곳 기름 냄새를 맡을지 모른다.

구조조정을 유보한 대가는 쓰렸다. 2000년대 초 선박시장이 가라앉는 것을 대비해 글로벌 기업인 모빌, 엑손, 셸은 일찌감치 정리해고와 기업 통폐합을 서둘렀다. 일본은 친환경선박으로 진로를 바꿨고, 중국은 2700여 개 선사를 51개로 통폐합했다. 한국의 조선 3사는 불황타개책으로 되레 공격적 경영에 나섰다. 해양플랜트! 한국 업체가 여기에 뛰어들었다. 설계와 핵심기술을 외국에서 사오면 된다는 계산이 섰던 거다. 한국 업체 간 출혈경쟁이 계약금액을 막무가내로 낮췄고, 여기에 선박 수주량이 바닥을 쳤다. 조선 3사가 낸 적자는 줄잡아 10조원,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수조원이 물렸다. 돈잔치가 빚잔치로 바뀐 저간의 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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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위기는 우선 경영진의 책임이다. 적자폭이 가장 큰 대우조선해양은 낙하산 인사가 부실경영을 악화시켰다. 시끄러운 일은 덮었고, 부실은 은폐됐다. 정리해고 반대투쟁을 불사하는 노조가 정당성을 얻는 이유다. 그렇다고 노조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경영과 노조의 ‘부도덕한 담합구조’가 깨지지 않고는 요즘 논의되는 정부발(發) 구조조정은 헛일이다. 사회정의를 역주행한다. 연봉 1억원 고소득자를 구출하려고 일반 서민이 돈을 내는 꼴이다.

작업현장의 ‘도덕적 해이’는 극에 달한다. 수백 개로 쪼개진 분절구조에서 정규직은 하청근로자를 부리는 감독이고, 쉽고 안전한 작업을 골라 맡는다. 직영정규직과 하청근로자 간 기술격차는 없지만 직영은 각 부서의 군주, 급여도 연 3000만~4000만원 더 받는다. 협력업체 사장은 직영감독의 눈치를 봐야 계약을 연장할 수 있다. ‘직영사원의 제국(empire)’이 따로 없다. 예전에 직영으로 가는 딱지가 3000만원 선에서 거래됐다. 직영이 누리는 복지혜택은 상상을 초월한다. 자녀학자금은 물론 부모 의료비, 명절과 휴가상품권, 백화점 할인은 상식이다. 하청근로자는 꼽사리 인생이다.

이런 최고의 기업복지는 노조의 호전성을 무마하고 직무헌신도와 작업윤리를 높이려는 목적이었다. 무분규 20년의 결실을 거뒀지만 작업윤리는 제자리였다. 고소득 풍요에 안주하면서 불황 대비는 안중에 없었다. 수백 개로 분절된 부서는 실제로는 다른 기업이었다. 정규직 간에도 일감을 결코 나누지 않는 ‘여왕벌 없는 벌집’ 구조다. 옆 부서가 놀아도 다른 집 일, 해고는 하청근로자의 운명이다. 올해 울산 노조는 임금복지 인상안을 협상의제로 올렸고, 거제 지역 노조는 고용위기지역 지정을 공식 요청했다.

잘나갈 땐 뭐하고, 이제 와 볼멘소리인가? 독일 금속노조처럼 조업단축, 노동시간 계좌제, 자체 실업기금 등을 미리 준비했다면 돌아서는 하청근로자를 구제할 수도 있는데 왜 서민에게 손을 내미는가? 채권을 사줄 한국은행 돈은 혈세다. 목포 대불산단과 남해안 지역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월 300만원으로 살았다. 이제 가동이 멈췄다. 빚잔치는 개인 권리도 차압한다. 돈잔치했던 원청 3사 직영들에게 일감 독식과 고소득을 보장해주는 빚잔치는 정의로운가? 부잣집에서 쏘아 올린 SOS, 붕괴현장의 착잡한 현실이 이렇다. 노조가 밀어붙인 부도덕한 특권을 스스로 깨는 것이 먼저다.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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