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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 "여·야·정 10년 합의했으면"


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

아직 선거 때의 기운이 느껴졌다. 얼굴은 까맣게 그을었지만 피곤한 기색도 없다. 목소리는 유세 때 톤으로 높다. 4·13 총선이 보름이나 지난 28일. 국민의당 김성식(58) 국회의원 당선자는 오전 10시가 조금 넘어 당사에 들어섰다. 이날 아침에도 지역구인 서울 관악갑에서 당선인사를 하느라 인터뷰 약속을 그 뒤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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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식 국민의당 정책위의장은 28일 서울 마포 당사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능동적으로 국정기조를 바꾸고, 각 정당과의 관계개선에 나서면 지난 3년보다 남은 임기 1년 10개월 동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며 “정당들은 변화할 자세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 김상선 기자]

 
아직도 당선인사를 하나요.
 “월·수·금은 최고위원 회의 때문에 못하고, 충분히 시간을 낼 수 없어 짬짬이 시간을 내서 합니다. 지하철·시장통·출퇴근길… 이 정도는 해야 하는데….”

“무서운 민심이 선거 혁명의 드라마로 나타난 거죠. 정치권이나 언론은 양당구도와 진영논리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국민은 한편으로는 현 정권의 실정에 대해 회초리를 들면서 다른 편으론 양당정치 틀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투표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지난 26일 편집·보도국장 간담회는 “연찬회를 하느라 제대로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대통령이 능동적으로 국정 기조라고 할까, 각 정당과의 관계에 나선다면 3년 동안 뜻대로 안 됐다고 한 것보다 1년10개월 동안 더 많이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정당들은 변화할 자세들이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 정당들이 ‘획일적인 정당’이거나 ‘중구난방 정당’이거나 둘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당론 표결 같은 걸 줄여야 한다는 말인가요.
“맞습니다. 제대로 된 국회 운영을 하려면 어지간한 상황은 상임위에 맡겨야 한다는 게 제 지론입니다. 청와대가 나서 이거는 통과시켜야 할 법안, 이건 가로막아야 할 법안, 이렇게 해 버리면 가만 놔 두면 조정할 수 있는 법안도 정쟁 법안이 돼 꼼짝도 못하게 되는 걸 많이 봤거든요.”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개인적인 의견입니다만 저는 적어도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여·야·정 10년 합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합의가 안 된다고 핑계 대고 폭탄 돌리는 게 아니라 정치권이 주도해 합의하는 거죠. 하나는 복지와 재정 문제에 대한 10년 로드맵입니다. 복지를 무엇을 우선순위로 어느 정도 확대할 것인가, 돈이 얼마나 들 것인가 합의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지 이슈 하나 정도 흔들고 하지 말고…. 국민도 걱정을 덜게 되고 해마다 국회가 시끄럽게 싸우는 일도 줄 겁니다.”

그는 또 한 가지는 비정규직 문제라고 했다.

“대기업 정규직의 대우는 나름대로 권리 확장을 위한 노력의 산물이죠. 그렇지만 그렇게 되니까 기업주들이 사내 하도급을 늘린다든가 하청으로 해 버린다든가 비정규직을 뽑는다든가 해서 고용구조가 너무 엉망이 됐습니다. 비정규직을 완전히 없애자는 주장도 합리적이지 않고, 현재 시스템으로 그냥 가자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노사정 협의에 맡겨 놓는다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정치권에서 주도하자는 거네요.
“정치권도 표 되는 일만 할 것이 아니라 양보와 고통을 요구하는 일까지 협력해 국민의 공감을 얻는 정직한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게 새정치라고 생각해요.”

구조조정 이야기를 하자 그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러면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이야기를 꺼냈다.

“그때 국제적으로 통화정책을 썼고, 우리도 막 풀어놨어요. 2010년 들어서면서 거꾸로 이런 것들이 기업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한계기업을 연명하게 한다고 문제 제기가 됐어요. 지금 문제가 된 조선사도 그때 계속 지적됐지만 감독기관이나 산업은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폭탄을 6년 이상 돌려온 겁니다.”
 
정부는 양적완화 이야기를 하는데.
“양적완화라는 비통상적 수단을 써야 될 정도라면 이런 식의 무책임한 논의를 하게 하면 안 되고 정부와 감독 당국·채권기관들이 의견을 다 모아 부실기업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의 위기이고, 그동안 어떤 정책적 실패가 있었고, 그래서 통상적 수단이 아닌 비통상적 수단이 필요하다고 하는 정부의 발표와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발표를)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는 경제 성장 정책의 틀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가 경제 살리기, 경제 살리기 하잖아요. 법 하나 갖고 이 법만 통과되면 서민경제가 좋아진다거나 경제가 산다거나 하는 정직하지 못한 정책은 이제 그만둘 때가 됐습니다.”
 
영수회담에서 무얼 기대할 수 있나요.
“민심을 겸허히 읽고 성찰하면서 영수회담을 하느냐가 문제죠. 청와대는 국정 운영 기조를 검토해야 합니다. 야권도 과반수잖아요. 반사이익만 추구하면 안 됩니다. 절반의 책임을 지는 정당이 돼야죠.”

그는 “양당정치가 국민의 다양성을 국회에 대변하는 데 실패해 왔다”고 말했다. 양극단세력, 지역기반이 확실한 세력만 과다 대표 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바람에 “정당의 자기 혁신 능력마저 빼앗아 버렸다”고 평가했다.

“산업화·민주화가 아니라 저성장, 양극화, 고용의 이중구조, 저출산, 고령화, 이런 게 요즘 어젠다 아닙니까. 이게 어떻게 진영논리로 갈라질 사안입니까. 복합적인 사안이고 상호 양보를 통해 조정해야만 해법을 낼 수 있는 사안들이지.”
 
 대표성 문제라면 소선거구제도 고쳐야 하나요.
“저는 누구보다도 선거제도 개혁, 결선투표제 도입이 절실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지금은 국회 운영이 새로워졌다는 걸 보여 주고 국민의 공감을 일으키는 게 우선입니다. 다른 정당들도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개헌 문제도 그런가요.
 “네 그렇습니다. 개헌은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으면 잘 안 되잖아요.”
 대통령선거 때는 야당이 합치라는 요구가 많지 않나요.
“정치권에서 기득권을 가진 쪽이나 일부 언론은 그렇게 주장하는데 국민은 양당구도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여당은 여당대로, 야당은 야당대로 민심에 따라 변화해 가는 일종의 혁신의 합창이 필요합니다.”

그는 1958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한국노총 전국화학노련 정책기획부장으로 들어갔다. 91년 민중당 후보로 서울 동작구 시의원 선거에, 96년 총선 때 통합민주당 후보로 서울 동대문을에 출마해 떨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고 제정구 의원 등이 있던 당이다.
 
 왜 제도권 정치를 시작했죠.
“87년 6월 항쟁을 감옥 안에서 맞이했습니다. 저는 저 같은 사람이 감옥에 있는 한은 민주화가 안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넥타이 부대에 의해, 김밥 팔던 노점 할머니에 의해 6월 민주항쟁이 벌어지고 독재정권이 직선제 양보를 한 거 아니에요. 나 스스로 좁은 사고의 틀에 갇힌 것 아닌가, 감옥 안에서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정당의 틀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자고 생각이 바뀐 거죠.”

97년 대선을 앞두고 그는 고 제정구 의원 등 통추 잔류파와 함께 한나라당에 합류했다. 2004년 손학규 경기도지사 시절 정무부지사를 했다. 2008년 18대 총선 때 서울 관악갑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2년 18대 대선 때 안철수 후보의 진심캠프에 공동선대본부장으로 합류했다. 27일 당선자 연찬회에서 정책위의장으로 선출됐다.
대선 때 안철수 대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가 모두 나서면 어느 쪽인가요.
 “제가 뭐라고 한들 손 전 대표께서 정계 복귀 할 일도 없는 거고…. 어찌 됐든 미래의 대권 주자가 되는 분들은 정치를 변화시켜 나가는 데 뭔가 노력하고 성과를 보여 달라는 국민의 요구에 부응해야만 이후가 가능한 거죠. 이것은 비단 안 대표나 손 전 대표뿐 아니라 여야에서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모든 분이….”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포함해서?
 “뭐 그냥 앉아서 때 되면 나온다, 이런 생각해서는 어렵죠.”
 
홀어머니가 옷장수·만둣국집 하며 키워, 부인은 기능공 출신
“제가 운동권에 뛰어든 건 어머니의 가르침 때문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김성식 당선인은 어머니가 어릴 때부터 개인적인 이해보다 공적으로 정의롭게 살라고 가르쳤다고 한다. “대학 다닐 때 왜 갈등이 없었겠어요. 친구들이 다 잡혀가니 어머니께서 ‘졸업은 해야지’라고 하셨어요. 그때 저는 ‘어머니가 정의롭게 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하고 말해 혼도 났습니다.”

그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 면회 온 어머니는 딱 세 마디 했다고 한다. “옳은 일 하려고 하는 그 마음 안다. 감옥 있다고 게으름 피우지 말고 운동하고, 책 봐라.” 이번에 출마할 때도 고민했지만 어머니가 “두려워서 피하지 말아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그는 피란민 아들이다. 아버지는 평안도 출신으로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내려왔다. 아버지는 트럭 운전을 했다. 어릴 때 그는 그게 아버지 차인 줄 알았는데 남의 차였다고 한다. 아버지는 고2 때 돌아가셨다.

생계를 떠맡은 어머니는 시장 좌판 옷장수, 만둣국 집 등을 하며 억척스럽게 2남1녀를 키웠다. 안면도 없는 타월 회사를 찾아가 “세 남매를 키워야 하니 3개월만 물건을 대달라”고 간청하기도 했다.

고1 때 만난 부인과 1984년 결혼했다. 부인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전자회사 기능공으로 일했다.


김진국 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정리=안효성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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