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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 체제는 몸에 맞지 않는 옷, 이젠 바꿔 입자”


대통령 5년 단임제와 소선거구제를 뼈대로 하는 1987년 체제를 대체할 새로운 정치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20대 총선 당선자들 사이에서도 강한 것으로 확인됐다. 중앙SUNDAY가 실시한 당선자 설문조사에서다.


응답자의 82%인 172명이 30년을 맞이한 87년 체제가 이제 수명을 다했다고 진단했다. ‘국민의 중지를 모아~’ 등의 조건을 단 조건부 찬성 등을 합치면 이 숫자는 더 늘어난다. 87년 체제는 당시 민주화 투쟁을 통해 탄생한, 국민투표로 5년 단임 대통령을 선출하고 소선거구·단순다수제 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을 뽑는 제6공화국 헌정체제를 말한다.


응답한 당선자 중엔 87년 체제를 ‘더 이상 몸에 맞지 않는 옷’으로 표현한 이가 많았다. 127명은 “개헌과 선거제도를 모두 고쳐야 한다”고 했고 개헌만 하자는 주장은 46명, 선거제도 개편만 하자는 주장은 11명이었다. 개헌을 주장한 이들 중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은 “87년과 비교할 수 없이 다원화되고 급변하는 사회에서 단 1%만 이겨도 승자가 모든 것을 지배하는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 1%라도 지는 쪽은 자기 의사를 반영할 길이 없어 오로지 상대가 잘못되도록 반대를 위한 반대만 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의당 송기석 당선자는 “단임제의 목적이 5년간 소신껏 국정을 이끌라는 것이었는데 대통령의 불통과 독단이 나라를 지배하는 결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당선자는 “제왕적 단임제 대통령은 평가를 받지 않아 공약 실천이나 직무 수행에서 검증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원칙적으로 개헌을 지지하지만 섣불리 해선 곤란하다는 신중론자도 꽤 있었다. 새누리당 정용기 의원은 “87년 체제가 국민의 의견을 제대로 못 담아내고 있어 개헌이 필요함엔 동의하지만 헌법 전반에 손을 대면 국론이 극단적으로 분열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안철수 대표의 최측근인 국민의당 이태규 당선자도 “정치인들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개헌하는 건 안 된다. 국민이 민주화 투쟁으로 87년 체제를 쟁취한 건데 국민적 공감대와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고 했다.


또 이와는 별도로 “현실적으로 개헌 논의가 이른 시일 내에 본격화될 수 있겠느냐”는 반응도 있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6일 언론사 편집·보도국장 간담회에서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을 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느냐”며 개헌론에 선을 그은 걸 언급하는 사람이 많았다. 최고권력자의 의지 없이 개헌 논의에 쉽게 불이 붙겠느냐는 것이다. 개헌 문제에 적극적인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개헌을 위해선 대통령의 의지가 필수적인데 박 대통령이 뜻이 없다. 각 당의 주요 대선주자도 자신들의 대선가도에 부담을 줄 수 있는 개헌 논의를 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치학자 출신인 국민의당 이상돈 당선자도 “권력자의 인위적 개헌이 아닌 정상적 개헌은 4·19와 6월항쟁 이후 이뤄졌다. 그 정도의 사회적인 모멘텀이 있지 않는 한 개헌은 쉽지 않다”고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반면 87년 체제가 여전히 유효하며 개헌이든 선거구제 개편이든 필요 없다는 주장은 21명이었다. 새누리당 유의동 의원은 “87년 체제는 권력구조와 선거제도로만 얘기할 수 없는 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다. 엄청난 국력을 소모하는 변화를 추진할 정도로 의미가 퇴색됐다고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빨리 개헌 논의” vs “경제 어려운데…”‘개헌 논의를 언제 시작해야 하느냐’는 질문엔 ‘20대 국회 개원 직후’(70명)와 ‘올 하반기’(15명), ‘내년 상반기’(10명) 등 “19대 대선 전에 논의를 시작하자”는 의견이 95명이었다. “대선 직후에 시작하자”(50명)는 의견보다 많았다. 야당(더민주 39명, 국민의당 6명)보다 상대적으로 적긴 했지만 새누리당 내에서도 “어차피 할 거면 빨리 하자”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며 20대 국회 개원 직후 논의를 시작하자는 당선자가 23명이나 됐다.


내년 대선에서 주요 후보들이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고 국민적 검증을 받자는 주장도 있었다. 국민의당 권은희 의원은 “개헌에 대해 후보들이 의견을 내놓고 당선된 이가 자신이 공약한 내용대로 개헌을 추진하는 게 가장 현실성이 높다”고 말했다. 반면 더민주 송영길 당선자는 “대선 국면에서 개헌론이 이슈가 되면 (논란이 커져) 정권 심판 이슈가 흐려질 수 있으니 정권 교체 후 논의해야 한다”고 다른 의견을 냈다.


개헌론을 당장 꺼내기 쉽지 않다는 이유로 ‘어려운 경제상황’을 거론하는 이가 특히 야당에서 많았다. 4·13 총선으로 덩치가 커진 야당이 ‘수권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이려는 것과 무관치 않은 듯했다. ‘김대중 청와대’의 부속실장을 지낸 더민주 김한정 당선자는 “‘경제 살리기’가 이번 총선의 주요 쟁점이었고 20대 국회 개원 후에도 논의가 이어질 것이다. 개헌 논의가 바로 시작되기 어렵다”고 했다. 더민주 김부겸·박정 당선자, 국민의당 김중로·송기석 당선자도 “경제 안정화가 우선”이라고 했다.


새 헌법 발효시점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했다. 김부겸 당선자는 “개헌 합의 1~2년 후 실행하는 게 가장 좋지만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이 남은 임기를 단축한다는 양보가 있어야 하는 점이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국민의당 장병완 의원도 “(2020년 다음 총선 때부터 적용한다면 2017년에 당선되는) 새 대통령이 임기를 포기할 의지를 가져야 하는데 쉽지 않은 문제”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이장우 의원은 “19대 대선 직후에 새 헌법을 제정하더라도 적용은 20대 대통령부터 해야 한다. 그래야 현재 권력과 차기 주자들이 개헌에 합의할 수 있다”고 했다. 반면 국민의당 박주선 의원은 “새 헌법으로 내년 대선을 치러야 한다”고 빠른 논의와 적용을 주장했다.


# “4년 중임제 하려면 대통령 권한 줄여야”개헌 시 바람직한 권력구조를 묻는 질문엔 ‘4년 중임 대통령제’가 중복응답 포함 109명으로 다른 대안들을 압도했다. “5년이란 기간이 너무 짧기 때문에 대통령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며, 이는 책임정치의 명분과도 맞지 않는다”는 주장들이었다. 국민의당 김광수 당선자는 “중임제로 하면 재선을 위해 대통령이 국회·국민과 소통하고 장관들에게도 권한을 넘겨주는 등 현행 5년 단임제의 제왕적 대통령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될 것”이라고 했다.


실권을 가진 대통령을 직접 내 손으로 뽑기를 원하는 우리 국민의 정서 때문에 ‘의원내각제’나 ‘이원집정부제’보다 4년 중임제가 더 선호될 수밖에 없다는 기류였다. 이와 관련, 더민주 변재일 의원은 “중임제로 바뀌더라도 지금과 같이 대통령이 100%를 갖는 제도는 안 된다. 대통령의 권한을 먼저 약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야당에선 “가장 안 좋은 제도가 4년 중임제다. (현재의) 5년도 긴데 한번 정권을 잡은 사람이 또 한다고 해 보라. 반대편에선 열 받아서 죽어 버리는 국민도 나올 것”(장병완)이라는 4년 중임제 절대 반대론자도 있었다.


42명은 이원집정부제를 선호했다. 정의당 김종대 당선자는 “대통령이 안보나 국가적 문제에 집중하고 총리가 내치를 맡도록 해 권력을 분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원내각제를 선호한 이는 28명이었다. 무소속 이철규 당선자는 “국민의 의식 수준이 높아져 내각제가 장기집권이나 정치불안으로 이어질 확률이 낮아졌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부딪치는 사회에서 여러 종류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각 정파 간 협의를 통해 정책을 결정하는 내각제가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내각제를 꼽지 않은 이들 중에서도 상당수는 내각제를 내심 이상적 모델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원집정부제를 선택한 이석현 국회부의장은 “근본적으로는 내각제를 선호하는데 우리 국민의 인식이나 내각제에 대한 지지가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정병국 의원은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이 강한 것이 내각제 이행의 걸림돌”이라며 “국회의원 임기를 절반으로 줄여 2년마다 평가받도록 하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무소속으로 당선된 주호영 의원은 6년 단임 대통령제를 거론했다. 그는 “대통령마다 취임 후엔 누더기가 되는 현실에서 4년 중임제로 재선되는 대통령이 나올 가능성이 매우 작다. 레임덕을 감안하면 3년짜리 대통령이 양산될 것이다. 이원집정부제도 실패한 외국 사례가 많다고 한다. 의원내각제를 할 정도로 한국에 의회주의가 정착되진 못했다”고 분석하며 “그래서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의 헌법학자들이 제안한 것이 6년 단임 대통령제였다”고 소개했다.


권력구조 개편 외 새 헌법에 담아야 할 내용에 대해선 국민 기본권 신장을 꼽은 이가 가장 많았다. “사이버 사회에서 침해받을 수 있는 프라이버시 보호”(국민의당 김관영), “노동·복지권 확장”(새누리당 김성태), “다문화가정의 인권 보호”(새누리당 김영우),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새누리당 강효상) 등 내용도 다양했다.


더민주 김진표 당선자는 “백년대계인 교육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지 않도록 독립기관인 ‘범국민미래교육위원회’ 설립을 명기하자”고 했다. 이석현 부의장은 “한국이 외국의 난민이나 재난사태에 있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진다는 내용을 헌법에 싣자”고 제안했다. 더민주 오영훈 당선자는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을 폐지하자”는, 경찰 출신인 더민주 표창원 당선자는 “검사의 독점적 영장청구권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 “선거구 개편으로 지역주의 타파 제도화”지역 갈등을 심화시켰다는 지적을 받아 온 소선거구제를 개혁하자는 주장이다. 중·대선거구제와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꼽은 이들이 각각 81명으로 엇비슷했다.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국회의원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자린데 소선거구제 아래에선 지역구 관리에 대부분 역량을 할애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로 중·대선거구제 도입을 주장했다. 이상돈 당선자는 “도농 간 선거구 크기 차가 갈수록 커짐에 따라 농촌은 소선거구, 도시는 기존 선거구들을 합쳐 중·대선거구제로 운영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 주장이 여야에서 골고루 나온 데 비해 독일식 제도 도입은 야당 당선자들이 일방적으로 선호했다(새누리당 6, 더민주 61, 국민의당 9, 정의당 5명).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을 쉽게 하는 이 제도에 대해 더민주 이철희 당선자는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통해 민의(정당 지지율)에 비례하는 입법부 구성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특별취재팀이철재 차장(팀장), 이충형·추인영 기자, 박유리·백윤미·심소희·이우연·조희형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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