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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습기 살균제 재앙 막을 기회 다섯 번이나 있었다

지난달 26일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한 옥시레킷벤키저의 신현우 전 대표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상민 기자





‘가습기 살균제 사망’ 늑장 대응 전말

239명(정부 접수 기준)이 목숨을 잃는 재앙을 낳은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미리 막거나 피해를 대폭 줄일 수 있었던 기회는 없었을까. 중앙SUNDAY의 취재 결과 적어도 다섯 차례는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2011년 11월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에서 ‘폐 손상’의 원인으로 가습기 살균제를 지목하기 훨씬 전부터 미리 파악된 살균제의 독성에 맞게 대처했다면 재앙을 막을 수 있었다는 얘기다. 아니면 사고 발생 후 원인을 신속하게 규명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피해가 커지진 않았을 것이다.



최초의 기회는 20년 전인 1996년 12월 ㈜유공(현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 원료인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의 제조신고서를 환경부에 제출했을 때였다. 당시 유공 측은 항균 카펫 등에 첨가제 용도로 제조하겠다고 신고했다. 제조신고서에 적힌 ‘사고 시 응급조치 사항’에는 ▶흡입 시 신선한 공기가 있는 곳으로 옮길 것 ▶눈 접촉 시 충분한 물로 씻을 것 ▶섭취 시 물로 입을 씻어내거나 충분한 물을 마셔 토해낼 것 ▶누출 시 양이 많으면 땅에 묻은 뒤 덤프트럭에 담아 폐기할 것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는 PHMG를 흡입하거나 삼키면 몸에 해로울 수 있다는 증거다.



하지만 환경부는 추가 독성 자료를 요구하지도 유독물로 지정하지도 않았다. 이에 대해 최근 국립환경과학원은 “PHMG는 분말 형태의 고분자화합물로서 반응성과 휘발성이 낮은 물질이고, 유해성 심사 신청 시 용도가 카펫을 제조할 때 첨가하는 항균제였기 때문에 카펫 제품을 사용하는 일반 소비자에게는 흡입될 우려가 낮아 흡입 독성실험을 요청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국립환경과학원은 2000년 5월 20일 PHMG-인산염을 ‘유독물질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물질’로 관련 고시집에 등재(물질번호 97-3-867)했다. 또 다른 가습기 원료 물질인 염화에톡시에틸구아니딘(PHG)도 2003년 유독물에 해당되지 않는 물질로 등록(물질번호 2003-3-2357)했다. 유럽연합(EU)에서는 98년 살생물제(Biocide) 관리 지침이 마련돼 2003년 시행에 들어가는 상황이었다. 우리 정부도 PHMG나 PHG 같은 살균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유독물로 지정할 수도 있었는데 기회를 놓친 셈이다.



두 번째 기회는 2001년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인 옥시가 걷어찼다. 최근 검찰 수사를 통해 조금씩 확인되고 있듯이 당시 옥시는 가습기 살균제 성분을 PHMG로 교체했지만 독성 테스트는 생략했다. 옥시는 95년 처음 개발한 가습기 살균제에 ‘프리벤톨 R80’이라는 원료 물질을 사용했고 당시에는 물질 개발자인 독일 측 전문가의 의견대로 흡입 독성 실험을 거쳤다. 하지만 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하면 부유 물질이 생성된다는 소비자 불만이 접수되자 살균제 성분을 PHMG로 바꿨다. 그러면서 흡입 독성 실험을 누락했다. 당시 흡입 독성 실험을 제대로 거쳤다면 재앙은 피할 수도 있었다는 얘기다.



세 번째 기회는 2003년 3월 SK케미칼 측에서 호주의 국가산업용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절차(NICNAS)를 진행했을 때였다. 당시 SK케미칼 측은 수출을 목적으로 PHMG를 ‘SKYBIO 1100’이라는 상품명으로 호주 NICNAS에 등록했다. 이때 SK케미칼 측은 한국독성연구소 독성 실험 결과와 자체 실험 결과를 호주 정부에 제출했다. 당사는 분말형태의 제품 수출을 위한 것이어서 가습기 살균제와 같이 흡입과 관련된 독성은 분석에서 제외됐다.



네 번째 기회는 학계에서 피해 사례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을 때였다. 2007년 소아 알레르기 호흡기학회지에는 ‘특발성 간질성 폐렴 15례의 임상적 고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이 발표됐다. 96년 7월부터 2007년 2월까지 15명의 원인 모를 폐렴 환자가 발생했는데 평균 나이가 5.1세였다는 내용이다. 이듬해인 2008년에도 대한소아과학회지에 논문이 발표됐다. 제목은 ‘2006년 초에 유행한 소아 급성 간질성 폐렴’이었다. 2006년 3~6월에 15명의 소아 환자 중 7명은 사망하고 8명은 생존했다는 내용이었다. 연구진은 “원인과 치료에 대한 전국 규모의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되고 의료인들의 인지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역학조사는 없었다.



다섯 번째 기회는 2009년에 있었다. 2009년 대한소아과학회지에는 ‘급성 간질성 폐렴의 전국적 현황 조사’라는 논문이 실렸다. 서울아산병원 등 서울 지역 3차 병원 5곳이 중심이 돼 전국 23개 병원에서 2008년 실시한 공동연구 결과였다. 총 78명의 사례 중 36명이 사망해 사망률이 49.4%에 이르렀다. 하지만 연구팀은 폐렴의 원인에 대해 확신할 수 없지만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결과적으로 2년의 시간을 더 보내야 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정부 차원의 역학조사는 2011년에야 비로소 시작됐다. 2011년 4월 서울아산병원의 의료진이 7명의 원인 미상 폐질환 환자 7명을 발견해 질병관리본부에 신고한 덕분이었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아닌 환경적 요인이 원인일 수 있다는 가정 아래 역학조사를 진행, 가습기 살균제를 원인으로 지목할 수 있었다.



환경보건시민센터 최예용(보건학 박사) 소장은 “2007~2009년 국내 의료진이 원인을 파악하려고 했지만 바이러스를 원인으로 추정했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역학조사에 나서지 않는 바람에 2~3년 더 피해자가 발생하는 아쉬움을 남겼다”고 말했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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