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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에서 ‘운명’을 듣고 싶다

프리츠 라이너가 시카고 심포니를 지휘한 베토벤 교향곡 5,7번 음반.



한 달 전 일이다. 어디서 알게 되었는지 초등학교에 다니는 큰 아이가 ‘스타워즈’를 보고 싶다고 졸라댔다. SF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아내가 흔쾌히 찬성할 것 같진 않았다. 영화의 폭력성 운운하면 피곤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WITH 樂] 베토벤 교향곡 5번

다행히 세 명의 남자가 적극 참여한 민주적인 투표결과를 아내는 수용했다. 지난주 다스 베이더가 탄생하는 과정을 그린 프리퀄 3부작을 모두 마치고, 내가 국민학교 시절 본 1977년작 ‘스타워즈4’를 보았다. 나는 2000년대 만들어진 시리즈보다 처음 만들어진 클래식 3부작을 더 좋아한다. 첫 인연이란 무서운 법이니까.



‘스타워즈’는 첫 장면부터 귀를 즐겁게 한다. 자막이 올라가면서 존 윌리엄스의 웅장한 테마 음악이 흐른다. 이 장면이 없는 스타워즈는 스타워즈가 아니다. 나는 이 부분에서 카운트다운을 앞둔 우주 조종사처럼 긴장한다. 소파에 안전벨트가 있다면 잠금장치를 한 번 더 확인했을지도 모른다. 온갖 장르가 뒤섞인 장대한 우주 서사극에 몸을 싣는 느낌 때문일까? 작곡가 존 윌리엄스는 곡의 아이디어를 바그너에게서 따왔다. 악극 ‘니벨룽겐의 반지’에서처럼 유도동기를 이용하여 등장인물과 분위기를 묘사했다. 한때 광고에서 패러디되기도 했던 다스 베이더의 테마 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스타워즈의 음악은 전 세계의 크고 작은 오케스트라들의 클래식이 되었다.



조지 루카스가 만든 원조 스타워즈에서 하이라이트는 X-윙 비행기의 전투 장면이다. 주인공 루크는 아주 좁은 통로를 지나 목표를 맞춰야 하는 불가능한 임무를 맡는다. 무척 좋아하는 장면이지만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 음악이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베토벤 교향곡 5번의 4악장을 넣자고 우겼을 것이다. 이 곡은 흔히 ‘운명’ 교향곡으로 불린다. 1악장 도입부의 ‘딴딴딴 따안’ 하는 유명한 동기 때문에 예정에 없던 이름을 달고 살 운명이었던 셈이다.



교향곡 5번은 가장 유명한 클래식 곡이어서 모두들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운명교향곡 아는 분 손들어보세요?” 했을 때와 “그 곡 끝까지 들어보신 분 손들어보세요?” 했을 때의 차이가 이 곡만큼 큰 음악도 없다. 나는 3악장과 4악장을 좋아한다. ‘운명’은 9번 ‘합창’ 교향곡처럼 마지막 악장을 향해 고뇌하고 춤추고 그리고 잠시 침묵하다가 마침내 환희에 도달하는 음악이다. 베토벤의 내러티브인 ‘고난에서 환희’가 이 두 곡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그러니 스타워즈의 짜릿한 승리에서 4악장의 작렬하는 트럼본의 환희와 베이스의 하강하는 설렘을 떠올리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다. 베토벤의 4악장은 고난을 뛰어 넘어 승리하는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곡의 넘볼 수 없는 명연은 카를로스 클라이버와 빈 필의 녹음이다. 그 외에도 뛰어난 연주들은 너무도 많다. 나는 오래된 녹음이지만 종종 프리츠 라이너와 시카고 심포니의 연주를 찾아 듣는다. 라이너의 지휘 자세는 괴상하다. 어디 담이라도 결린 사람처럼 어색해 보인다. 지휘봉은 또 어떤가? 조금만 늘이면 스타워즈 광선검으로 써도 될 만큼 길다. 그의 오른손은 박자를 세듯 위 아래 수직운동만 한다. 정말 재미없는 지휘자다. 그런 그가 탄력 있는 근육질의 시카고 심포니를 만들었다니. 나는 나중에 그의 옆 모습을 보고나서야 비밀을 알았다. 독수리의 얼굴이었다. 쏘아보는 눈빛 하나하나가 정확하게 단원들과 악기를 향하고 있었다. 대단한 카리스마였다. 눈빛으로 지휘하니 손은 그저 거들 뿐이다.



카를로스 클라이버의 연주와 비교하자면, 전체적인 유려함과 디테일에 대한 세공미는 클라이버와 빈필이 조금 나아 보인다. 하지만 3악장 금관과 어우러지는 더블베이스의 깊은 울림과 둔중한 존재감은 라이너와 시카고 심포니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게 만든다. 다른 몇몇 연주를 들어보았지만 더블베이스의 발놀림이 이처럼 확실하면서도 당당한 연주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모든 저역 파트의 악기들이 깊은 심연에서 돌아 나온다. 그 위에서 목관을 비롯한 다른 악기들이 자리를 잡으니 대조의 힘이 발생한다. 이어서 할 말을 남겨둔 것 같은 경과부가 등장하는데 이어지는 4악장의 강력한 한방을 위해 잠시 호흡을 가다듬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4악장. 승리와 환희의 금관 총주가 시작된다. 조금씩 하강하는 현악기들은 목표를 향해 고도를 낮추는 비행기들 같다. 라이너와 시카고 심포니는 이를 악물게 할 만큼 시원하게 쏟아 붓는다. 통쾌하다.



이제 5월이다. 아이들과 스타워즈의 남은 작품들을 다보고 나면 이 봄도 끝날 듯하다.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 아이들에게 포스가 함께하시길…. 아무리 생각해 봐도 스타워즈에서는 베토벤을 써야만 했다. 그래야만 했다. ●



 



 



글 엄상준 KNN방송 PD 90 emper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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