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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작곡가의 운명


같은 대학교 출신의 친한 작곡과 후배 한 명이 있다. 우연한 기회에 그의 뛰어난 편곡 능력을 알게 된 뒤 그에게 다양한 편곡을 부탁해 왔다. 클래식 음악에서의 편곡은 대중음악의 편곡과는 그 성격이 조금 다르다. 원곡의 모양새는 그대로 두되 오케스트라를 위해 쓰인 원곡을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하도록 만든다든가, 피아노 한 대로 연주하도록 쓰인 원곡을 바이올린과 피아노가 나눠 연주하게 재배치한다든가, 그저 악기 편성을 바꾸는 다소 수동적인 작업에 머무를 때가 많다. 그런 작업에서마저 천부적인 감각을 자랑하던 그가 어느 날 본인이 작곡한 신곡을 내게 소개했다. 아니나 다를까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고 내가 연주할테니 당장 무대에 올려보자고 제안을 했다.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리는 값으로 너에게 얼마를 주면 돼?”


“얼마요? 음… 만약에 출판된 악보라면 악보 값을 받으면 되는 건데 아직 출판이 안 돼서 그럴 필요가 없고요. 또 위촉 곡은 아니니까 따로 작곡료를 받을 이유도 없어요. 게다가 제가 직접 연주를 하는 것도 아니니 연주료를 받을 것도 아닌데… 글쎄요?”


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우리가 모차르트나 베토벤을 연주할 때는, 그 어떤 별도의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는다. 그 악보들이야 제1쇄가 찍힌 것이 이미 200년 전이니 저작권의 만료니 소멸이니를 따질 필요가 없으니까. 저작권법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지만, 통상적으로 출판된 지 100년 정도 지난 작품은 저작권에서 자유로워진다고 알고 있다. 게다가 요즘에는 인터넷 곳곳을 뒤지면 대부분의 악보를 손쉽게 찾을 수 있다. 무조건 돈을 주고 구입해야만 했던 ‘악보’라는 가치의 절대성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어든 것 또한 사실이다.


모차르트가 대박을 쳤던 분야는 돈을 받고 작품을 위촉받는 일이었다. 이 곡 써달라,저 곡 써달라 부탁하던 사람들이 끊이지 않던 그의 작품 ‘이도메네오’ ‘후궁으로부터의 도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는 모두 누군가가 그에게 의뢰했던 일감이었다. 죽는 순간까지도 남이 위촉한 곡 ‘레퀴엠’을 쓰다 숨을 거둔 그는 희대의 행운아라 해야 할까. 그렇다면 모차르트 이전과 이후의 작곡가들은 무엇으로 생계를 유지했을까.


바흐나 하이든의 경우엔 각각 교회와 귀족에 고용된 피고용자였다. 바흐는 젊은 시절 내내 구직을 위해 독일 전역의 이 교회 저 교회를 옮겨 다녔다. 하이든은 전성기에 귀족 에스테르하지 가문의 전용 음악가로 취직해 그들을 위해 곡을 지어주고 봉급을 받던 충실한 봉급쟁이였다. 반면 한 세대를 건너뛰어 1800년대의 쇼팽과 리스트는 둘 다 뛰어난 피아니스트였다. 그에게 작곡이란 개념은 자신이 연주하기 위해 만드는 음악을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행위에 더욱 가까웠다. 연주자로서 충분한 돈을 버는 그에게 자연히 작곡가로서의 수익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부수입에 불과했을 것이다.


200년이 지난 지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는 대중음악의 작곡가들은 신개념의 저작권료로 막대한 수익을 챙긴다. 그렇다면 순수예술이라 불리는, 극소수의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클래식 음악의 창작자들은 어떨까.


“그럼 너희는 뭘로 돈을 벌 수 있어?” 내 질문에 혼란스러워진 그 후배는, 곰곰 생각해보더니 돈을 벌 일은 모르겠어도 쓸 일은 충분히 많다고 했다. 가령 작품 발표회를 한번 할라치면 연주를 해줄 사람들을 직접 고용해 연주료를 지불해가며 곡을 무대에 올려야 하는 것이다. 내 작품을 출판해 달라며 출판사 이 곳 저 곳을 들쑤셔보며 의뢰하는 것도 당연히 작곡가 본인의 몫이다. 쉽지 않은 과정들 속에 자연히 많은 작곡가들이 창작 활동 자체는 포기하고 자신이 배운 것을 그대로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거나, 작곡보다는 상대적으로 수요가 많은 편곡 작업을 주로 하거나 한단다.


생각해보니 대학때 작곡과 동기가 네 명 있었는데 한 사람은 현재 대중음악 작곡자로 활동 중이고 한 사람은 음악 관련 일에 종사하고, 한 사람은 다른 학교의 다른 과로 전과해 다른 삶을 살고 있다. 나머지 한 명은 어디서 뭐 하는지 모르겠어도 곡을 쓰고 있는 게 아닌 건 분명하다. 평생을 무직자로 살다가 죽기 몇 달 전 교회에라도 취직하고 싶어 대위법을 레슨 받으러 다녔던 200년전의 슈베르트도 크게 달랐던 것 같지는 않지만,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에게 “당신들은 배를 곯아가며 죽어간 작곡가들의 고혈을 빨아먹고 호의호식하는 팔자의 흡혈귀들”이라고 했다는 스트라빈스키의 얘기를 곱씹으면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수십억원 대의 연봉을 호가하는 오케스트라 지휘자나 오페라 가수들과 극명하게 엇갈리는 이들의 앞날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손열음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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