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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시장과 박물관에서 영감, 문화와 전통에서 미래 길어올려

알란 찬이 2009년 꾸민 중국 광저우의 베지테리언 레스토랑 수청자이.

마카오 그랜드 리스보아의 프렌치 레스토랑 ‘로부숑(Robuchon)’의 실내.

베이징의 ‘더 반(The Barn)’.


광고인이자 그래픽 디자이너, 브랜드 컨설턴트이자 마케팅 전문가, 아티스트이자 컬렉터….


때로 어떤 이들은 하나의 호칭으로 정의할 수 없다. 홍콩의 알란 찬(Alan Chan·66)이 그런 경우다. 그는 코카콜라의 중국어 표기(可口可樂) 문양을 디자인했고, 홍콩국제공항의 이미지 전략에 관여해 왔다. 루이비통·펜디·페레가모·휴고 보스·장 폴 고티에·알레시·세이코·밀레·BMW 등 그와 함께 작업한 명품 브랜드는 부지기수다. VVIP들만을 위한 최고의 라운지 공간을 만들어내는가 하면 가난하지만 재주있는 젊은 예술가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소도 제공하고 있다. 지난 46년간 광고와 디자인 부문에서 수상한 상은 국내외에서 600개가 넘는다. 홍콩 문화를 세계에 판 최초의 인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홍콩 정부로부터 명예훈장(Medal of Honor)도 받았다. 그가 ‘구루(Guru·정신적 스승)’라 불리는 이유다.


지난 3월 열린 미술장터 아트 바젤 홍콩에 참석하기 위해 전 세계에서 모인 유명 컬렉터와 아티스트, 갤러리스트들에게 그의 스튜디오는 반드시 보고 가야하는 장소로 떠올랐다.


그는 대학교를 나오지 않았다. 관련 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남다른 안목과 비전을 선보이고 있다. 그 비결은 무엇일까. 새로운 아이디어가 여전히 샘솟는다는 그를 중앙SUNDAY S매거진이 만났다.


 

갤럭시 마카오 호텔의 프라이빗 클럽 ‘차이나 루즈’의 내부. 중국 4대 미녀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디자인 브랜드 알레시와 협업해 만든 조롱 속 새 스타일의 티 디퓨저.

중국 고전 『삼국지』호걸들의 이미지로 장식한 갤럭시 마카오 호텔의 프라이빗 클럽 ‘차이나 루즈’.


추적이는 봄비를 뚫고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때, 곳곳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이야기를 듣는 손님들이 이미 여럿이었다. 디자이너 50여 명이 일하고 있는 스튜디오는 알란 찬이 수집해온 옛 불상·아기 인형·구식 루이비통 트렁크 같은 각종 빈티지와 데미언 허스트, 쩡판즈, 위엔민준 등의 세계적인 작가들 작품이 천연덕스럽게 섞여 있는 기묘한 세상이었다. 비틀스 매니어답게 공연 사진도 곳곳에서 눈에 띄었는데, 멤버 네 명 대신 자신의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의 얼굴 4개로 만든 64세 생일 기념 포스터를 보니 비틀스의 ‘내가 64세 때는(When I’m 64)’이 연상되며 절로 웃음이 나왔다. 회의실에서 만난 그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였지만 호기심과 장난기 가득한 ‘소년’의 풍모를 갖고 있었다.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 “어릴 적부터 아름다운 것을 좋아했다. 그림도 그렸고 패션에도 관심이 컸다. 스무 살이 넘어서는 옷을 직접 만들어 입기도 했다.”


왜 그랬나. “1970년대 홍콩에는 제대로 된 패션 브랜드가 없었고 유럽 스타일은 너무 비쌌다. 결국 내가 직접 만들어 입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옷 공장에 가서 남는 옷감을 가져다 디자인했다. 넥타이까지 만들었다.”


원래 재주가 좋았나 보다. “10살 무렵, 과일 가게를 하던 아버지를 도와드리곤 했다. 아버지는 재주가 비상한 분이셨다. 과일을 재미난 모양으로 깎아 놓아 매출을 올렸고 과일 담는 나무 상자로 가구를 만들어 이웃에 선물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지금 95세신데 여전히 일하신다. 내가 홍콩 최고의 부잣집에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뭘 전공했나. “전문 학교에서 화학과 생물학을 공부했다. 그래서 여성과의 케미스트리는 자신있다, 하하. 대학교는 나오지 않았다. 디자인 관련해서는 야간 문화강좌에서 10개월 동안 배운 게 전부다.”


그런데 어떻게 광고 업계에 들어가 살아남을 수 있었나. “나는 헌신과 몰입이라는 자질이 누구에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떻게 발휘하느냐인데, 이걸 밖으로 드러내고 다른 사람과 나눌 때,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그때도 그랬고 지금까지도 나의 신조다.”


광고 업계에서 일하며 뭘 배웠나. “1970년대 홍콩은 아주 복잡했다. 중국이 개방을 하지 않은 시절이라 중국과 아시아 문화에 관심 많은 외국인 전문가들이 홍콩으로 몰려왔다. 내 보스들도 모두 외국인이었다. 그들은 태국 쌀국수부터 일본의 사찰문화까지 샅샅이 훑고 다녔다. 자신들의 시각으로 동양의 문화를 논했다. 그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 무엇을 사오는지 유심히 봤다. 모든 게 공부였다. 그렇게 10년을 배웠다. 대학은 나오지 않았지만 최고의 글로벌 고수들에게 트레이닝을 받은 셈이다. 덕분에 내가 갖고 있던 동양적 감각에 서구적 감성이 더해졌다. 아시아 문화를 다각도로 생각하고 세련되게 해석할 줄 아는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동양이 서양과 만난다(East Meets West)’고 주장하게 됐나. “두 문화를 아우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화합(harmony) 말이다. 이런 트렌드가 다시 살아나고 있다.”


80년에 회사를 나와 독립했다. “나와 잘 통하던 보스가 79년에 회사를 나갔고 이제 내 일을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내, 비서, 디자이너와 단촐하게 내 이름을 건 회사를 차렸다. 내겐 자신감이 있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남과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재능에 대한 믿음이랄까.”


남다른 시각을 갖는다는 게 가장 중요하다. “나는 외국 출장을 가거나 시간이 나면 시장과 박물관을 반드시 방문한다. 지금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옛날 사람들은 뭘 원했는지 한눈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새로운 것을 찾아낸다. 문화와 전통에 미래가 있는 것이다.”

상하이에 만든 라이프스타일 팝업 스토어 ‘가든 27’.

홍콩의 크리에이티브 허브를 꿈꾸는 ‘스페이스 27’

젊고 잠재력 있는 디자이너를 위한 공간 ‘갤러리 27’


문화와 전통에서 새로움을 찾아낸 대표적인 사례를 꼽는다면 2012년 오픈한 갤럭시 마카오 호텔의 프라이빗 클럽 ‘차이나 루즈(China Rouge)’일 터다. 그는 이 클럽의 인테리어를 맡으면서 19세기 상하이의 몽환적인 느낌을 물씬 담아냈다. 『서유기』『삼국지』『홍루몽』등 중국 고전에 나오는 한 장면으로 바를 장식했고, 벽면에는 중국 4대 미인으로 불리는 서시·초선·왕소군·양귀비의 모습을 아르데코풍의 이미지로 형상화해냈다.


기획 실장 헤일리가 보여준 티 디퓨저(차 거름망)도 흥미로웠다. 작은 새장 속에 들어있는 새의 모습이었는데, 새를 꺼내 차를 거르는 동안 새장에서는 새소리가 들렸다. “옛날 중국에서는 사람들이 차를 마실 때 새장을 들고다니며 새들의 지저귐까지 즐겼다는데 여기서 착안한 아이디어”란다.


시계 브랜드 세이코와 협업한 ‘한자(漢字) 시계’도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라비아 숫자 대신 한자 숫자가 쓰여있는 기판이 왠지 허전해 보인다. 잘 보면 한 획씩 빠져있다. 그런데 분침이 숫자에 닿는 순간, 숫자가 완성된다. 분침 끝이 가로획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숫자에 닿는 순간 만들어지는 ‘완전체’는 묘한 쾌감을 주었다.


아이폰으로 직접 찍은 사진이 담긴 아이폰의 모습을 모아 다양한 스타일의 사진과 동영상으로 만든 ‘아이 아이 아이(iEye愛)’ 시리즈는 이번 아트 바젤 홍콩에서도 소개됐다.


그가 최근 선보인 ‘작품’이 말레이시아 겐팅의 VVIP용 멤버스 클럽이다. 최고의 부자들만 그것도 예약제로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농염한 여인의 일러스트레이션으로 유명한 일본의 소라야마 하지메(空山基·69), 영국의 조각가 마크 퀸(52) 같은 쟁쟁한 친구들이 그의 인테리어에 빛을 더했다.


그런 영감은 어떻게 얻나. “음, 자동적으로 뭔가가 떠오른다. 젊은 사람은 이 말을 잘 이해 못 할지도 모른다. 나는 모든 것이 궁금했다. 그림이면 그림, 음악이면 음악, 오브제면 오브제,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도 말하지 않았나. ‘스테이 풀리시(stay foolish)’ 해야하고 ‘스테이 헝그리(stay hungry)’ 해야 한다고. 자기가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할 때, 배움은 거기서 끝이 난다.”


여전히 활력이 넘친다. “문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문화관련 일을 하다보면 늙지 않고 영원하다. 나이의 바운더리를 넘어갈 수 있는 것이 문화다.”


친한 문화예술인을 꼽는다면. “며칠 뒤(4월 1일)면, 레슬리(장궈룽·張國榮)의 기일이다. 80~90년대 톱가수 시절 나는 그의 이미지 크리에이터였다. 그의 앨범 재킷은 거의 다 내가 디자인했다. 내 옷이 맘에 든다며 내 옷을 입고 재킷 사진을 찍기도 했다(그는 장궈룽의 앨범을 한아름 가져와 탁자 위에 좍 펼치더니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한국에서는 요즘 창조경제와 문화융성이 중요한 정책 화두다. 조언을 한다면. “창조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플랫폼이 살아나야 한다. 아티스트가 마음껏 활동할 무대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두 번째는 클라이언트다. 좋은 아티스트가 많이 있어도 그들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그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지원하는 클라이언트가 많이 나와야 한다.”


돈이 많아도 문화에 관심이 부족한 사람들이 아직 많다. “그게 문제다. 중요한 것은 클라이언트와 사회가 창의력 있는 디자인을 높이 사고 그런 것을 만들어내는 아티스트를 존중하도록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엔터테인먼트쪽은 이해가 쉽다. 현금이 들어오는 비즈니스니까. 하지만 브랜드를 만드는 것은 시간이 걸린다. 내가 전세계 VIP들에게 겐팅 프라이빗 클럽 같은 곳에서 최고의 문화를 보여주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하이 퀄리티 컬처를 보여주면서 관심을 이끌어내는 일이 중요하다.”


문화예술 공간도 여럿 만들었다. “쿼리 베이에 있는 ‘스페이스 27’은 갤러리이자 이벤트 공간이다. 아트·디자인·컬처를 통해 홍콩의 크리에이티브 허브가 되는 것이 목표다. 완차이에 있는 ‘갤러리 27’은 젊고 잠재력 있는 홍콩의 디자이너·사진가·일러스트레이터를 발굴하고 후원하는 전시공간이다. 상하이에 있는 ‘가든 27’은 라이프스타일 팝업 스토어다. 특히 식물에 초점을 맞춰 아시아와 유럽 각국 선물용품을 모아놓은 곳이다(27은 알란 부부의 생일 날짜이자 행운의 숫자라고 한다).”


광고업계에서 받은 여러 가지 훈련이 도움이 됐을 것 같다. “광고는 ‘파는 일(selling thing)’이다. 시장을 분석하고 파는 데 집중한다. 논리뿐 아니라 감성적으로도 접근해야 한다. 이 두 가지가 하모니와 밸런스를 이뤄야 한다. 전략적 분석이 잘 깔려 있어야 크리에이티브가 살아난다.”


디지털 시대인데 전통과 과거는 너무 낡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나. “모든 것은 뿌리가 있다. 전통은 모든 것의 기초다. 역사는 모든 것의 시작이다. 당신이 지금 보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역사가 없으면 다음 스텝도 없다.”


한국에 와 본 적은. “10년간 10번은 간 것 같다. 한국 문화와 중국 문화를 비교하는 게 내겐 흥미롭다. 특히 한글에 관심이 많다. 중국 한자의 영향권 아래서도 한자와 전혀 다른 문자가 나왔다는 것이 특히 그렇다.”


한류에도 관심이 있나. “물론이다. ‘소녀시대’와 ‘미쓰에이’를 좋아한다. K팝은 최근의 디지털 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다. 빨리빨리 보고 느끼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다. 그러면서 감성적이다. 예를 들어 한국의 걸그룹은 상반되는 이미지를 같이 갖췄다는 것이 강점이다. 연약하면서 파워풀하다. 김치 같다. 맵고 강하지만 부드럽다.”


올해의 주요 계획은. “겐팅을 위한 두 번째 프로젝트가 진행중이다. 3700 평방m에 달하는 플래티넘 카지노를 계획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S체어’로 불리는 ‘실크로드 가구 컬렉션’ 디자인도 연구 범위를 확장해볼까 한다.” ●


 


 


홍콩 글 정형모 기자 hyung@joongang.co.kr, 사진 알란 찬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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