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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이란, 1988 의리


공습에 13명 숨지고도 철수 안 한 ‘대림 스토리’ … 박 대통령, 정상회담서 언급 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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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이라크가 이란 캉간 지역의 대림산업 가스정유소 공사현장을 공습해 13명이 숨졌다. [중앙포토, 대림산업]


1988년 6월 30일. 올림픽 개막식 준비로 들떠 있던 외무부 청사에 긴급 전문이 도착했다. 이라크 공군기가 이란 캉간 지역의 대림산업 가스정유소 공사현장을 공습했다는 내용이었다.

내일부터 사흘간 국빈방문
신뢰 외교로 이란 시장 개척


당시는 이란-이라크 전쟁(80년 9월~88년 8월) 중이었다. 아침 작업 현장을 덮친 전투기 8대는 로켓포와 기관총을 난사했다. 5분 만에 13명이 사망하고, 50여 명이 다쳤다. 이란에 가장 먼저 진출한 한국 기업인 대림은 전쟁 중에도 철수하지 않고 공사를 계속하고 있던 터였다.

희생자 중에는 결혼을 앞둔 스물아홉 살 예비신랑도 있었고, 매달 39만원의 월급을 가족에게 보내며 “곧 귀국하면 구멍가게라도 열어서 다신 떨어지지 말자”고 약속했던 40대 가장도 있었다. 캉간 근무는 40대 가장의 일곱 번째 해외근로였다. 오열하는 유족의 사진이 신문에 실렸고, 나라 전체가 충격에 빠졌다.

긴급 소집된 국회 외무위에서 김영삼 당시 민주당 총재는 “우리 근로자가 왜 전쟁터에서 일해야 하느냐”고 날 선 비판을 했다. 대림 측의 안전관리 등 책임과 피해보상 문제가 불거졌고, 모든 기업이 철수해야 한다는 여론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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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림은 공사를 계속해 90년 가스정유소를 완공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이란 국빈 방문에선 한국 기업의 ‘의리’가 부각된다. [중앙포토, 대림산업]


하지만 대림은 잔류를 택했다. 대림 관계자는 29일 “일단 맡은 공사는 밑지더라도 준공해야 한다는 게 기본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신뢰”라며 “ 이란 측도 우리가 마무리해주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대림은 공사를 재개해 90년 완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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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들의 희생이라는 아픔을 무릅쓰고 28년 전 대림이 지킨 약속의 가치가 다음달 1~3일 박근혜(얼굴) 대통령의 이란 국빈 방문에서 부각된다. 박 대통령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대림 스토리’를 언급하며 이란에 대한 신의를 강조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고 외교부 당국자가 전했다.

| 박 대통령, 이란 진출기업 금융 지원도 밝힐 계획

익명을 요구한 이 당국자는 “외교의 기본은 신뢰이고, 대림이 전쟁 중에 지켜준 ‘의리’가 이런 기본 원칙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의리 외교’는 곧 블루오션인 이란 시장을 여는 열쇠로 작용해 실리로도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88년 사건 이후 이란 측의 신뢰를 얻은 대림은 대형 프로젝트를 잇따라 수주했다. 94~2001년 소양강댐의 10배 크기에 이르는 카룬댐을 수주해 완공시켰다. 하산 타헤리안 주한 이란 대사도 최근 정부 측과 접촉하면서 “전쟁 당시 다른 기업과 달리 철수하지 않고 공사를 끝낸 한국 기업에 대해 이란은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고 수차례 언급했다고 한다.

국립외교원 인남식 교수는 “전쟁에서 이라크는 화학무기까지 썼다. 이란은 엄청난 피해를 입은 아픔을 지금까지 갖고 있다”며 “이란이 가장 괴로웠던 역사의 순간에 우리도 함께 아팠다는 인연을 강조, 정서적으로 접근하는 건 유용한 국익 외교”라고 말했다. 대림 이해욱 부회장도 박 대통령과 함께 경제사절단에 포함돼 이란에 간다.

외교부는 2006년 이란에 대한 국제 제재가 시작된 이후 현지에 남아 있던 다른 기업들에 대한 자료도 준비 중이다. 제재 때문에 활동 자체가 불가능했지만, 직원을 한두 명씩이라도 남겨 이란 시장의 끈을 놓지 않은 기업은 모두 13곳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25일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이란에 갔을 때 보니 지난 10년간 우리 기업들이 어려운 기간을 같이 견뎌내 줬다는 데 대해 이란 측이 고마워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번에 이런 부분이 경협 등으로 구체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승호 주이란 대사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앞으로 이란과 안정적인 관계를 계속 가져가겠다는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며 “서비스를 제공하고 돈만 받아서 나오는 ‘장사’가 아니라 우리 자본을 투입해 함께 운영하고 이익을 나눠 가지며 양국관계가 질적으로 업그레이드되는 계기로 만드는 게 핵심”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이란에 진출하는 기업에 대한 금융지원 안도 이번 순방에서 밝힐 계획이다. 이란 정부의 예상을 뛰어넘는 큰 규모라고 한다.

하지만 대이란 신뢰 외교에서 고려해야 할 또 다른 요소도 있다. 아산정책연구원 장지향 선임연구위원은 “신의를 강조하는 건 좋지만 한국이 제재 국면에서 편법으로 이란을 지원했다는 것으로 비춰지면 안 된다. 한국이 지지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규범을 따르기로 한 지금의 온건개혁파 지도부이고, 북한도 여기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 식으로 메시지를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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