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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줄거리 알려줌, 72초 드라마, 3줄 요약 … 짧아야 읽고 보는 시대

전 세계를 강타했던 싸이의 뮤직비디오 ‘강남스타일’은 4분12초짜리다. 2012년 대박이 터진 이 유튜브 영상이 만일 1분만 더 길었더라도 역사는 달라졌을 수 있다. 노래와 춤의 완성도 못지않게 이 뮤직비디오의 성공 요인 중엔 ‘길이’가 있다. 당시 막 확장되기 시작한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되기에 지나치지 않은 길이였다.

4년이 지나 더 많은 모바일기기가 보급된 지금은 어떨까. ‘줄거리알려줌’이라는 서비스가 있다. 영화 예고편을 간단히 요약해서 줄거리만 보여주는데 대략 1분50초 내외다. 짧은 영상 하나만 보면 영화 한 편을 다 본 것 같다. 아예 짧은 영상 길이를 강조한 ‘72초 드라마’라는 서비스도 있다. 언론사들이 제공하는 영상뉴스의 길이도 점점 짧아지거나 화면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요즘 뜨고 있는 동영상 광고는 핵심 내용을 영상 앞부분 3초 이내에 나오게 한다고 한다. 이런저런 상황 설명 다 하고 마지막에 제품 이름이 짠~하고 나오던 TV 광고 시절은 지났다. 눈길 산만한 모바일 이용자들을 붙잡으려면 3초 안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뉴스나 블로그의 글도 ‘~하는 10가지’ ‘~해서는 안 되는 5가지’ 등 정리 기사가 인기다. 한마디로 ‘누가 정리 좀 해줘’ 하는 세상이 됐다.

‘복세편살’이라는 인터넷 용어가 있다. 불교용어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복잡한 세상 편하게 살자’의 줄임말이다. 법정 스님은 ‘함부로 인연을 만들지 말라’고 하셨으니 이 용어를 불교식으로 이해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 우리는 더 단순히 살고 싶지만 컴퓨터는 매일 친구를 추천하고 링크를 누르도록 요구한다. 학연·지연 친구들이 대부분이었던 옛날과 달리 지금은 페이스북에는 ‘듣보친’(듣도 보도 못했지만 친구 사이가 됨)이 수두룩하다. 카카오톡과 밴드가 묶어준 친구들까지 수천 명이 휴대전화 안에 있다.

줄임말이 유행이 된 것은 그래서인지도 모른다. 인연으로 복잡하게 얽히다 보니 말이라도 줄여 쓰자는 생각이다. 모임에 따라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져야 한다고 해서 ‘낄끼빠빠’라는 말이 나왔다. ‘태후’를 서태후로 알면 시류를 모르는 사람이다. ‘태양의 후예’가 불과 다섯 자인데 그것도 길다고 두 자로 줄여 말한다. 연서복이라고 아시는지. 중국음식점 이름이나 제비옷차림 연미복과 비슷한 것이 아니라 ‘연애가 서툰 복학생’을 뜻한다. ‘새등’은 새벽등교, ‘맥날’은 맥도날드, ‘버카충’은 버스카드 충전이다. 대한민국 만세는 ‘대민만’으로 줄여 쓰니 정말 ‘별다줄’(별걸 다 줄임)이다.

140자로 제한됐던 트위터나 17음으로 지어진 일본의 하이쿠(俳句)처럼 짧고 단순한 글이 모바일 시대에 환영받는다. 길게 쓴 글은 다들 싫어한다. 어쩌다 길게 쓴 사연은 이야기 끝에 3줄 요약이라고 하는 압축 서비스를 붙인다. 그러지 않을 경우 ‘좋은 글이지만, 너무 길어서 안 읽었다’는 놀림 댓글을 받을 수 있다. 마우스를 끌어내리며 훑어보다가 글이 너무 길어서 도중에 나가버리는 것을 막기 위해 ‘선(先) 3줄 요약’을 글 앞에 넣기도 한다. 영어에서도 ‘tldr’이라는 축약어가 있는데 ‘too long, didn’t read(너무 길어 읽지 않음)’의 뜻이라고 한다.

줄이고 짧아졌지만, 정보는 많고 넘친다. 앨빈 토플러는 정보 과잉 시대가 올 것을 이미 예측했다. 과잉의 기준은 물론 인간이 소화하기 어려운 수준을 말한다. 하루 동안 쏟아지는 메시지, e메일, 뉴스, 각종 사연, 억지로 보는 광고까지 우리는 너무 많은 것에 시달린다. 무엇인가 끊임없이 보고 들어야 한다는 것에 중독됐다. 음식점에 가면 TV를 켜놓는데 보는 이가 없을 때가 많다. 보나 안 보나 큰 차이가 없어서다. 여론조사와 정치평론이 쏟아지지만 선거 결과를 신통하게 맞힌 이는 별로 없듯 말이다.

공자는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공허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고 했다. 소음처럼 쏟아지는 짧은 메시지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생각을 잃어버릴까 걱정이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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