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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신산업펀드’ 이익은 기업 주고 손실은 정부 부담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가던 2008년 울산상공회의소와 울산에 공장을 둔 석유화학업계는 ‘울산지역 에너지 정책 협의회’를 구성했다. 지방자치단체와 중앙부처에 석탄 같은 고체연료 사용을 허가해 달라고 공식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규제에 막혔다. “연 1000억원 넘게 비용을 아낄 수 있고 기술 발달로 대기오염 물질 배출도 막을 수 있다”는 설득은 8년째 먹히지 않았다. 결국 한 대기업은 고체연료 보일러를 새로 짓기로 한 계획을 최근 유예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저유가 덕에 교체 필요성이 줄어들긴 했지만 유가가 오르면 다시 해야 할 고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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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0대 그룹의 연구개발(R&D) 투자는 31조7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5000억원 줄었다. 매년 늘어 오던 R&D 투자가 줄어든 건 불황 때문이기도 했지만 정부가 세수 부족을 타개하기 위해 대기업의 R&D에 대한 세제 혜택을 확 줄인데도 기인했다. 자금에 여유가 있는 곳은 대기업뿐인데 대기업이 투자를 꺼리니 성장이 정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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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업투자 활성화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칸막이를 낮추자고 제안한 중앙일보 4월 22일자 1, 6면.


박근혜 정부의 2기 최경환 경제팀은 이 딜레마를 ‘총수요’ 대책으로 풀려고 했다. 대기업에 쌓인 돈을 배당·임금으로 흐르도록 해 소비를 부추기자는 정책이었다. 부동산 대출 규제를 풀고 금리를 낮춘 데 이어 개별소비세 인하,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직접적인 소비 부양책까지 썼다. 그 덕에 소비는 반짝 회복했지만 그 후유증으로 가계부채가 1200조원을 훌쩍 넘기고 좀비기업이 양산됐다. 소비 부양에도 불구하고 올 1분기(1~3월) 경제성장률은 0.4%로 지난해 4분기에 이어 2분기 연속 0%대 성장률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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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대 성장’ 성적표를 받아 든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제정책의 중심을 다시 공급정책으로 돌렸다. 대기업에 꽉 막혀 있는 ‘투자 물꼬’를 트지 않고선 아무리 소비 진작책을 내놔 봤자 경기를 살리기 어렵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전 세계 경기와 같이 흐름을 타는 수출은 정부 대책만으로 되살리기에 한계가 있다. 정부는 결국 경기를 지탱하는 3개 축인 수출·소비·투자 가운데 투자(공급)에 마지막으로 희망을 걸었다. 이를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칸막이 규제도 과감히 트기로 했다.

대표적인 게 ‘신산업 육성 세제’다. 매출액 가운데 신산업 R&D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에 따라 기업에 최고 30%의 세액공제 혜택을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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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업에 많이 투자하는 기업이라면 대기업·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세금을 깎아 주겠다(공제)는 얘기다. 이찬우 기재부 차관보는 “신산업에 대한 투자의 상당 부분이 대기업과 중견기업에서 이뤄지고 있다”며 “세액공제를 실제로 투자가 이뤄지는 부분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신산업 시설에 투자하는 세액공제(최대 10%)도 신설한다. 임상 1, 2상에만 적용되던 신약 R&D 세액공제 혜택도 의약품 판매 전 최종 임상시험 단계인 국내 수행 임상 3상까지 확대해 적용하기로 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명문고를 보냈는데 대학은 미국 아이비리그로 가는 식의 제약 시설 투자 유출 현상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민관 합동으로 1조원 규모 신산업 육성 펀드를 조성한다. 손실은 정부가, 수익은 민간기업이 우선 가져가는 구조로 펀드를 설계해 기업의 투자 리스크를 덜어준다.

그러나 정작 산업계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익명을 원한 재계 관계자는 “정부가 총선 이후 이런저런 안을 내놓고 있지만 이렇다 하게 피부로 느껴지는 것은 없다”며 “신산업 후보로 사물인터넷 등 10개 업종을 한다는데 아직 명확하게 대상 업종이 정해진 것도 아니고 지원책 역시 구체적이지 않아 뭐라고 말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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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평가도 비슷하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전폭적인 지원은 바람직하지만 지금은 해운과 조선 구조조정이 더욱 시급한 문제”라며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장기적인 신성장 정책도 힘을 받을 수 있는데 구조조정 지원책도 신성장 대책도 눈에 띄게 효과적인 부분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구조조정으로 우울한 시기에 정부가 청사진을 제시하고 대·중소기업 등 여러 가지 지원 칸막이를 없애려는 시도는 의미 있어 보인다”면서도 “성장이 아닌 생존전략을 찾고 있는 국내 기업들이 이런 대책만 보고 신규 투자에 나설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관련 세법 개정안이 국회 문턱을 무사히 넘을지 장담하기는 어렵다. ‘대기업 혜택 집중’ 논란에 야당이 법 통과에 선뜻 협조할지 미지수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지난 정부 때 시행한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생색내기용 법안이라면 국회에서 그대로 통과되기가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세종=조현숙·김민상 기자, 이수기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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