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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이게 협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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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영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4·13 총선 결과 여소야대와 3당의 의회권력 분점 상황에서 ‘협치’가 필요하다는 논의가 활발하다. 언론은 대통령과 여야 간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주문하고, 정치권은 이에 대해 협력과 상생의 정치를 약속한다. 중도 개혁 성향의 정치인들이 청와대를 포함한 여·야·청 쇄신모임을 함께 추진한다는 기사가 나오고, 기업 구조조정을 위한 여·야·정 협의체 구상도 등장한다. 이미 2014년부터 야당과의 연정(聯政) 형태로 협치를 실행해 온 남경필 경기도지사의 실험이 소개되고, 북한의 안보 위협을 여야 협치로 풀어야 한다는 칼럼 제목도 보인다.

협치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필자의 입장에서 현 한국 정치의 화두로 협치가 떠오르는 게 반갑다. 우리 학계와 현실정치 공히 21세기 보편적 정치 패러다임인 협치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온 터다. 하지만 협치는 정치인들끼리 소통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얘기와는 차원이 다르다.

원래 협치는 거버넌스(governance)의 번역어로 그 핵심은 일반 시민과 비정부·비국가 행위자의 실질적인 참여와 정부와의 대등한 협력에 있다. 거버넌스는 기존 관 주도의 ‘거느림의 정치’로부터 민관이 함께하는 ‘다스림의 정치’로의 변화를 말한다. 나아가 시민의 정치 참여를 사실상 간헐적인 투표행위로 국한시키는 ‘대의정치’로부터 중앙·지방·마을 수준 곳곳에서 시민들이 직접 의사 결정과 문제 해결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자치정치’로의 변혁을 목표로 한다. 이는 지구화·민주화·정보화·복합위험시대에 있어 국가 통치 능력의 한계, 대의제의 위기, 식견 있는 비판적·참여적 시민의 등장 등 구조적·거시적 변화를 배경으로 한다. 한마디로 정부 주도의 통치에서 시민사회 중심의 협치로 나아가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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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지난해 9월 유엔이 발표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정치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총 17개 SDGs 중 마지막 두 목표를 자세히 보면 인류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해 국가뿐 아니라 비국가 행위자를 포함한 모든 이해 당사자의 참여와 협력이 중요하다는 거버넌스의 정치를 강조한다. 영국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시민사회청을 세우고 큰 사회(Big Society) 정책을 추진하는 것도,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백악관에 사회혁신 및 시민참여부서를 두고 미국봉사법을 제정한 것도 거버넌스 패러다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학계 또한 거버넌스 연구가 대세다. 권위 있는 논문 인용지 수 데이터를 분석해 보면 ‘거버넌스’ 관련 논문의 발표 수가 꾸준히 증가해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정부’ 관련 논문의 발표 수를 앞서고 있는 추세다. 즉 유엔 담론으로부터 주요국의 국정 운영방식 그리고 세계 정치학계의 트렌드에 이르기까지 거버넌스 패러다임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정치 현실에서도 거버넌스는 더 이상 생소하지 않다. 시민사회 출신 박원순 시장이 이끄는 서울시 시정(市政)의 기본 방향이 민관 거버넌스인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도정(道政) 방향도 거버넌스다. 그런가 하면 필자가 사는 성북구 또한 마을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다양한 주민 참여 거버넌스 정책을 추진 중이다. 동네 안의 시민정치가 여러 곳에서 꿈틀거린다. 그렇다고 거버넌스가 야당의 전유물은 아니다. 새누리당 소속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협치를 도정의 제1원칙으로 삼고, 남경필 경기도지사 또한 야당과의 연정뿐 아니라 시민 참여와 협치를 시도하고 있다. 거버넌스가 지방정치 모델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과거 참여정부로부터 현 ‘정부 3.0’에 이르기까지 중앙정부 차원의 각종 거버넌스 실험과 아이디어도 존재한다. 즉 거버넌스는 남의 얘기가 아니며 현재 풀뿌리에서 지방을 넘어 중앙을 향해 협치가 용틀임하고 있는 형국이다.

다시 4·13 총선 이후 현 정국을 돌아보자. 대통령과 청와대가 이해하는 협치는 여소야대 정국에서 이제 국회와 협력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다는 정도다. 대국민 소통과 설득은 관의 입장을 알리는 공보(公報) 수준이고, 시민사회와의 접촉이래야 지난주에 있었던 전국 새마을지도자와 장애인기능올림픽 국가대표들과의 짧은 만남 정도이며, 그것도 생뚱맞게 노동 개혁의 필요성을 여론에 호소하는 자리로 쓰였다. 협치는커녕 어버이연합과의 관제 데모 유착 의혹이 점점 불거져 나온다. 그나마 기대했던 언론사 국장들과의 간담회 내용을 봐도 기대보다는 우려가 앞서는 게 사실이다.

정치권 모두 협치를 부르짖지만 시민사회와의 공명 없이 여·야·정·청의 테두리 안에서 구호만 요란하게 맴돌고 있는 듯하다. 선거 때마다 잠시 등장하곤 하는 풀뿌리 시민 네트워크 정당 개혁과 같은 아이디어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다음 대선을 겨냥한 연립정부론 같은 정치공학 차원의 얘기가 들린다. 이게 협치인가? 이 정도로 떠난 민심이 돌아올까? 정치권의 대화와 협력, 중요하다. 하지만 현 협치 논의에 시민은 어디에 있나?

김의영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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