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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진박들이 기억해야 할 그 추웠던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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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지금 바로 여당 기자실로 가서 반장의 지시를 받도록~.” 1997년 12월 정치부에 발령받은 2년차 병아리 기자에게 부장은 귀찮다는 듯 한마디를 던졌다. 필자의 정치부 기자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구기동 자택으로, 유세장으로 이회창 후보를 졸졸 따라다니는 임무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 회생을 이룰 사람은 이회창”이라며 한나라당에 입당한 것도 그 즈음이었다. 김대중 후보의 기세가 등등했고, 이인제 후보로 새 나가는 여당 지지표도 많았지만 한나라당 당직자들은 “설마…”하며 승리를 기대했다.

이런 기대는 곧 산산조각이 났다. 첫 수평적 정권교체, 하루아침에 야당으로 전락한 한나라당 당사의 그 썰렁한 풍경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전날까지 북적댔던 호화 당사는 쥐 죽은 듯했다. 실무 당직자들을 뺀 누구도 당사로 출근하지 않았다. 대선 다음 날도, 그 다음 날도, 또 그 다음 날도 그랬다. 기자실이 있는 3층만 웅성웅성댔을 뿐 후보실이 있던 7층부터 1층 민원실까지 당사를 감싼 건 충격과 무력감뿐이었다. 승자의 환호가 패자에겐 상처로 박히는 권력세계의 냉혹한 현실이었다. 그 당이 정권을 찾아오는 데는 그로부터 꼭 10년이 걸렸다.

한나라당의 뒤를 이은 새누리당이 다시 칼날 위에 섰다. 당을 둘러싼 상황은 19년 전 겨울보다 못하다. 당시엔 한때 ‘보수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로 불렸던 이회창이란 구심점이 있었다. 이회창은 김대중에게 39만 표를 졌지만 이인제의 492만여 표(19.2%)를 합하면 보수 쪽 토양은 꽤 단단했다.

지금의 새누리당은 변변한 대선 후보조차 없다. 정당지지율(20대 총선 비례대표 정당득표율)도 야당에 뒤져 있다. 그런데도 민심 이반의 진원지로 지목되는 청와대와 친박들의 태도는 선거 전이나 선거 후나 변한 게 없다. “되는 게 없는 양당체제를 개혁하라고 국민이 3당체제를 만들었다”는 취지로 총선 결과를 평가한 대통령의 발언에 고개를 갸웃거리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 내 ‘진박’들은 더하다. 지난해 여름 유승민 원내대표를 몰아내는 데 앞장섰던 충청권의 바람잡이들은 당선자 워크숍에서부터 친박 보디가드 역할을 다시 시작했다. 현 정권에서 8개월 장관을 지낸 이와 또 다른 친박계 중진이 만나 ‘난 원내대표, 넌 당권’이라는 식의 대화를 나눴다고 하니 정말 가관이다. ‘원내대표는 비박계에 넘기되 전당대회를 미룬 뒤 친박계 책임론이 잦아들면 당권을 잡는다’는 시나리오도 함께 유포되고 있다. 97년 겨울보다 더 추운 겨울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고 나서야 땅을 칠 것인가. 하긴 총선 전에도 친박계 일부는 “유승민 없는 150석이 유승민 있는 170석보다 낫다”고 했다는데, 대선에 지고 난 뒤에도 “차라리 잘됐다. 비박계를 모시면서 여당을 하느니 우리끼리 똘똘 뭉쳐 진실한 야당을 하자”며 ‘진박 타령’을 부를지 모를 일이다.

서승욱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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