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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오름기행] 사자처럼 생겨 ‘호랑이의 저주’ 막아준 중문단지의 수호산

| 제주오름기행 ③ 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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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훤히 내려다보인다. 정상 오른쪽 봉우리 끝에 올라 서쪽을 바라보니 산방산이 눈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마을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행정구역으로는 제주도 서귀포시 예래동이다. 제주도 좀 다녀봤다면, 이름은 몰라도 한 번쯤 들러봤을 동네다. 특급 호텔 모여 있는 중문관광단지 왼쪽 지역이 예래동이다. 다시 동네 이름을 본다. 예(猊)가 오는(來) 마을이라는 뜻이다. 이 ‘예’ 자가 ‘사자 예’ 자다. 사자가 오는 동네라니. 예래동에 내려오는 전설은 뜻밖에도 마을 북쪽에 우뚝 선 오름에 올라야 비로소 풀린다. 그 오름이 군산이다. 말하자면 군산은 예래동의 수호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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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335m 높이의 오름이다. 오름도 화산이어서 정상부가 움푹 패게 마련인데, 군산의 정상에는 분화구가 없다. 대신 뾰족한 봉우리 두 개가 동쪽과 서쪽 끝에 서 있다. 양쪽 끝이 솟은 봉우리 꼴이 군대 막사처럼 생겼다고 해서 군산(軍山)이라 한단다(일부 이견도 있다). 봉우리가 뾰족한 오름을 제주에서는 웅봉(雄峰) 또는 숫오름이라고 따로 부른다. 제주 오름 대부분이 정상부가 밋밋한 자봉(雌峰), 암오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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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정상에서 바라본 산방산. 산방산이 눈앞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군산 꼭대기에 올라야 이야기가 시작된다. 군산은 368개나 된다는 제주 오름 중에서 전망 좋기로 손꼽히는 오름이다. 말 그대로 360도 파노라마로 제주의 서남부 지역이 죄 내려다보인다. 제주도의 4분의 1이 보인다고 할 정도다. 이 소문 자자한 전망이 탐나 군산을 세 번이나 올랐지만, 하늘이 너무 흐렸다. 제주에도 미세먼지가 내려앉는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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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정상에서 바라본 한라산. 하늘이 맑으면 선명하게 보인다는데 미세먼지 때문에 흐릿하다.

 

그래도 군산에서는 지상의 모든 것이 굽어보였다. 동쪽으로 시선을 고정하니 뿌옇게나마 서귀포 앞바다의 범섬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섬에서 전설이 비롯된다. 범섬, 그러니까 호랑이를 닮은 섬이 하필이면 예래동을 바라본다. 섬 호랑이의 시선이 멈추는 지점에 예래동에 놓여 있다. 예부터 예래동은 호랑이의 저주를 받아 액운이 그치지 않았단다. 1000년 전 어느 날 예래동 뒤로 군산이 치솟았고, 그 뒤로 마을은 평온을 되찾았단다. 군산이 사자의 형상으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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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에서 내려다본 에래동 전경. 군산 남쪽 자락이 마을을 보듬는다.



전설을 알고 나니 양쪽 봉우리가 솟은 군산이 언뜻 사자 얼굴처럼 보이기도 한다. 더구나 군산 동쪽 기슭에는 불쑥 튀어나온 바위가 있다. 이 바위 이름이 사자바위다. 바위 뒤에 붙은 무성한 수풀이 수사자 갈기 같다. “사자를 닮은 산이 있고 사자를 닮은 바위가 있어 산 아래 마을이 안녕하다”고 예래동 마을해설사 강원규(78) 옹은 주문(呪文)처럼 읊어댔다. 오름마다 전설 하나씩은 내려오지만, 예래동처럼 오름과 얽힌 전설이 마을 이름에 박힌 경우는 드물다. 군산 정상에 서면 널따란 남쪽 자락이 보듬은 예래동이 보인다.

 군산은 분화 기록이 분명한 오름이다. 고려 목종 10년(1007년) 화산 폭발로 군산이 솟았다는 기록이 『고려사』에 남아 있다. 그때 이름은 서산(瑞山)이었다. 상서로운 산이라는 뜻이다. 태어날 때부터 상서로운 기운을 받아서인지 군산에는 전해 오는 이야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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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 튼 직후의 군산 정상. 오른쪽 아래로 서귀포 앞바다가 보인다.



 ‘금장지(禁葬地)’ 전설도 개중 하나다. 군산 정상부는 양쪽 끝으로 봉우리가 서 있을 뿐 대부분이 풀밭이다. 꽤 넓고 평평하다. 풍수를 몰라도 한눈에 명당으로 보인다. 전망도 전망이거니와 양쪽에서 두 봉우리가 지켜주니 더 바랄 나위가 없다. 그러나 이 풀밭은 금장지다. 묘를 쓰면 안 되는 자리다. 묘를 쓰면 마을에 가뭄이 든다. 누군가 몰래 이 자리에 묘를 썼다가 마을에 가뭄이 들었단다. 동네 사람이 죄 나와 헤집고 다닌 끝에 암묘를 찾았고, 묘를 옮긴 뒤에야 비가 내렸단다. 군산 기슭에는 산담 두른 묘지가 수두룩하지만, 정상부에는 지금도 묘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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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동쪽 기슭의 탐방로. 가장 대중적인 코스다.


 군산은 가장 어린 오름이기도 하다. 1000년밖에(!) 안 됐다. 그래서 지질학적으로 의미가 있다. 가장 최근의 제주도 지질을 연구할 수 있어서이다. 오른쪽 봉우리에 오르면 나침반이 고장을 일으키는 것도 군산의 토양이 다른 오름과 달라서이다. 철 성분 때문이라는데, 제주 오름 중에서 군산과 서귀포 시내의 고근산 정상에서 나침반이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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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사람의 휴식처 안덕계곡. 군산 바로 왼쪽에 있다.



어느 날 군산이 솟구치면서 한라산에서 내려오는 창고천 물길도 바뀌었다. 군산이 없었을 때는 창고천이 예래동까지 바로 내려왔는데 군산이 가로막으면서 창고천이 군산 서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창고천이 급하게 휘는 자리에 안덕계곡이 있다. 주상절리 늘어선 수직 계곡에 사철 푸른 나무가 그늘을 드리우는 제주의 비경은, 기실 군산 덕분에 비롯되었다. 군산 서쪽 입구에서 자동차로 10분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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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은 사자 형상을 한 오름이다. 산 중턱에도 수사자 모양의 바위가 있다. 제법 비슷하게 생겼다.


 군산을 오르는 길은 모두 네 갈래가 있다. 서쪽 기슭에는 찻길이 있다. 자동차로 정상 5분 아래까지 오를 수 있지만, 폭이 좁은데다 가팔라 되레 위험하다. 예래동에서 오르는 동쪽 기슭이 가장 대중적인 탐방로다. 주차장에서 정상까지 30분쯤 걸린다. 군산의 비고는 98m다. 이 탐방로를 따라 오르다 보면 중턱에서 사자바위를 만난다. 제법 수사자처럼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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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남쪽 중턱에 있는 약수. 아무리 가물어도 구싯물은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남쪽 기슭으로 돌아나오는 길목에 ‘구시물(또는 ‘굇물’)’이라는 약수가 있었다. 깊지 않은 동굴이 약수터였다. 이끼 낀 천정 여기저기에서 비가 내리듯이 물방울이 떨어졌다. 아무리 가물어도 구시물은 마른 적이 없다고 한다. 웅봉에서 나오는 물이어서 이 물을 받아 소원을 빌면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이래저래 군산은 참 이야기가 많은 오름이다. 그만큼 마을과 가까운, 아니 사람과 가까운 오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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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래동은 모범적인 생태체험마을이다. 예래동 생태공원의 모습.

 


● 여행정보=예래동은 자랑거리가 많은 마을이다. 우선 예래동은 감귤이 달기로 유명하다. 제주에서 ‘예래동 감귤’은 서울의 ‘장충동 족발’ ‘신당동 떡볶이’ 같은 브랜드 파워가 있다. 예래동은 또 가볼 곳이 많은 마을이다. 천제연폭포·중문해수욕장·중문관광단지 등 이름난 관광지가 많다. 남쪽 해안을 따라 제주올레 8코스도 이어져 있다. 예래동은 전국 생태마을의 모범이기도 하다. 2002년 전국 최초로 반딧불이 보호지역으로 지정됐고, 이듬해에는 전국 최초의 자연생태우수마을로 선정됐다. 마을 주민이 스스로 생태위원회를 꾸려 활동을 한다. 예래생태체험관과 체험관 앞의 생태공원은 일부러 시간을 내서 방문할 만하다. 예래동은 70∼85세 노인 15명을 교육해 ‘마을 해설사’로 활용하고 있다. 해설사 어르신과 군산에도 오르고 문화유산 답사도 나선다. 예래생태마을 위원회 강민철(51) 위원장이 “정해진 체험비는 없지만 점심 드시라고 1만원 정도 드리면 된다”고 말했다. 064-738-6613.
 

 글·사진=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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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급변사태와 안정화 전략’을 주제로 북한학 박사를 받았다. 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ㆍ군사기획연구센터와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센터에서 군사ㆍ안보ㆍ북한을 연구했다. 2016년부터는 중앙일보에서 군사ㆍ안보 분야 취재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