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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 전 눈물이 웃음으로···말뫼의 터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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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Wikimedia Commons]


스웨덴 남부의 항구도시 말뫼에는 54층짜리 꽈배기 모양의 건물이 서 있다. 이 도시의 명물 ‘터닝토르소(turning torso)’다. 빌딩이 들어서기 전, 그 자리에는 조선소와 대형 크레인이 있었다. 2003년 한국의 현대중공업에 단돈 1달러에 팔려간 ‘골리앗 크레인’이 그 주인공이다. 해체 장면을 눈물로 지켜본 시민들의 상실감을 달래기 위해서였을까. 말뫼시는 예전 크레인(128m)의 높이를 훌쩍 뛰어넘는 190m에 달하는 빌딩을 2년 만에 올렸다.

그러나 터닝토르소는 단순 대체물이 아니다. 바닥에서 최고층에 이르는 동안 90도로 방향을 트는 형태의 건물이 올라가던 시점을 전후해 스웨덴은 산업전략을 대전환했다. 우선 경쟁력을 잃은 조선산업에 쏟아붓던 재정과 금융 지원을 과감하게 끊었다. 조선소가 문을 닫자 도시 인구의 10%인 2만7000명이 거리로 내몰렸다. 대신 조선업 연명을 위해 썼던 재원을 신재생에너지·정보기술(IT)·바이오 등 될성부른 신(新)산업에 집중 투입했다. 태양열·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는 터닝토르소는 산업전략 대전환의 상징이었다. 20세기 제조업을 대신한 21세기 새로운 비전의 표상인 셈이다. 이에 앞서 이웃 덴마크 코펜하겐을 바닷길로 잇는 7.8㎞의 다리도 건설했다. 대규모 공공투자는 늘어난 실업자를 흡수하고, 도시의 경제권도 확 넓히는 ‘1석2조’의 효과를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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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말뫼는 유럽 내 대표적인 친환경 ‘에코시티’로 부상했다. 도시의 수식어 역시 ‘눈물’이 아니라 ‘내일의 도시(City of Tomorrow)’로 바뀌었다. 조선소 폐쇄를 전후해 확 줄었던 인구도 다시 유입되며 현재는 조선업이 활황이던 시절을 넘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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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개혁은 한 도시와 산업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제조업의 쇠퇴와 고령화의 흐름에 맞서 정부는 강도 높은 연금·복지제도 개혁을 병행했다. 그 결과 스웨덴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1990년 2만9794 달러에서 지난해 4만8966달러로 크게 늘었다. 반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46.3%에서 43.9%로 오히려 줄었다. 선진국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사례다. 같은 기간 일본은 국가채무 비율이 67%에서 245.9%까지 급증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일본은 제조업체의 힘이 강한 반면 정치적 리더십은 약해 구조조정이 계속 지연됐다”며 “이로 인해 경기부양이라는 단기처방에만 의존하다 잃어버린 20년에서 헤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26일 범정부 구조조정협의체가 가동되며 국내에서도 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한국판 ‘말뫼의 눈물’이 현실화하는 조짐이 조선·해운·철강 등 주력산업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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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뫼의 눈물’을 조명한 4월 18일자 1면.


구조조정협의체를 이끄는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구조조정의 방향을 그간 견지해 온 ‘채권단 주도’로 정리했다. 이전보다 진전된 부분은 업계에 구조조정의 강도를 보다 높일 것을 주문하고, 국책은행의 자본을 확충하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채권단 주도는 원칙적으론 맞다.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하다간 ‘관치’ 논란이 일 수 있는 데다, 자칫 국제 통상문제로 비화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력산업의 구조조정은 한국의 산업과 일자리 지형을 바꿀 수 있는 큰 작업이다. 정부가 밝힌 구상에는 스웨덴이 취했던 것 같은 과감성이나 주력산업 재편 이후의 새로운 비전이 읽히지 않는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의 우려다.
 
▶관련 기사    '말뫼의 눈물' 13년 후 한국의 눈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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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공업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근원적인 문제를 뒤로 미루는 듯한 느낌이 없지 않다”며 “지금은 산업 전반의 재편을 염두에 둔 ‘큰 그림’이 필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러자면 경제부처를 총괄하는 부총리가 ‘컨트롤타워’로 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주력산업 구조조정에는 국책은행을 지원하고 실업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대규모의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고, 산업재편의 ‘밑 그림’을 그리는 작업 역시 현실적으로 주무부처들이 적극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이와 함께 현재의 수세적인 전략의 틀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공공투자를 통해 위기를 기회로 돌리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실업자 대책에 어차피 재정이 투입돼야 한다면 실업급여 기간과 금액을 늘리는 방식보다는 남는 인력과 유휴설비를 활용해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만드는 ‘한국판 뉴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jm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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